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식사(食史)] 껑충 뛰는 팁, 폭락하는 노동의 권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한국 택시까지 파고든 팁
요식업계를 대상으로 경계해 온 팁 문화가 엉뚱한 곳에서 등장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택시업계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 앱에 팁을 줄 수 있는 기능을 업데이트했다. 카카오T 앱으로 호출한 기사에게 별점 5점을 주면 창이 등장한다. 일부 이용자에게만 시범 운영 중이라는 이 팁 기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요식업계를 통해 팁 문화를 바라본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다.
이런 시도를 통해 한국에 팁 문화가 틈새를 비집고 더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갈 거라 생각하는 건 섣부르다. 하지만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작은 가능성이라도 신중하게 그리고 회의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팁 문화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소비자 혹은 사용자에게 떠넘기는 방편으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팁플레이션'?
팁 문화가 사회적 문제로 고착된 지 오래인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연방정부 기준 팁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한 시간에 2.13달러(약 2,720원)다. 일반 직종 최저임금(시간당 7.25달러)의 30% 수준이다. 1991년 책정된 이후 변화가 없는 금액이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팁을 받는 근로자의 팁을 포함한 총수입이 일반 직종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고용주가 이를 보전해 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각 주 정부가 실질적으로 좀 더 높은 최저임금을 책정하고는 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팁을 받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받지 않는, 고정된 시급의 노동자에 비해 훨씬 낮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미국은 전방위적으로 ‘팁플레이션’(팁+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총비용의 15%가 적정한 팁의 비율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이제 20, 25%까지 올라가고 있다. 심지어 서비스랄 것을 제공하지 않는 드라이브 스루 창구에서도 팁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에 시달린다. 팁을 받는 낮은 임금의 부담이 소비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팁 비용이 치솟자 진력이 난 미국인들은 ‘대체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팁을 제공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팁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따르면, 팁(tip)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세 가지 기원설이 있다. 첫 번째로는 '급행료(To Insure Promptness)’의 이니셜이다. 커피숍 등에서 빠른 서비스를 받고자 접객원에게 건네는 소액의 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늘날 팁의 쓰임새와 비슷하다. 먹고 마셔서 즐거운 손님이 그렇지 못한 접객원의 사정을 헤아려 건넨 돈이 팁이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족이 마차를 타고 가면서 안전한 통행을 위해 길에 던진 동전이 기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유래든 ‘소액의 돈을 건네는 행위’로서 팁이라는 단어가 쓰인 역사는 1600년대까지 올라간다. 한편 동의어로 쓰이는 사례금(gratuity)의 역사는 15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라틴어로 ‘공짜 선물’을 의미하는 그라투이타스(gratuitas)에서 비롯됐다. 하인이 일을 잘했을 때 받는 가욋돈에서 비롯되어 17세기에는 숙박업소나 커피하우스 등에서 사용자가 팁을 지불하게 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던 팁의 배신
이때만 하더라도 팁 문화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였다. 가진 이가 사회적 책임을 좀 더 진다는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에게 지불하는 금액이었다는 의미다. 원래 이랬던 팁 문화가 1860년대에 미국으로 유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변질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미국의 사회적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다. 남북전쟁(1861~1865)으로 인해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었지만 백인 (남성) 사업가들은 이들을 동일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무엇보다 노동의 대가를 통해 구현됐다. 갓 해방된 흑인 노예들은 자유인이지만 사회적 기반이 없어 접객업에 다수가 몰렸다. 이들에게 고정 임금 대신 흑인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팁을 적용함으로써 백인 사업가들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됐다. 원래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포함되어야 할 금액을 팁으로 돌림으로써 사업가 자신은 마치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으스댈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당신 하는 데 달렸다’와 같은 거짓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최저임금 제외... 흑인, 여성 노동의 착취
이렇게 변질한 팁 문화는 특히 요식업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렸다. 무엇보다 접객원 대부분이 사회적인 세력으로 집결하지 못한 흑인이면서도 여성이라 그 '약한' 틈을 파고들었다. 당시 흑인 여성은 요식업의 접객원(웨이트리스), 남성은 주로 기차의 짐꾼(포터)으로 종사했다. 그런 가운데 남성 짐꾼들은 A. 필립 랜돌프의 주도 아래 최초의 흑인 노조를 결성해 당시 선두를 달렸던 철도 업체 풀먼 컴퍼니에 맞섰다. 그 결과 짐꾼들은 단체 행동을 통해 더 높은 임금을 받는 한편 가외로 팁도 챙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성이 대부분이었던 접객원들은 정당한 보상이어야 할 임금의 대부분을 부정기적인 팁으로 갈음해야만 했다.
이런 현실이 법으로 고착했다. 1938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최저임금법을 인준한 가운데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흑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업종이 타격을 입었다. 1966년 최저임금법이 전면 개정되었을 때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팁의 입지가 한결 더 공고해졌으니 되레 나빠졌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까지 팁을 받는 업계의 종사자들에게는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았다. 그렇다, 0달러였다는 말이다.
기술이 강권하는 팁
이렇게 형성된 온 팁 문화는 결제 및 매출 시스템인 포스(POS, Point of Sale System)로 요즘 또 망가지고 있다. 태블릿 등을 활용한 새로운 시스템은 업체가 팁 금액을 직접 계산 및 입력해 소비자에게 제시할 수 있도록 설정돼 있다. 정확하게 악용한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업체가 일부러 높은 비율의 금액만을 팁으로 미리 설정해 실질적으로 강권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 내에서 표준이라고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팁 비율인 매출액의 15%보다 높은, 20% 이상을 기본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크레디트카드닷컴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22%가 이처럼 미리 계산 및 제시되는 팁이 강요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이러한 경향을 시스템을 개발 및 보급하는 기업들이 일정 수준 강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새로운 포스 시스템은 스퀘어, 토스트, 클로버의 세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들의 시스템이 특히 소상공인의 사업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제공하는 단말기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등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소비자가 더 많은 팁의 부담을 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미국의 팁 문화는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삶의 비용 증가에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범위까지 맞물려 팁은 일종의 사회적 염증으로 전락했다. 2022년의 연구에 의하면 팁의 전체 비율이 줄어든 것은 물론, 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응답도 60%에 달했다. 한정된 돈을 가지고 이리저리 팁을 지불하다 보니 결국은 원래 받아야 할 이들이 적게 받거나 받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팁을 담보로 삼은 성희롱이나 추행 등의 진짜 사회적 문제까지 고려하면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팁은 미국 현지에서도 없어져야 할 문화이며 국내에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법과 체계로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가 수많은 개인의 각자 다른 판단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점들이 분명히 있지만 팁 문화는 확실히 아니고 우리는 미국의 현재에서 교훈을 삼아야 한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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