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도 쉽게 탈 수 있게… 차 의자 90도 돌아갑니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고령자 특화 기술 총출동한
일본 ‘배리어 프리’ 박람회 현장
삶의 질의 핵심은 마음껏 움직이기
자동차-자전거 등 ‘작은 혁신’
차 밖으로 나오는 ‘90도 회전’ 좌석
허리받침-발판 갖춘 세발자전거
누워만 있지 않고 침대서 나오도록
노인들 옮겨주는 리프트 등 다양
초고령자 돌보는 고령자 위한 기술도
4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2023 베리어 프리’ 박람회장. 미야자키현에서 여동생을 태우고 10시간을 운전해 이곳까지 온 모리시타 야스나리 씨(65)가 자동차기업 토요타 부스 앞을 서성였다. 야스나리 씨는 차량 왼편에 있는 조수석이 ‘윙’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90도 회전해 차량 밖으로 나오는 광경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는 부스 직원에게 물었다.
“이 회전 좌석을 쓰면 동생을 차에 태우는 게 좀 수월해질까요?”
“고령자나 장애인이 허리나 다리에 힘을 덜 쓰고도 차에 탈 수 있게 한 거예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조수석에 타는 게 가능해질 겁니다.”(직원)
흰머리가 거뭇거뭇한 야스나리 씨는 “휠체어를 타는 여동생을 차에 태우는 게 늘 나의 몫이었는데 좌석이 회전하면 제가 몸을 조금만 굽혀도 돼 허리가 덜 아플 것 같다”고 했다.
삶의 질의 핵심은 ‘마음껏 움직이기’
토요타 부스의 또 다른 인기 제품은 휠체어 이동장치였다. 고령이 되면 노쇠나 질환 등의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휠체어가 무거워 차 트렁크에 싣는 게 큰 부담이다. 부인이 휠체어를 타는 60대 일본인 부부는 토요타 직원이 휠체어 이동장치를 시연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했다.
김영선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장(노인학과 교수)은 “국내에선 휠체어를 실을 수 있게 차를 개조하려면 약 1500만 원이 들 정도로 부담이 큰데 (토요타 제품은) 차량을 개조하지 않고 간단히 설치만 하면 되는 방식이어서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고 했다.
스쿠터에 타보니 1~6단계까지 속도 조절이 가능했다. 코너 구간을 통과하며 핸들을 살짝 돌리자 속도가 자동으로 느려졌다. 다른 관람객이 스쿠터를 탄 기자 앞으로 지나가려 할 땐 경보음이 울렸다. 외관은 상아색의 깔끔한 바탕에 검은색으로 약간의 포인트만 줬다. 토요타 관계자는 “고령자가 스쿠터를 타고 밖에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도록 세련되고 젊은 느낌을 주는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했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을 때
오사카에 사는 카와치 케이스케 씨(75)는 부스에 전시된 ‘고령 친화 자전거’를 타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인 리츠코(71)는 “남편이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집에 자전거를 두고도 타기를 주저하는 걸 보고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다르다”고 했다.
이 자전거는 일반 자전거와 다른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세발 자전거여서 안정감이 있다. 안장에는 허리 받침대가 있어 몸을 기댈 수 있다. 페달 쪽에는 잠시 다리를 올려놓고 쉴 수 있도록 발판도 부착돼있다. 고령자들이 근력 저하로 균형을 잡기 어렵고, 발목과 무릎 등 관절이 약해지며 체중 부하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었다.
케이스케 씨는 “몇 년 전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온 뒤부터는 집에 있는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이 자전거는 발판이 있어 발을 올리기가 쉽고, 허리 받침대가 몸을 고정해 주니 페달에 힘을 싣기도 쉬웠다”고 했다.
김 교수는 “노인들은 신체 기능이 저하되면서 밖으로 잘 안 나오게 되는데 이렇게 고령 친화형으로 디자인된 자전거가 보급되면 무엇보다 외부 활동을 지속하게 해주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초고령자 돌보는 고령자를 위한 기술
자동차 엔지니어 히로시 씨(59)는 차를 만드는 기술을 접목해 이 리프트를 개발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와상 노인들을 휠체어로 옮긴 뒤 화장실, 주방 등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쓰이는 기구다. 와상 노인들은 근력과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데 최소한의 움직임을 통해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신체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영국 호주 등에서는 ‘들지 않기 정책(no lift policy)’을 도입해 돌봄 인력이나 의료진이 환자를 직접 드는 대신 기기의 도움을 받게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 씨는 “10년간 이 제품을 제작해오면서 91세 남성이 88세 부인을 돌보려고 제품을 보러 왔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본인도 노쇠해 집안에서 부인을 옮기는 게 어려웠는데 이 리프트 덕에 수월해졌다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기자가 박람회장을 둘러보는 동안 혼자 구경 온 고령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은 ‘개인 자격’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여러 기술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고이즈미 유타카 씨(73)는 “인터넷에서 간병 용품을 찾다가 이 행사를 알게 됐다. 6, 7년 전부터 빼놓지 않고 매년 방문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휠체어를 처음 탄 8년 전만 해도 제가 60대라 괜찮았는데 저도 이젠 70대가 되니 어머니를 돌보기가 점점 버거워지네요. 저의 빈자리를 채워줄 기술을 잘 찾아보려 합니다.”
동아일보는 장애의 빈틈을 기술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직업인’ 5명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선수, 시력을 잃어가는 작곡가, 손을 못 쓰는 치과의사,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연구원과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 |
<특별취재팀> |
▽기획·취재: 오사카=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기자 ▽사진: 송은석 기자 ▽디자인: 김수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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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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