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국 상수도관에 깔린 미인증 녹물 억제장비
전국의 상수도관에 정부로부터 인증받지 않은 ‘부식 억제 장비’가 설치된 것으로 28일 파악됐다. 전국 174개 지자체 수도 사업자 중 상당수가 이 미인증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수도관은 노후화되면 파열되거나, 녹물이 나오는데 이를 억제하는 장치가 부식 억제 장비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전국 지자체들을 상대로 ‘상수도관 내 적합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 설치’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권익위가 이번 조사를 실시한 이유는 국내 민간 업체 중 한 곳도 정부로부터 부식 억제 장치 적합 인증을 받지 못했는데, 지자체가 이 업체들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와 관련된 자재는 수도법에 따라 한국물기술인증원으로부터 ‘적합 인증’을 받도록 돼 있다. 부식 억제 장치가 적합 인증을 받기 위해선 부식 억제율이 최소 25% 이상이어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모두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부식 억제 장비는 크기·성능에 따라 1000만~9000만원 정도에 거래된다. 이 때문에 지자체가 성능이 보장되지 않은 고가 장비에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도의 한 상수도사업소는 지난 5월 ‘노후 상수관로 수질 개선 사업’ 명목으로 4억원을 들여 부식 억제 장비 12개를 구입했다. 사업소 관계자는 “제조 업체에 불법 여부를 물어봤는데 ‘다른 지자체에서도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본지가 조달청이 운영하는 국가 종합 전자 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를 통해 조사해본 결과, 적합인증 관련 법이 제정된 2019년 1월 이후 전국 지자체 수도 사업자들이 낸 부식 억제 장비 구입 공고는 60여 개다. 대부분 미인증 국내 장비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 사업자들이 미인증 부식 억제 장비를 상수도관에 설치하는 건 막대한 상수도관 교체 비용 때문이다. 충북의 한 수도 사업소 관계자는 “상수도관 교체가 근본적인 대책이지만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고, 교체 기간에 주민 불편이 발생한다”며 “상수도관을 세척하는 것 역시 지속적으로 비용이 발생하고 일시적으로 단수가 되는 등 애로사항이 많아, 불법이지만 부식 억제 장비를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경부는 권익위 조사를 토대로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수도법에 따르면 인증을 받지 않은 수도용 자재나 제품을 제조, 수입, 공급하는 경우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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