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림 서울대 총장 “다양성 위해 지방 학생 대폭 뽑겠다”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이 26일 본지 인터뷰에서 “다양성 확보를 위해 지역 균형 선발 인원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발전과 학생 다양화를 위해 서울대 신입생 중 지방 학생 비율을 대폭 늘리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날 “사회에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만큼 서울대 학생들도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며 “그것이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가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는 지방 국립대와 공동 연구·교육 협력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 균형 선발은 수도권 대학들이 입시에서 지역 인재를 뽑기 위한 전형이다. 서울대가 2005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서울대는 2024학년도 기준 신입생 3700명 중 17.9%(662명)를 지역 균형 전형으로 선발한다. 그러나 이 중 절반이 수도권 지역 출신이라 애초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서울대 신입생 중 지방 출신은 35.4%에 불과하다. 2010학년도 41.9%에서 꾸준히 감소 추세다. 서울 등 수도권이 64.6%이고, 강남·서초구 고교 출신만 10.4%다.
유 총장은 “학생 선발의 자율이 주어지면 지역 균형 선발에 새로운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는 학교장 추천 학생이 대상인데, 교육 환경과 잠재력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균형 대폭 확대는 이르면 현재 고1 대상인 2026년 입시부터 적용될 전망이다.
“공교육 강화… 점수로 줄 세우기 개선”
-최근 입시 개혁 목소리가 높은데.
“대입 제도는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초·중·고교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 출생 인구가 1년에 25만명밖에 안 된다. 모두 귀중한 국가 자원이다. 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입시·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대입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공교육 강화가 궁극적인 답이다. 수능은 초·중·고 과정에서 충분히 학습했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어야 한다. 수능을 자격 고사화하고, 대학에 선발 자율권을 줘야 한다. 대학도 (면접 등에서) 교과 지식보다 잠재력과 역량을 평가하는 저마다 특화한 선발 방식을 세워야 한다. 대학 가는 방법이 다양해지고 지식 대신 역량을 평가하면 사교육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자율이 늘면 ‘본고사’ 부활로 사교육이 늘 것이란 우려가 있다.
“서울대는 본고사를 부활할 생각이 전혀 없다. 본고사는 공정하지 않다. (사교육비를 줄이려면) 공교육을 강화하고, 입시를 다양화해 ‘점수로 한 줄 세우기’를 개선해야 한다. 수능 점수만 보고 뽑는 폐해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다. 서울대는 정시 전형에서도 수능 성적과 고교 내신을 모두 평가한다.”
-서울대는 입시를 어떻게 바꿀 건가.
“대입에선 다양성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 균형 선발 비율을 확대하겠다. 이와 관련한 대입 정책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에선 수능과 고교 교과 과정을 연계해 평가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지금은 정시 모집 인원 비율 등을 교육부가 정해준다. 선발 자율성이 확보된다면 지역 균형에도 새 방식을 도입해 보겠다. 하버드대 같은 유수 대학들은 학생 구성을 사회 전체 구성과 유사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배워야 사회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대 학생은 수도권과 고소득층에 집중돼 다양성이 떨어진다. 학생뿐 아니라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학생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지방 국립대와 공동 연구도 늘릴 것”
-입시에서 무엇이 중요해지나.
“면접이 중요해진다. 면접은 학업 성취도가 아니라 학생을 종합적으로 본다. 다중 미니 면접(MMI) 등을 활용해 학생의 역량과 재능, 잠재력, 인성까지 보는 것이다.”
“미래역량 키우는 융합적 교양 코스 도입”
-서울대는 어떤 혁신을 준비하고 있나.
“2025년은 서울대가 흩어져 있던 단과대들을 관악 캠퍼스로 합친 ‘종합화 50년’이 되는 해다. 이런 의미 있는 해에 ‘학부 대학’을 도입할 예정이다. 1·2학년들이 듣는 공통 핵심 역량 교육을 완전히 바꾼다. 내용과 방식을 바꿔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융합적 교양 코스를 만든다. 수업 방식도 지식 주입형이 아니라 소규모 토론, 기업·지역사회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한다.”
-내년에 ‘첨단융합학부’가 신설되는데.
“교육부가 첨단 과학 기술 분야와 관련한 서울대 정원을 늘려준 것이다. 내년 신입생 218명을 처음 뽑는다. 1학년 때 전공 없이 입학해 3학기(2학년 1학기) 후에 ‘디지털 헬스 케어’ ‘지속 가능 기술’ ‘융합 데이터 과학’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혁신 신약’등 융합 전공 5개 중 1개를 선택한다. 입학 후 3학기 동안교양과 학부 공통 교과목을 통해 핵심 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전공을 탐색한다. 소규모 토론 수업인 ‘베리타스 세미나’와 현실 세계 문제를 해결해보는 ‘베리타스 프로젝트’가 교양 과정의 핵심이다.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은 자기 적성에 맞게 기술창업, 창의연구, 정책리더십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학교 밖 현장과 연계된 경험을 한다. 공통 교양 교육은 2025학년도엔 전 신입생에게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 국립대들과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8월 중순 지역 국립대들과 학생 학점 교류와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수한 학생이라면 어느 대학에 있든 서울대를 활용해 우수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점 교류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확대하려 한다.”
“정부, 대학에 대한 투자액 더 늘려야”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많은데.
“서울대가 QS세계대학평가 등에서 20~30위권에 갇혀 있다. ‘톱 20위권’으로 진입하려면 질적 도약이 필요하고 이는 재정 규모와 직결된다. 서울대 예산은 1조6000억원 정도로 도쿄대의 약 2조원, 싱가포르 국립대의 2조3400억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국가 난제를 해결하는 데 대학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도 고등교육 투자를 늘려야 한다. 대학에 대한 정부 투자액의 경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이 GDP(국내총생산)의 1.1%인데 우리는 여전히 0.6%다. 매년 10조원 정도를 더 투입해야 OECD 평균이 된다.”
-정부 R&D(연구·개발) 예산이 30조원인데.
“작은 규모는 아니다. 실효성 있게 쓰느냐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자판기에 100원짜리 넣으면 100원짜리 물건이 나오는, 결과가 보장되는 연구만 지원한다는 것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 연구를 못 하는 거다.”
-투자가 늘어나면 서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지역 국립대들과 공동 연구와 교류를 확대하겠다. 최근 거점 국립대들과 ‘반도체 공동 연구소 협의체’를 꾸린 것처럼 앞으로 바이오·양자과학 기술 등에서도 다른 대학과 공동 연구를 확대하겠다. 학령인구가 줄어 이제 모든 대학이 서울대 같은 백화점식 종합대학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특성화해야 한다. 서울대가 여기에 기여하겠다.”
☞유홍림 총장은
서울대에서 정치 철학을 전공하고, 미국 럿거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28년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등 현대 정치 사상을 연구했다. 지난해엔 국가 미래 전략을 고민하는 싱크탱크 ‘국가미래전략원’ 창립을 주도했다. 올 2월 서울대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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