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도서관] 남과 다르다고 두려워하지 마… 너는 너다울 때 가장 멋지단다
분홍 귀고리
세라핀 므뉘 지음 | 실비 세르프리 그림 | 양혜진 옮김 | 산하 | 96쪽 | 1만6500원
“이야! 귀고리 진짜 예쁘다!” 마을에서 제일 예쁜 중학생 여자아이 아나이스가 말했다. “그 귀고리 나 좀 빌려줄래?” 친절한 사람들, 유쾌한 친구들,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던 가을. 하지만 아나이스의 귀에서 그 예쁜 분홍 귀고리가 찰랑거리는 순간,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돌이킬 수 없이.
다음날부터 마을 여자아이들이 비슷한 분홍 귀고리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모여 와글와글 떠드는 구내 식당에서도, 쉬는 시간 사물함 앞에서도. 여자아이들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서로의 분홍 귀고리를 칭찬했다.
겨울이 되자 어른들도 분홍 귀고리를 했다. 처음엔 엄마들이, 그 다음엔 여동생들이, 그 다음엔 할머니들도. 그 해 크리스마스, 여자들 선물은 온통 분홍 귀고리였다. 둥근 귀고리, 깃털 귀고리, 과일 모양 귀고리, 금빛 혹은 은빛이나 진주 귀고리는 모두 사라졌다.
봄이 되자 분홍 귀고리를 한 여자들은 자기들을 ‘별’이라고 구분해 불렀다. 모두 분홍 귀고리가 잘 보이도록 머리를 귀 뒤로 넘겨 빗은 뒤 핀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올림머리를 할 수 없는 여자들은 삭발을 했다. 결국엔 모두가 아예 검은색 옷만 입었다. 오직 ‘우리’를 ‘너희들’로부터 구분하는 분홍 귀고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까마득한 옛날, 나무 위에서 내려와 땅 위를 걷기 시작한 유인원이었을 때부터 적과 친구를 빠르게 식별하는 건 인간에게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여전히 우리는 가장 단순한 기준으로 타인을 구분하고 싶어한다. 여름을 좋아하느냐 겨울을 즐기느냐, 오이를 먹느냐 싫어하느냐,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이 구분이 인종이나 민족, 종교나 정치적 입장까지 미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런 구분으로 서로를 소외시키고 차별하거나 심지어 죽고 죽였다.
한 번 시작된 분홍 귀고리의 물결은 평화롭던 마을을 둘로 갈라 놓았다. 아이들은 더 이상 꿀벌 무늬 셔츠도, 예쁜 주머니가 달린 멜빵 청바지도 입을 수 없었다. 아이스크림 노점이 먼저 검은 옷을 입고 분홍 귀고리를 한 아이들에게만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다음은 케이크 가게, 그 다음은 과일 가게였다. 마침내 가족 중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분홍 귀고리를 해야만 빵과 채소를 살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분홍 귀고리를 떼어낸다. 검은 옷 대신 알록달록한 옷에 청바지를 입고 거리로 나간다. 모든 변화는 관습이나 유행, 대세라 불리는 무언가를 용기있게 거스를 수 있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유행을 이끌고,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에 너도나도 휩쓸리는 시대.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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