[도시재생 현장을가다] ⑪연 800만명 찾는 '맛집 투어' 전통시장
특산품 '마늘' 활용해 다양한 음식 개발하고 업종 전환해 '맛 관광 명소' 변신
"맛집은 주말이면 2∼3시간 기다려야…하루 매출 2천만원 넘는 점포도 많아"
미리 준비한 덕분에 밀려드는 수도권 관광객 끌어들이는 데 성공
[※ 편집자 주 = 현대 도시의 이면 곳곳에는 쇠퇴로 인한 도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산업구조 변화와 신도시 개발, 기존 시설의 노후화가 맞물리면서 쇠퇴는 갈수록 빠르고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쇠퇴한 도시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도시재생은 쇠퇴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그치지 않고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도시의 재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연합뉴스는 모범적인 도시재생 사례를 찾아 소개함으로써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단양=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충북 단양군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리한 인구 2만7천여명의 작은 산골 지역이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대규모 시멘트공장들의 설립에 힘입어 1980년에는 인구 7만명을 넘어섰으나 이후 석탄산업 사양화와 이촌 현상 심화로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인구 감소는 전통시장에 가장 먼저 찬바람을 몰고 왔다. 단양의 가장 큰 전통시장인 단양 구경시장은 충주댐 건설로 새롭게 도시가 형성되면서 1985년 현재의 자리인 단양읍 한복판에 들어섰다. 점포 수는 120개다. 단양읍 인구가 1만명 남짓이니 인구 100명당 1개꼴이나 되는 셈이었다. 여느 전통시장처럼 서너개의 국밥집에 옷집, 철물점, 청과물점 등 가짓수만 많았지 이렇다 할 특징마저 없다 보니 장사가 잘될 리 없었다. 여기에 고령화까지 급격히 진행돼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점포는 말 그대로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빈 가게도 속출했다.
안명환 상인회장은 "기본적으로 이 인구로는 시장이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점포는 평일에는 손님 한둘 받기도 쉽지 않을 만큼 시장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어쩔 수 없이 문은 열었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선정 계기로 "바꿔보자"
단양구경시장은 2010년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대한민국 전통시장 성공사례'의 주인공으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을 활용해 전통시장을 쇼핑과 문화 체험이 가능한 테마형 관광시장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당시 자문단은 수도권과 가깝다는 점에 착안해 관광객을 시장으로 끌어모을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 핵심을 '음식'에서 찾았다. 다행히 단양은 건강식품인 마늘의 주산지였다. 특히 단양 마늘은 석회질 땅에서 자라 단단하고 향이 좋으며 항암과 항균 효과가 뛰어나다. 그래서 다른 지역 마늘보다 가격이 30%가량이나 비쌀 정도로 유명하다. 자문단은 상인들과 함께 단양 마늘을 듬뿍 넣은 음식들을 차례로 개발했다. 튀긴 통마늘을 뿌린 마늘통닭, 소에 마늘을 듬뿍 넣은 만두를 마늘 기름에 구운 마늘 만두, 마늘로 고기의 잡내를 잡은 마늘 떡갈비, 마늘로 담백함을 더한 마늘순대 등은 지금도 단양 구경시장의 주력 음식이다.
자문단은 기존 점포들을 이런 음식을 파는 곳으로 전환했다. 평생 해오던 일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을 나이 60∼70세의 상인들은 두말없이 이를 따랐다. 단양시장이었던 이름을 단양 구경시장으로 바꾼 것도 이때였다.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단양팔경'을 잇는 아홉번째 관광 포인트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었다.
안 상인회장은 "너무나 절박했다. 대부분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아야 할 처지로 내몰렸었다. 나이 많은 상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업종 전환을 서두른 것, 수십 년 이어온 시장 이름을 바꾼 것도 모두 너무 절박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년 넘게 써온 시장 이름도 바꿔…"너무 절박했다"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 확장, 고객 쉼터 설치, 노후 전선 정비, LED 간판 조명 설치 등의 사업도 서둘렀다. 배송 도우미를 지원하고 크고 작은 축제와 이벤트를 열어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는 사이에 단양군에 수도권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KTX 단양역이 생기고 고속도로가 인근을 지나면서 접근성이 대폭 개선된 덕분이다. 단양팔경이라 불리는 도담삼봉, 석문, 옥순봉 등 빼어난 자연환경이 있었고 자연 동굴과 같은 이색적인 구경거리도 많았다. 이에 더해 단양군의 관광 개발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국내 최대 민물고기 생태관인 아쿠아리움, 2019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스카이워크, 강가를 따라 1.3㎞를 걷는 단양강 잔도 등의 즐길 거리도 확충됐다.
작은 도시의 읍내 한복판에 있다는 점도 관광객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한몫했다. 구경시장을 비롯한 단양읍 내 주요 관광서와 관광지는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유명 맛집들이 밀집해 있으니 관광객들은 구경시장을 그냥 지나치려야 지나칠 수가 없었다. 코로나19 직전에 단양 구경시장을 찾은 관광객은 연간 800만명이 넘는 것으로 단양군은 추산했다. 관광 성수기의 주말이면 하루 5만명 이상이 몰린다. 그야말로 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름난 맛집은 2∼3시간은 예사로 줄을 서 기다려야 한다.
음식점이 시장 전체의 절반…"젊은이들이 더 좋아해"
김종근 상인회 청년회장은 "솔직히 상인들 속성이 장사가 잘돼도 잘 된다고 말하지 않는데, 우리 시장은 정말 사람이 미어터진다. 주말 하루 매출이 2천만∼3천만원인 곳도 여러 곳이다. 팔려고 내놓는 가게가 거의 없지만, 장사 잘되는 점포는 매매가가 10억원을 호가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그야말로 대박이 나면서 구경시장은 급격한 세대교체까지 이뤄지고 있다. 도시로 떠났던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의 점포를 이어받는 것이다. 상인회 회원의 절반가량이 청년회 소속일 정도로 젊은 상인 비율이 높고, 이는 다시 구경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고 젊은 상인들이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구경시장의 음식점은 최근 전체의 절반에 육박하는 50여곳으로 증가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의 입맛에 맞춘 크림치즈 마늘빵과 바게트 마늘빵, 닭강정과 누룽지에 진한 흑마늘 소스를 뿌린 흑마늘 누룽지 닭강정, 마늘 국수 등 새로운 음식도 계속 개발되고 있다. 구경시장이 젊은이들이 더 많이 찾는 전통시장이 된 것도 이런 노력 덕분이다. 이는 단양 마늘의 명성을 높이고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해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다주고 있다.
내년부터 명물 먹거리 전국 택배서비스
상인들은 구경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기 위한 자정 노력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으며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한 사전 주문 및 알림 서비스, 구경시장을 오지 않고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택배 서비스 등도 준비하고 있다. 택배 서비스는 '2023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돼 추진되는 것으로, 이르면 내년부터 명물 먹거리인 마늘빵, 흑마늘 닭강정, 마늘 떡갈비 등을 전국 어디서나 택배로 받아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김숙현 단양군 경제정책팀장은 "맛 관광이라는 트렌드 변화에 미리 대응해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고 음식점으로의 업종 전환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관광객이 아무리 몰려와도 시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을 것"이라며 "수도권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관광객 수용 태세를 미리 갖춘 것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김 팀장은 "건강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지역 특산품인 마늘을 음식에 적절히 활용한 것,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관광객 편의성을 높여온 점, 상인들의 변화와 성공에 대한 의지와 자발성이 높았던 점 등도 구경시장 성공의 주요한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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