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식탐탐] ⑬ 여름에 먹는 풋사과는 익어도 초록색일까?
'가을만 제철?' 한여름 7월에 먹는 풋사과 '썸머킹'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전주=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풋사과는 익어도 초록색일까?'
사과는 인류에게 아주 친숙한 과일이다.
인류와 함께한 시간만 해도 장장 4천 년이 넘는다고 하니 과일 중에서는 손꼽히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늘 곁에 있어 친숙한 과일인 사과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은 고민에서 시작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풋사과로까지 나아갔다.
우선 던져 놓은 질문에 답을 해보자.
우리가 '아오리 사과'라고 알고 있는 쓰가루 품종의 풋사과는 익으면 일반적인 사과처럼 탐스러운 붉은 색을 띤다.
다른 사과와 달리 시큼한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풋사과는 사과가 착색되기 전에 따서 출하하기 때문에 푸른빛을 띠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과에 대해서 풋사과 정도의 설익은 지식을 갖고 있다.
좀 더 깊게 사과를 둘러싼 우리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탐구해보자.
사과는 장미목 장미과에 속하는 관속식물의 열매로 학명은 'Malus domstica'이다.
사과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원예작물이다.
농진청이 발간한 <인테러뱅-제36호>(2011)에 따르면 사과의 기원은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북부에서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사과는 우리가 현재 즐기고 있는 사과와는 거리가 있는 열매가 작은 야생종 사과였을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사과나무속 식물은 모두 23종으로 구분되며, 현재 재배품종의 대부분은 유럽의 야생종에서 유래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과는 여러 민족의 손을 거치면서 조금씩 개량돼 전 세계에서 2천500종이 넘는 품종으로 발전했다.
현재 63개국 492만㏊에서 연간 7천만t의 사과가 생산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사과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아타'(Alma-Ata)의 뜻이 바로 '사과의 아버지'라는 의미인 것을 보면 사과의 코카서스 기원설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는다.
한반도에도 사과의 재래종이라고 할 수 있는 능금이 오래전부터 재배되고 있었다.
고려에도 능금과 같은 과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랜 문헌은 송나라의 고려 기록인 <계림유사(鷄林類事)>다.
<계림유사>는 고려 숙종 3년인 1108년 고려를 다녀간 북송의 손목(孫穆)이 남긴 기록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사과는 개화기인 1880년대 서양 선교사와 일본 농업 이민자들에 의해 도입된 품종이다.
최초의 경제적 재배는 1902년 윤병수씨가 원산 부근에서 '국광'과 '홍옥' 품종으로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래종 사과인 능금과 사과를 혼용해 사용해온 흔적이 남아있다.
옛 어른들은 사과라는 말 대신 능금이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했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선 서양 사과를 능금으로 지칭했으나 1980년대에 이르면서 능금 대신 사과가 일반적인 명칭이 됐다.
능금과 사과는 엄연히 다른 품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혼용돼 사용해 왔으며 지금도 이를 뒤섞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고영 음식문헌학자는 "여러 문헌을 바탕으로 짐작건대 아득한 옛날 능금이 먼저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이후에 사과가 들어왔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분류학이 발전하면서 이 둘은 구분됐지만, 오늘날에는 '사과'가 능금까지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과에 대해 흔한 오해 중 하나로 '사과는 아침에 먹으면 금(金), 저녁에 먹으면 독(毒)'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사과는 언제 먹어도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흡수를 돕고, 배변 기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아침에 먹을 필요는 없다.
물론 위장 기능이 좋지 않은 사람은 위액 분비 촉진으로 속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이런 사람은 다른 과일도 저녁에 먹는 것을 피해야 한다.
농진청 사과연구소 박종택 농업연구사는 "사과를 밤에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유추해 보면 사과의 사과산이 위액 분비를 촉진해 위벽을 자극하면 속 쓰림 증상이 있을 수 있다"면서 "아마도 저녁 시간 공복에 사과를 먹고 속 쓰림을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과는 가을 과일로 널리 알려졌지만, 풋사과로 즐기는 일부 품종은 7월 한여름부터 수확이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아오리 사과가 풋사과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국내 조생종 품종인 '썸머킹'도 농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썸머킹은 1994년 품종 개발을 시작해 20년의 연구를 거쳐 2013년 품종 등록을 마쳤다.
개발 단계부터 아오리 사과인 쓰가루 품종을 대체하기 위한 조생종 사과로 육종됐다.
쓰가루 품종이 8월 하순에 출하가 가능한 것과 비교해 썸머킹은 7월 중순부터 출하가 가능하다.
특히 7월 하순을 기준으로 평균 과중(果重)이 285g으로 쓰가루보다 크고, 당도도 13.9 브릭스로 더 높다.
풋사과의 매력인 신맛을 내는 사과산도 0.43%로 쓰가루(0.40%)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 농업연구사는 "썸머킹은 조생종 사과 중에서도 맛이 좋은 편이고, 수확기가 이른 편이라 농가 소득에도 큰 도움이 된다"면서 "당도와 산도 등 맛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향후 풋사과 시장에서 경쟁력이 큰 품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사과 농가들은 썸머킹의 품질과 이른 수확 시기를 장점으로 꼽았다.
경북 김천으로 귀농한 김창중(52)씨는 "썸머킹은 조생종 품종이라 색깔이 들기 전에 수확해 손이 덜 가고, 병충해 방제에서도 만생종 품종보다 재배하기 용이하다"면서 "일찍 수확하는 만큼 일반 품종보다 약제 살포는 30% 정도 덜해도 되고, 색과 외관 등 선별 작업도 수월한 편이라 저 같은 초보 농민도 비교적 쉽게 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3년 전만 해도 썸머킹의 묘목을 구하기가 쉬웠는데 요즘에는 묘목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아무래도 쓰가루 품종보다 수확 시기가 이르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받는 점이 농가의 선택을 받는 이유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썸머킹 같은 풋사과를 주재료로 다양한 레시피를 응용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엠티푸드시스템 엄선용 수석 셰프는 "썸머킹은 당도와 함께 산도가 좋은 것이 특징이고, 과육이 단단한 풋사과의 특성이 좋다"면서 "사과 슬라이스와 고르곤졸라 치즈, 구운 호도, 꿀 등을 버무려 이탈리안식 샐러드로 활용하거나 여름철 시원하게 담은 열무 물김치에 넣어서 먹어도 좋다"고 평가했다.
지리산 제철음식학교 고은정 대표도 "물김치로 먹어도 좋지만, 새콤달콤한 풋사과의 매력을 살려 파, 마늘, 젓갈, 고춧가루로 양념해 사과 겉절이를 담그면 더 풋사과의 장점을 살려낼 수 있다"면서 "사과는 채를 쳐도 되고, 나박썰기를 해도 좋다. 새콤달콤한 사과 김치는 여름철에 입맛을 돋우는 데 좋은 메뉴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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