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긴 해야 하는데”… 원윳값 최대폭 인상에 속 끓는 유업계

양범수 기자 2023. 7.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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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가격에 제품가 인상으로 대응하던 유업계
“이번엔 제때 못 올릴지도” 울상
농식품부 유업계에 “흰 우유 가격 인상 자제” 재차 부탁
”당분간 값 못 올리겠지만 손해 오래 감수하긴 힘들 것” 전망도

“이번엔 지난번과 좀 다르다.”

흰 우유와 발효유 등 유제품에 사용되는 원유(原乳) 가격이 10년 만에 최대치로 오르자 유업계에서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오는 10월부터 원윳값이 리터(ℓ)당 88원 오르더라도 흰 우윳값을 제때 올리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지금까지 유업계는 원유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인상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악화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정부의 물가 안정 요청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편이다. 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유업체 10곳과 ‘낙농제도 개편 시행상황 점검 및 유업계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자제를 요청했다. 벌써 두 번째 요청이다.

그래픽=정서희

29일 유업계에 따르면 원유 가격이 ℓ당 1087원으로 정해졌지만 당분간 흰 우유 가격이 3000원을 넘지는 않을 전망이다. 원윳값 상승을 고려하면 ℓ당 3000원이 넘는 것이 계산상 맞지만, 당분간은 다른 비용을 줄이는 것으로 버텨보겠다는 뜻을 밝힌 곳이 여러 곳이다.

한 우유업체 관계자는 “원유 가격을 비롯한 다양해 요인을 고려하면서 제품 가격을 계산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물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다 보니 고객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검토하려고 한다”고 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도 “아무래도 우유 가격 3000원은 소비자 저항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양한 요소를 검토해 고객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이는 지금까지 유업계가 보인 행보와는 다른 것이다. 유업계는 지금껏 원유 가격 인상에 맞춰 제품 가격을 올리는 방식으로 수익을 확보해왔다. 농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2013년 원유 가격 연동제가 시행되면서 원윳값이 12.7% 오른 940원으로 결정되자, 우유 가격도 5.2% 올랐다. 그 이후로 우윳값은 꾸준히 올랐고 최근 소비자들은 흰 우유를 ℓ당 2942원에 구매하고 있다.

이랬던 유업계가 원윳값 상승에도 가격 인상을 주저하는 이유는 정부의 가격 인상 최소화 요청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유업체 10곳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유업계의 협조를 당부했다.

박수진 식량정책실장은 “원유가격 인상이 과도한 흰 우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업계가 적극 협조해달라”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한 유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우유 가격 인상을 최소한으로 검토해줄 것을 두 차례 간담회에 걸쳐 당부했기 때문에 유업계 모두 고민이 많다”면서 “10월 이후 얼마나 손실을 감내할지, 우윳값을 언제 누가 먼저 올릴지 업체 간 눈치 싸움이 좀 있겠다”고 했다.

유업계에선 속앓이를 한다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계산법은 좀 다르다.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해 유업계가 큰 폭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한 만큼 올해는 그보다 작은 폭으로 인상할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 유업계가 원윳값 인상은 물론 인건비·물류비 등을 이유로 대폭 가격을 인상했는데, 이런 비용이 올해도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지원 대책을 이미 마련한 것도 농림축산식품부의 믿는 구석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우유를 사용하는 가공식품에 대해서도 큰 폭의 가격 인상이 이뤄지지 않도록 올 1월부터 가공유 구매에 대해 ℓ당 200원씩 하고 있다. 또 소규모 카페나 베이커리 등 외식업체의 경우 대부분 수입산 유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가격 인상 요인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통업체와의 고통 분담도 고민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4일 우윳값 인상에 대한 유통사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유통업체의 경우 제품 가격 인상에 따라 정률로 유통마진을 가져가는데 유통업체가 부담하는 추가적인 비용이 늘었는지 두루 살펴보고 고물가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픽 = 정서희

다만 식품업계에서는 유업계가 오랜 시간 수익성을 갉아 먹으면서 버틸 힘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익률이 높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매일유업은 지난해 10월 원유 가격이 오르자 올 1분기 우유 가격을 ℓ당 1888원으로 7.7% 올렸다. 우윳값을 올렸지만 1분기 매일유업의 영업이익률은 4.0% 수준. 작년 1분기 영업이익률(4.9%)과 대비하면 0.9% 하락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원윳값에 맞춰 우윳값을 올렸지만 다른 원·부자재 값이 올라 이익률이 떨어졌다”고 했다.

서울우유도 올 상반기 실적이 지난해보다 부진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한 차례 제품 가격을 인상하긴 했지만,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실적이 좋지 않다”면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고민이 많다”고 했다. 서울우유는 지난해 원유가격 인상 한 달 뒤 제품 가격을 6%가량 올렸지만 하반기 영업이익은 20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2% 줄었다.

정부의 입김이 한계가 있다는 점도 밀크플래이션(우윳값 인상에 따라 관련 상품값이 전부 오르는 것)이 어느 순간엔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다. 정부가 식품·유통업체에게 전방위적으로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응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매일유업은 컵커피 가격을 일부 내렸지만, 동서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은 커피값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제과회사 중에서는 오리온이 가격 인하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배스킨라빈스를 운영하는 SPC는 점주들과 아이스크림 가격 인상 논의를 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추석 연휴의 민심 등을 고려한 정부의 조치로 이해하고 있어서 10월 이후부터는 부담이 덜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기업들도 많다”면서 “정부 입장은 이해하지만 기업도 입장이 있다 보니 가격 인하 움직임을 더 많이 이끌어내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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