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안 해" 英 왕실 바꾼 파격…전 세계가 사랑한 이 여성[뉴스속오늘]

김미루 기자 2023. 7.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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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당시 찰스 왕세자가 1981년 7월29일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와 입 맞추는 모습. /AP=뉴시스
1981년 7월29일 다이애나 스펜서가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기 왕위 계승 예정자와 막 20세가 된 신부는 세기의 결혼을 올렸다. 6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으며 50개국에 생중계로 중계됐다.

생전 이혼했기 때문에 '비(妃)'라는 명칭을 떼야 하지만 아직 다이애나 비(Diana, Princess of Wales)로 불리고 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에서도 서민 곁에서 낮은 자세로 베풀었기에 그렇다는 평이 많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왕실의 전통과 품격을 상징하는 존재로 사랑받았다면, 다이애나 비는 보수적인 왕실에 변화를 가져온 파격과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英세자빈 된 유치원 교사…아들 학교 운동회서 '맨발 달리기'
1989년 해리 왕자의 학교에서 열린 운동회. 어머니 달리기 시합에서 우승하기 위해 맨발로 결승선을 뛰어넘는 다이애나 비의 모습. /사진=영국 텔레그래프
다이애나 비는 명문 스펜서 백작 가문의 자제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해 상류층 아이들이 다니는 핌리코의 유치원에서 시간제 보조 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찰스 황태자와 만났다.

결혼부터 파격이었다. 전통 결혼 서약에서 "남편에게 순종하겠다(obey)"는 '순종' 서약을 왕실 최초로 거부했다. 대신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그를 사랑하고 위로하며 존경하고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향후 그녀의 아들들도 부부 서약에서 '순종'을 생략하면서 이 단어는 영국 왕실의 금지어가 됐다.

다이애나 비는 결혼 이후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을 낳았다. 그는 통상 유모들이 왕자를 양육하는 것과 달리 직접 두 아들을 돌봤다. 아들의 학교 운동회에 참석해 엄마들의 달리기 시합에서 맨발 투혼으로 1등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예법상 왕족이 공식 석상에서 맨발을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왕실 입성 3년 만에 당시 18세 이상 영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가장 좋아하는 왕실 인물'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그는 무려 45%의 지지를 받았다. 시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46%)와 근소한 차이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두 아들도 어머니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주기를 맞은 다이애나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애나, 우리 어머니: 그녀의 삶과 유산'에서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는 어머니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해리 왕자는 "저희 축구 경기를 보러 와서 양말 속에 사탕을 몰래 넣어주시고는 했다"며 "축구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는 유니폼 전체가 과자로 부풀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닫힌 문 뒤에서 그녀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이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윌리엄 왕세자도 몰래 사탕을 주던 어머니 모습을 회상하며 "격식에 매이지 않고 유머를 즐겼던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손주들을 놀리는 할머니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 가장 후회돼"…왕세자 찰스 불륜에 파경
1992년 11월2일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에 방문한 모습. /사진=국가기록원 대한뉴스 갈무리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다이애나 비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찰스 왕세자와는 쇼윈도 부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왕실 생활은 너무 엄격해 다이애나 비와 맞지 않았다.

심지어 찰스에게는 내연녀가 있었다. 현재 왕비 자리에 오른 카밀라 파커 볼스(76)다. 2004년 미국 NBC방송은 다이애나 비가 결혼 전부터 찰스의 불륜 사실을 알고 있어 결혼 자체를 비관했으며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했다고 밝힌 육성 테이프를 공개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촬영된 비밀 테이프였다.

당시 그는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찰스와 결혼한 일"이라며 "그날 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복도를 걸어가면서 나는 그녀(카밀라 파커 볼스)를 찾고 있었다. 결국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이미 결혼 전에 불륜을 알고 있었다는 것.

1992년 11월 그들의 부부로서 마지막 공식 순방지는 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한뉴스에 기록된 당시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은 시종일관 어두운 표정이다. 결국 한 달 뒤인 12월 그들은 별거에 돌입했고 1996년 8월 최종적으로 이혼에 합의했다.

이후 그의 삶은 길지 않았다. 이혼 다음 해인 1997년 8월31일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뿌리치다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향년 36세. 전 세계가 다이애나 비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김영삼 당시 대통령도 애도를 표했다.
"특권층의 의무"…에이즈 환자와 기꺼이 악수
브라질 상파울루에 위치한 보육원에 방문한 다이애나 비. 원아 대부분은 HIV 양성 혹은 에이즈에 감염돼 있다. /사진=미국 타임지
다이애나 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특권층의 의무)를 실현한 사람으로도 크게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혼인 기간에만 그는 100개가 넘는 자선단체의 회장이거나 후원자였다. 노숙자, 장애인, 어린이, 에이즈 환자 등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인지도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용했다. 에이즈 환자들과 스스럼없이 악수하는 장면을 보여줘서 단순 신체 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노숙자 보호소에 자주 방문했으며 두 왕자를 이 같은 자리에 데려가기도 했다. 이에 영향받은 윌리엄 왕세자와 해리 왕자는 현재까지 에이즈 환자, 노숙자, 정신질환자 인식 개선 등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불과 두 달 전, 다이애나 비는 존 트라볼타와 함께 춤을 출 때 입은 드레스를 포함해 79벌의 옷을 런던과 뉴욕 크리스티 옥션 경매에 부쳤다. 암과 에이즈 환자를 위한 성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손 메모를 통해 "이 멋진 자선 모금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직 단 한 사람, 아들 윌리엄이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생전 함께 활동했던 자선단체 대표들이 그의 가족과 함께 관 뒤에서 나란히 걷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자선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한다는 의미였다고 영국 왕실은 전했다.

※ 참고자료
영국 왕실(The Royal Family) 공식 웹사이트
HBO 다큐멘터리 '다이애나, 우리 어머니: 그녀의 삶과 유산'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한뉴스 1930호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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