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 빼앗는 상속세

전재호 기자 2023. 7. 2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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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견기업 창업자는 "기업은 국가와 동업하는 것"이란 말을 자주 한다.

나라가 기업을 가져가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업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받으면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의 수가 적고 상속재산이 대한민국 가구당 평균 자산(5억4772만원)의 5배가 넘다 보니 상속세를 낮춰달라는 기업인의 호소는 늘 외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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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견기업 창업자는 “기업은 국가와 동업하는 것”이란 말을 자주 한다. 나라가 도로 등 기반 시설을 만들어 주고 경찰과 군대로 지켜주니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순을 눈앞에 둔 이 창업자는 늘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면서도 상속세 얘기가 나오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라가 기업을 가져가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기업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받으면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최대 60%의 세금을 기업 지분으로 낸다고 하면 창업자가 기업 지분을 100% 갖고 있다고 해도 2대로 가면 40%, 3대로 가면 16%로 줄어든다. 사실상 기업의 소유권을 나라에 빼앗기는 구조다.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게임회사 넥슨의 지주사인 NXC의 2대 주주가 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고 김정주 창업자의 유족이 상속세를 지분으로 물납하면서 생긴 일이다. 상속세 규모는 약 6조원으로 알려졌는데, 6조원의 현금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분을 팔아서 현금으로 내거나 지분을 물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임업을 전혀 모르는 공무원이 NXC의 2대 주주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속세는 정부나 정치인이 보기에 인기가 없는 주제다. 작년에 상속을 신고한 피상속인(사망자) 수는 1만9506명으로 전체 사망자 37만2800명의 약 5%에 불과하다. 5%만 상속세를 내고 95%는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는 말이다. 작년 피상속인의 총 상속재산은 56조4037억원으로 인당 평균 약 29억원이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의 수가 적고 상속재산이 대한민국 가구당 평균 자산(5억4772만원)의 5배가 넘다 보니 상속세를 낮춰달라는 기업인의 호소는 늘 외면받았다.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하다가 나중에 사망하면 남은 가족이 회사 지분 일부를 반드시 팔거나 정부에 넘기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꼭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볼 때가 됐다. 한국전쟁 전후로 회사를 만든 기업인들은 이제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 자녀들이 회사를 없애지 않고 일자리를 계속 유지해 주는 게 오히려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정부는 가업승계에 대한 증여세 연부연납 기간을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과 저율(10%)로 과세하는 구간을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는 그간 중소·중견기업이 요청해 온 것인데, 마침내 반영됐다. 증여세 연부연납 기간이 20년으로 길어지면 사전에 주식을 증여 받고 일하면서 급여와 배당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 전체 세수에 영향이 없고 경영권도 지킬 수 있어 일석이조다.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도록 나라가 편의를 봐줘야 하느냐는 지적이 있지만, 오너 자녀들은 회사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한 중견기업 오너 3세는 다른 기업 오너가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 자녀들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그만큼 기업을 이끄는 책임이 무겁고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기업 승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과는 성격이 다르다. 중소기업은 국내 전체 고용의 약 83%를 차지한다. 과도한 상속세로 경영권이 흔들리면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증여세 연부연납 기간을 늘린 데 이어 상속세율 자체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전재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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