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과학용어] 중국은 왜 ‘갈륨’을 무기화했나

최정석 기자 2023. 7.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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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프랑스 화학자가 갈륨 최초 발견
일본인 과학자 3명이 산업적 상용화 기여
“LED 분야에서 갈륨 대체 불가능”
갈륨은 발광다이오드(LED)를 비롯한 각종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심 재료 중 하나이다. /위키백과

올해 들어 반도체 업계는 도통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들 수출을 통제하겠다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중국 상무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들은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희토류 정제·가공 기술을 포함시켰습니다. 반도체, 에어컨, 냉장고, 배터리, 전기자동차와 같은 첨단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희토류를 무기화하는 과정에 들어간 것입니다.

희토류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중국 상무부가 다음달 1일부터는 ‘갈륨’ 수출을 통제하기로 한 겁니다. 이는 갈륨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원자재 전문매체 아르거스 미디어에 따르면 미국, 유럽 시장에서 지난 20일 기준 갈륨은 ㎏당 332.50달러에 거래됐습니다. 이는 중국이 갈륨 수출 통제를 발표하기 전인 6월 말보다 18% 오른 가격입니다. 갈륨 수출 통제가 본격화하면 가격은 더 상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갈륨은 대체 뭘 만드는 데 쓰이는 걸까요. 중국이 희토류에 이어 갈륨을 무기화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뭘까요. 갈륨 공급이 끊긴다면 이를 대체할 소재는 없는 걸까요. 김상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도움을 받아 알아봤습니다.

1871년 주기율표를 처음 제시한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의 얼굴을 그려넣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표지. /사이언스 제공

◇ 프랑스가 발견한 원소, 주기율표 빈 자리를 채우다

갈륨은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지난 1871년 그 존재를 예측한 원소입니다. 멘델레예프는 학교 과학실에 흔히 붙어있는 주기율표를 1869년 세계 최초로 내놓은 과학자입니다. 현대 주기율표에는 118개 원소가 들어있지만 멘델레예프가 제시한 초기 주기율표에는 63개뿐이었습니다. 여기에 31번 원소인 갈륨은 없었죠.

갈륨을 처음 발견한 건 프랑스 화학자 폴 에밀 르코크 드 부아보드랑입니다. 멘델레예프가 갈륨의 존재를 처음 예측하고 4년이 지난 1875년이었습니다. 부아보드랑은 피레네 광산의 섬아연석 속에서 전기분해로 갈륨 원소 산화물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갈륨이라는 명칭은 부아보드랑의 모국인 프랑스의 옛 이름인 ‘갈리아’에서 따왔습니다.

질화갈륨을 이용한 청색 LED 상용화 공로를 인정받아 2014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 과학자들. (왼쪽부터) 아카사키 아사무 메이조대 교수,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 제공

◇ 日에 노벨상 안겨준 청색 LED, ‘갈륨 전성시대’를 열다

현재 갈륨은 반도체, 태양광패널과 같은 첨단산업 핵심 부품을 만드는 데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질소와 갈륨을 섞어 만든 화합물인 ‘질화갈륨’은 스마트폰 시대 필수품인 USB 충전기부터 시작해 발광다이오드(LED), 차량용 반도체와 같은 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질화갈륨은 전기전도도가 높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똑같은 에너지를 이용했을 때 다른 소재들보다 전기를 더 많이,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이죠. 또 전압을 버티는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같은 성능,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도 질화갈륨을 쓰면 더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화갈륨을 이용해 각종 첨단 부품을 양산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질화갈륨을 결정체로 만드는 과정에서 번번이 고체형태가 깨지면서 가루가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에 수많은 기업들이 질화갈륨을 산업에서 쓰기를 포기했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던 건 일본 과학자들 공이 컸습니다. 아카사키 이사무 일본 메이조대 교수,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수년간 연구 끝에 질화갈륨 결정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LED 양산이 시작됨과 함께 다른 첨단 부품을 만드는 데도 질화갈륨이 쓰일 수 있게 됐습니다. 질화갈륨 결정체를 만든 일본 과학자 3인방은 나란히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됩니다.

주기율표 앞에 중국 국기가 놓여있다. 주기율표 가운데 있는 건 31번 원소 갈륨과 32번 원소 게르마늄. /로이터

◇ 매장량 68%, 생산량 95%가 중국에

현재 세계 시장에 나와있는 갈륨은 절대다수가 중국산입니다. 중국매체 증권시보에 따르면 전 세계 갈륨 매장량 27만9300t 중 중국에 68%인 19만t 정도가 묻혀있습니다. 중국은 매년 540t씩 갈륨을 생산하는데 이는 전 세계 공급량의 98% 수준이죠.

중국이 희토류에 이어 갈륨 수출까지 통제하려는 건 미국과 벌이고 있는 패권 경쟁의 일환입니다. 미국이 한국, 일본, 대만을 끌어들여 글로벌 반도체 협력 시스템 ‘칩4 동맹’을 지난해부터 가동시키자 중국은 세계 최대 원료 공급국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자원을 무기화하는 것이죠.

다만 중국이 갈륨을 권력 삼아 휘두르는 행태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천펑잉 베이징 현대국제관계연구소 연구원은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중국이 갈륨 수출을 통제하는 건 국가 안보와 이익에 관련된 한정된 자원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상현 교수도 “갈륨 생산·수출량을 생각하면 중국 입장에서 갈륨은 일종의 돈줄이자 수출 효자다”라며 “때문에 수출 통제가 오래 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발광다이오드(LED) 하나가 빛을 내고 있다. /이지킷 제공

◇ 고전압 반도체는 대체 가능, LED는 대체 불가

그렇다면 중국이 정말로 갈륨 공급을 완전히 끊어버린다면 갈륨 대신 쓸 소재가 있을까요? 이는 부품 종류에 따라 다를 것으로 보입니다. USB 충전기, 열차, 발전소 제작에 필요한 고전압 반도체 쪽은 갈륨이 없어도 대응이 가능합니다. 실리콘과 탄소를 섞어 만든 실리콘 카비이드가 탄소 대신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LED 분야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갈륨의 자리를 당장에 대체할 수 있는 소재가 없는 상황입니다. 형광등에 쓰이는 LED부터 최신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마이크로LED까지 갈륨을 안 쓰는 제품군이 없는 상태입니다. 김 교수는 “사실상 빛을 내는 소재라면 반드시 갈륨이 들어가야 한다”라며 “갈륨 대체 소재를 찾기 위한 연구는 여럿 진행되고 있겠지만 바로 다음달부터 사용 가능한 건 딱히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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