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정찰총국 동원해 국내 태양광 설비 밀수”
북한의 대남 공작 총괄부서인 정찰총국이 국내 태양광 설비를 밀수입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설비 밀수에는 공작원까지 동원됐다고 한다. 정찰총국이 국내 태양광 시스템을 밀수입하다 적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은 북한이 국내 태양광 설비를 조직적으로 밀수입하려 한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경찰청 안보수사과는 2016년 4~7월 북한에 국내 태양광 발전시스템 등을 밀반출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부산 소재 무역회사에 다니는 50대 후반 B씨를 작년 8월에 검거했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B씨는 지난 2015년 초부터 북한 정찰총국 A 공작원과 중국에서 세 차례 만나고, 이메일 등을 통해 190여 차례 교신해 태양광 설비 1500여 개를 북한에 밀반출한 혐의를 받는다. 부산지검은 B씨를 수차례 소환 조사했고, 조만간 기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정찰총국은 국내 태양광 기술을 모방할 목적으로 중국에 있는 요원을 통해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국정원에 A씨 신분을 확인한 결과 정찰총국 요원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정찰총국 요원 A씨는 평소 중국 무역 회사와 거래해오던 B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고, 생필품 등 소규모 거래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거래로 B씨가 경계를 풀기 시작하자, A씨는 2015년 4월 자신의 국적을 북한이라고 밝히며 B씨에게 북한으로 국내 태양광 제품을 밀반입하는 100억원 규모의 거래를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A씨는 B씨에게 북한 내 연구기관 성능 테스트를 합격할 경우 거래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곧이어 샘플 테스트가 통과하자, B씨는 국내 세관에 북한 정찰총국이 설립한 중국 내 가짜에 태양광 설비를 수출하겠다고 신고했다. 당시 시세 5000만원가량의 태양광 설비를 선박을 통해 중국을 거쳐 북한에 넘긴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정찰총국은 B씨로부터 국내 태양광 기술과 설비를 확보하자 연락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북한 정찰총국이 설립한 중국 내 가짜 회사를 통해 받은 판매 대금은 3000만원가량이다. 5000만원 상당의 태양광 설비를 밀반출했는데, 이보다 2000만원 정도 적은 대가를 받은 셈이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북한 정찰총국 요원인 줄 몰랐다”며 “나는 A씨 약속만 믿고 거래했다가 손해를 본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 당국은 북한이 2015~2016년 정찰총국을 총동원해 국내 태양광 제품을 밀수입하는 편법을 썼고, 이를 통해 북한 내 태양광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고 보고 있다. 당시 북한이 밀반입한 기술은 ‘독립형 태양광 발전시스템’이다. 외부 전력 공급망 없이 자체적으로 태양광 발전을 돌리는 전력 시스템이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충전조절기 등으로 구성되는데, 설치가 쉬워 전력망 보급이 어려운 산간·격오지 등에 사용되는 제품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신정수 연구위원은 본지 통화에서 “2013~2014년 북한 태양광 설비는 대부분 중국 수입에 의존해왔는데, 현재 북한은 태양광 설비를 자체 생산하는 등 중국 태양광 기술 수준과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에서 태양광 패널을 이용한 발전량은 연간 149GWh 정도로, 2020년 북한 가구 전기 소비량(2129GWh)의 7.0%를 충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북한이 당시 고질적인 전력난을 해소할 목적으로 국내 태양광 설비·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 2013년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의 재생에네르기법(에너지법)을 처음 제정했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태양열 등을 이용해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하겠다고 강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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