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故人이 위인일 순 없다… 찬사 줄이고 실수도 기록하라

곽아람 기자 2023. 7. 29. 04: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SJ 부고 전문 기자가 펴낸 ‘亡者의 삶’ 어떻게 쓸 것인가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제임스 R. 해거티 지음|정유선 옮김|인플루엔셜|396쪽|1만8000원

모든 고인(故人)은 위인(偉人)이다. 부고 기사는 대개 고인에 대한 찬사로 차고 넘친다. 그나마 공과(功過)를 따지는 건 지도자나 정치인 등의 부고에 제한된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저널 부고 전문기자인 저자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부음조차 찬사 일변도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명인 아닌 일반 부음은 빈소와 발인 날짜, 유족명 등만 간단하게 알리는 우리 언론과는 달리, 서구 신문은 부고(obituary) 지면을 별도로 마련, 망자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한다. 이러한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죽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관심사.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저자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자.

◇”헌사는 지면 낭비일 뿐”

‘훌륭한 부고’가 되려면 특히 ‘헌사’를 넣지 말아야 한다. 걸출한 사람들의 헌사가 한두 개쯤 들어가면 부고의 격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히려 헌사가 들어가면 “너무 뻔해서 흥미가 떨어지고, 대개 한없이 관대해서 믿음이 덜 간다”는 것이다. “그런 문구는 지면을 허비하고 독자들을 괜스레 지치게 한다.”

저자는 잘라 말한다. 부고는 성인의 반열에 오를 후보를 지명하는 글이 아니라고. 대표적으로 자제해야 할 것이 자질구레한 수상 내역을 적어넣는 것이다. 이력에 대한 과장도 금물. “하버드 대학교에서 6주 과정을 수료했다면, 하버드 출신이라고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

부고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일도 있다. 고인이 배우자와 사이가 좋았다든가 하는 일이 대표적. 부고를 읽다 보면 고인은 거의 항상 가족에 헌신한 것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묻는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을 혐오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영원히 사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 사람들에 관한 부고는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인의 실수와 약점도 기록해야”

엄숙한 글만 품격 있는 부고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지만, 저자는 “부고마저 재미없다면 죽는 데 무슨 낙이 있을까?” 질문한다. “장례식에서 최고의 순간, 즉 슬픔을 잠시 내려놓는 순간은 추도사를 낭독하는 사람이 고인의 재미있는 버릇이나 익살스러운 말과 행동을 상기시킬 때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유족에게 고인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냐고 물으면 보통 “있긴 하죠. 그런데 부고에 쓸만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네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저자는 “우리의 실수와 유쾌한 순간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또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린다”고 말한다.

캐나다 만화가 마이클 드애더는 어머니의 부고를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쿠폰 수집가이자 수제 쿠키 장인, 위험한 운전자, 약자의 대변인, 무자비한 카드 플레이어이자 자칭 ‘퀸 비치(Queen Bitch)’였던 마거릿 매릴린 드애더가 2021년 1월 19일 화요일에 사망했다.” 드애더가 어머니의 개성을 담아내고 싶어 작성한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며 수백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내 부고는 내가 가장 잘 쓴다”

“아무것도 운에 맡기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망칠 수 있어요.” 50년 기자 생활을 마치고 노인들에게 자기 부고를 직접 작성하는 법 강의를 한 톰 바타베디안의 말이다. 가족과 친구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부고 작성을 맡더라도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나 성취를 놓칠 수 있으니 생전에 직접 쓴 글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 그 누구도 내 부고를 나보다 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부고를 쓸 때와 마찬가지로, 내 부고를 쓸 때도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었는가? 가급적이면 내가 죽은 뒤 유족이 사진을 고르도록 맡기지 않는 게 좋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진을 고를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의 죽음을 어떤 문장으로 알릴지도 고민해볼 만 하다. ‘사망했다’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뒀다’…. 부고의 첫 문장은 다양하다. “프레드는 95년을 멋지게 보낸 뒤 다음 모험을 향해 떠났다”처럼 은유적인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내 부고에 내가 ‘사망했다’라고 쓸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단순한 편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좋아하는 동사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어쨌거나 이건 내 부고니 말이다.”

부고란 무엇인가. 저자는 두 가지로 정리한다. 신문이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사망 공고.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포함한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쓰는 더 길고 풍성한 인생 이야기. 사후 내 인생의 이야기가 후세에 어떻게 전해질지 생전에 대비하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은가. 원제 Yours Truly.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