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통치 뒤 북한처럼 장남 세습…훈마넷의 캄보디아는 어떨까[딥포커스]

박재하 기자 2023. 7. 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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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유학파 장남…"해외파라고 다르겠냐" 회의론
섭정 계속하는 훈센…훈마넷 '홀로서기'는 까마득
선거 유세 중인 훈센 캄보디아 총리(70)와 그의 아들 훈 마넷(45). 2023.07.21/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38년간 집권했던 훈센(70) 캄보디아 총리가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훈마넷(45)이 성공적으로 권력을 승계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훈센 총리가 공식적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도 '상왕'으로 군림하며 당분간은 섭정에 나설 것으로 보여 훈마넷의 홀로서기는 아직 기대하기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 훈마넷이 미국과 영국 등에서 유학한 엘리트 출신이지만 그의 아버지와 달리 더 개방적인 국내·외 정책을 펼칠지도 미지수다.

2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총선에서 훈센 총리의 아들 훈마넷이 투표하고 있다. 2023.07.23/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해외파 '금수저'의 삶을 산 훈마넷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훈센 총리는 지난 26일 국영 방송을 통해 총리직에서 내려오겠다며 "장남 훈마넷이 새 정부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훈센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지난 23일 총선에서 의회 125석 중 120석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이에 따라 8월 말 소집되는 의회에서 훈마넷이 차기 총리로 선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로써 캄보디아는 북한과 함께 아시아의 세습 독재 국가라는 낙인이 찍혔다. AFP는 "CPP는 선거에서 반대 없이 압승을 거두며 일부 비평가들이 북한에 비유한 장남의 왕조 계승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전했다.

1977년생 훈마넷은 캄보디아 내전의 상흔이 남겨진 프놈펜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1985년 부친 훈센이 캄보디아 정상에 오른 뒤 훈마넷은 18세에 웨스트포인트 미군 사관학교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1999년 캄보디아인 최초로 웨스포인트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캄보디아에 귀국한 훈마넷은 총리경호부대장과 대테러사령관, 육군사령관, 육군 참모차장 등을 지내는 등 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후 CPP 청년단 대표, 상임위원회에 합류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다만 그의 정치적 색깔이나 캄보디아의 비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훈마넷이 훈센 총리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그를 대중에게 각인하기 위한 선동 작업이 계속됐다.

훈마넷은 CPP 청년단 대표로서 당과 연계된 자선단체와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업 등을 이끈 바 있다. 또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자들과 자주 소통하며 CPP에서 아버지 훈센 총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팔로워 수를 보유 중이다.

이외에도 그는 군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대신해 외교 무대에 나서기도 했으며, 지난해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비롯한 10명의 정상과 만났다.

20일(현지시간)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장남 훈마넷(오른쪽) 캄보디아군 사령관이 4성 장군으로 진급했다. 훈센 총리는 그동안 훈마넷을 자신의 후계자로 밀어왔다. ⓒ AFP=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해외파라고 다르겠냐?' 회의적 시선

훈마넷은 미국에서 오래 체류한 탓에 친미파 혹은 온건파, 합리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친(親)서구적 통치를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디플로맷(The Diplomat)은 "훈마넷이 물려받을 정치 체제는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캄보디아의 외교 방향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 진단했다.

더디플로맷은 특히 대부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갈등하는 가운데 캄보디아는 "중국의 위성국가"로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훈센 총리 통치 아래 캄보디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건설 사업)에 참여했으며 자국에 비밀 중국 해군기지 건설을 승인하는 등 중국과 밀착해왔다.

또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은 캄보디아 정부의 반대파 탄압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캄보디아와 '운명공동체'라고 강조하며 훈센 총리에게 축전을 보낸 바 있다.

<훈센의 캄보디아>의 저자이자 언론인인 세바스찬 스트랑지오는 AFP에 "훈마넷이 현 정치 체제에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훈마넷은 총선 유세에서 훈센 총리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삼 랭시 전 캄보디아구국당(CNRP) 대표가 국가를 불안에 빠뜨리고 경제를 악화하려는 인물로 선동했다고 가디언은 짚었다.

23일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칸달 지방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쳤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기표한 손가락을 보이고 있다. 2023.07.23/뉴스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흥선대원군처럼 버티는 훈센 설사 훈마넷이 캄보디아를 다른 방향으로 통치하려 해도 훈센 총리의 존재가 이를 어렵게 한다.

훈센 총리는 자리에서 내려오면서도 CPP 대표직을 유지하며 막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애리조나주립대 소발 이어 부교수는 훈센 총리가 당의 지도자로서 "모든 카드를 쥐고 있을 것"이라며 총리를 능가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론적으로 훈마넷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훈센 총리는 그를 당에서 제명하고 국회에서 퇴출시킬 수 있으며 그의 총리직을 빼앗을 수 있다"며 "훈마넷은 오랫동안 보조석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훈센 총리는 현지 매체 프놈펜포스트에 "만약 내 아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나는 총리의 역할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훈센 총리가 캄보디아 내전을 직접 겪은 만큼 국가 통합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어 훈마넷이 개혁적인 정책을 펼칠 운신의 폭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훈센 총리는 자신의 후계자가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캄보디아를 통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아들이 다르게 통치할 것으로 보느냐'는 현지 매체의 질문에 "그런 차이는 평화를 방해하고 이전 세대의 업적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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