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AI 프로필 속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 무엇과도 대체되지 않는 나만의 고유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얼굴, 이름, 생년월일, 직위, 재산, 출생지, 가족관계 등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동일성을 찾아간다. 그러나 최근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상용화는 이러한 기존 관념을 흔들어 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용자의 프로필 사진을 생성해 주는 AI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AI 프로필 서비스는 이용자가 자신의 셀카를 몇 장만 데이터로 입력하면 마치 스튜디오에서 전문 사진사가 촬영한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 이미지가 정교하고 그럴듯해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등의 공적 증명 자료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는 AI가 데이터만 있으면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이미지를 무한 생성해 내는 시대가 됐다. 어쩌면 이 사소한 듯 사소해 보이지 않는 이 논쟁의 본질은 AI가 나라는 정체성 혹은 나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화해 가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성형 AI로 인한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배우와 작가들이 동맹 파업을 진행 중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주요 쟁점은 바로 AI 때문이라고 한다. 즉 생성형 AI 기술과 특정 배우의 이미지나 목소리를 활용해 촬영도 하지 않고 무단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거나 시나리오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잠식해 들어가는 분야는 비단 영화계만이 아니다. 이제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생성형 AI가 만들어 낸 가상의 이미지와 영상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갈수록 그 기술은 고도화되고 정교해지면서 오히려 원본을 능가하는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이미지를 통해 진위를 판단한다든가 자기 동일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뿐더러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다. 디지털 데이터 정보가 너무 많아져 탈이 난 세상이다.
선가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는 화두가 있다. 중국 선불교 경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춰 명성을 떨쳤던 향엄 지한 스님이 스승인 위산 영우 선사로부터 받은 화두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이전에 어떤 것이 너의 본래 모습인가?” 불교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가득했던 향엄 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 꽉 막힌 듯 한마디 대답도 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공부가 헛되다고 참회하고 고행하다가, 돌멩이가 대나무에 부딪혀 내는 소리에 홀연히 깨닫게 된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깨닫기 이전의 향엄 스님처럼 데이터 과잉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디지털 빅뱅’이라고 표현할 만큼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조난해 갈증을 느끼듯 끊임없이 맹목적으로 새로운 이미지와 영상을 갈구한다.
지난주 문중 어른 스님께서 입적(入寂)하셨다. 하안거 정진 중임에도 불구하고 대중 스님들 모두 정진을 멈추고 장례와 다비식에 동참해 스님 생전의 덕을 기렸다. 항상 하심(下心)하면서 자비로운 미소와 청빈함으로 일생을 사시다가 그렇게 떠나가셨다. 문상 중에 영정을 바라보니, 오래전에 찍어둔 사진인지 젊은 날의 스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뒤늦게나마 희미한 영정 속에서 내 기억 속 스님의 자취를 찾아내려 애쓰는 미련함이 또한 미망임을 알게 됐다. 이제 더 이상 가야산 그 어디에도 스님은 없다. 그나마 49재에 맞추어 법당 한편에 모셔놓은 영정만이 한때나마 스님께서 우리와 함께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금강경(金剛經)>에서는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설한다. 무릇 형상 있는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마치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온갖 이미지, 즉 상(相)이 넘쳐나는 시대, 인간이 만들어 냈든, AI가 만들어 냈든 간에, 하나하나의 상에 얽매이고 집착하며 시선을 분주히 돌려본들 그 어디에서도 나를 찾을 수는 없다. 다만 가만히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어 내 안으로 향하여, 그 상이 나오기 이전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참구해 볼 일이다.
가야산 여름밤에 듣는 폭우는 그칠 줄 모르고, 홍제암 계곡은 폭류가 돼 귓전을 때린다. 다시 화두를 붙들어 본다.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그대의 본래 얼굴은 어떠한가?”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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