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은의 미술과 시선] 입자
연필로 그린 해변을 본다. 마른 흑연의 입자가 물이 되고, 파동이 되고, 빛과 그림자가 된 것을. 모래사장 앞 바다에 몸을 담가 더위를 식히는 몇 아이들도 본다. 표정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은 아마 즐거울 것이다. 이어 화면 밖, 오로지 응시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화가의 입장을 본다.
불안한 듯 비스듬히 기울어진 창틀 안쪽, 화가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깊은 사색에 공감하여 본다. 현실을 포착해 회색 음영의 길을 손수 지어 만들면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최근 들어 나는 일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휘두른 ‘묻지마 폭력’에 목숨을 위협받을 수 있고, 장마철 빗길 조심해야지 정도의 대비가 안일한 처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연이은 사이코패스 범죄로 사회가 흉흉하고, 곳곳에서 발생하는 참사의 비극이 황망하게 세상을 적신다. 비보의 당사자는 평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늘 가던 곳을 지나가며, 대단히 무모한 일을 감행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도 만에 하나의 불행을 맞았다.
임재형의 ‘세대’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가 다시 바다를 마주하며 드는 감정을, 얼마간 시차와 거리를 두고 기록한 그림이다. 아니, 여느 해안의 풍경을 본 자전적 기록일 수도 있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깥과 이곳의 처지가 다르듯, 나약하게 갈리는 존망의 운명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언어를 제한 화가의 심경은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추정어로 맴돈다.
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생사를 본다. 반복되는 악재에 익숙한 기시감을 느낀다. 아마 그럴 것이라는 추측으로 원인을 특정 짓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옅은 공감도 할 수 없는 일이 공공영역의 안일과 특정 개인주의로 일어남을 본다. 다음 사건의 단초가 되어 쓸쓸한 그늘이 될 것을.
오정은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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