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학교도 학부모도 괴물이 된 세상

오진영 작가·번역가 2023. 7.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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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민원 상담과
학생 징계 업무는
담임 말고 교장에게
이것만 바꿔도 훨씬 낫다

중학생일 때 무슨 일인가로 선생님 심기를 건드렸다가 따귀를 열 대쯤 맞은 적 있다. 같은 반 아이가 너무 크게 웃었다는 이유로 출석부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는 걸 보며 공포에 떤 적도 있다. 그나마 여학교라서, 그 시절 남학생들이 학교에서 줘 패맞은 사연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집에 가서 선생님이 때렸다고 일러바쳤다간 집에서 더 혼날 판이었다. 부모님이 학교로 와서 나를 위해 싸워준다는 건 꿈도 꿔본 적 없다. 우리가 어릴 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

97년생인 내 아들이 초중학교에 다니던 10여 년 전 까지도 학교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교사를 어려워했고 더러 학교에서 맞기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가 조금은 나아졌겠지, 우리 때처럼 무지막지하진 않겠지’, 라고 믿고 싶어하며 학부모 시절을 보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선생들이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을 깨울 수도 없고 수업 방해하는 아이를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어진 건 아마도 10년 안쪽으로 생긴 변화 같다.

교사들이 훈육할 수단은 제한되는 동안 학부모 민원은 고삐가 풀려 지금의 비정상적 교실이 되었다. 현재 젊은 학부모인 80년대생들은 나와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한편으론 소비자 권리가 급속도로 팽창할 때 성장한 세대다. 내 새끼는 나처럼 당하는 꼴 보지 않겠다는 각오와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서비스업 과잉 친절의 일상화가 섞인 결과, 수업 시간에 떠들지 말라는 교사에게 " 아이의 말할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동 학대”라고 항의하는 학부모가 된 듯하다.

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다. 과도한 업무량에 더해진 학부모의 극성스러운 괴롭힘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린 교사들의 자살 사건이 잇달아 발생, 사회 문제가 되었고 2007년 일본 10대어(語)로 ‘몬스터 페어런트’가 올랐다. 당시 일본 사회에 대한 위클리 조선 2007년 기사 <교사 잡는 학부모 ‘몬스터 페어런트’>를 보면 최근 발생한 서이초교 교사 자살 분석이라고 내놓아도 이상하지 않다.

“몬스터 페어런트가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학부모의 소비자 의식’을 꼽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버블 경제가 붕괴되고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뚜렷해지자 패배자들의 불만이나 분노는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공공기관 및 공무원을 향했다. 특히 직접 대면하기 쉬운 교사가 이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됐다.”

학교에 대한 불신과 한 치의 손해도 볼 수 없다는 왜곡된 권리 의식으로 무장한 학부모들의 불합리한 민원이 도를 넘었고 교사들의 비명은 학교 담장을 넘었다. 몸집이 큰 남학생이 휘두르는 폭력을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여교사들은 신체적 위협마저 받는 교실이 되었다. 학교가 더 이상 생지옥이 되기 전에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30년 경력 교사이며 <학교라는 괴물> <직업으로서의 교사> 등 대한민국 학교 현장에 대한 책 저자인 권재원 교사는 첫째, 학부모 민원 상담과 학생 징계 업무를 담임 교사가 아니라 교장이 맡는다. 둘째, 학교 폭력법과 아동학대법을 개정해서 무분별한 신고를 막는다. 셋째, 문제 학생에 대한 특별 교육을 강제할 수 있게 한다는 세 가지 대책을 제안한다. 권 교사는 “이 세가지 정도는 올해 안에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며 이 세 가지도 하기 전에 나오는 다른 이야기들은 정치적 저의가 있는 노이즈”라고 말한다. 학생인권조례를 정비, 개정하는 것도 좋고 진보 교육감들의 책임을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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