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경쟁력 앞세운 일본 반도체, 반등 가능성 충분”

2023. 7. 29.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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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세계 대전, 일본의 반격
박재근 한양대 석학교수는 “일본 반도체 산업의 반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약 18조원. 일본 정부가 최근 2년간 마련한 반도체 산업 지원 보조금 액수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격화를 틈타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으려는 일본의 각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1일 만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과감한 투자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 반도체 산업의 반등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한국이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교수는 1985~2001년 삼성전자에서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과 생산기술센터 기술고문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학계에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Q : 일본의 행보를 어떻게 보나.
A : “상당한 성공 가능성이 있다. 크게 세 갈래 행보로 보인다. 첫째,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서 실질적인 연산을 처리하는 차량용 로직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둘째, 차량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부문에서 첨단 미세 공정인 2㎚ 파운드리 기술 개발과 생산량 확보에 나선다는 것이다. 셋째, 3차원(3D)의 이종(異種) 결합 패키징 부문을 향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셋 다 미래지향적이며 정부 주도로 실현 가능하다. 반도체 산업은 초기 설비 투자가 중요한데, 일본 정부는 기업 투자액의 최대 40~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한다고 했다.”

Q : 이 같은 행보에 어떤 의미가 있나.
A : “자동차는 일본의 주력 산업 분야다.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에서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대만과 달리 강력한 내수 시장을 형성 중이다. 여기서 차량용 로직 반도체와 AP의 수요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기술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2030년 무렵이면 전 세계 신규 자동차의 25%는 전기차가 될 전망이다. 예컨대 전기차 하나엔 현재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와 동급의 AP가 3개 정도씩 들어가게 된다. 이 같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급성장에 발맞춰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도모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계산이다.”

Q : 3D 이종 결합 패키징은.
A : “지금은 주로 단일 단위의 반도체 칩이 스마트폰 등 제품의 보드 위에 장착된다. 그러면 칩 간에 거리가 멀어서 전력 손실이 크다. 이와 달리 3D로 여러 칩을 접합하면 전력 손실 최소화 등 성능 개선 효과가 크다. 이를 고대역메모리(HBM)라 하는데 HBM 시장이 요즘 굉장히 뜨겁다. 이 HBM 제조에 필요한 장비 분야 대부분에서 일본 기업들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Q :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경쟁력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가.
A :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점유율은 약 35%로 미국(50%) 다음이다. 다만 미국은 전(前)공정 장비에서만 강한 반면 일본은 전공정과 후(後)공정 양쪽에서 모두 강하다. 시장 규모로는 미국보다 뒤처졌어도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반도체 소재에선 일본이 가장 강하다. 글로벌 반도체 소재 매출의 50% 이상이 일본 차지다. 그 다음이 미국과 독일 등이다. 일본이 반도체 산업 부활을 꿈꾸는 배경도 이런 소부장 경쟁력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소부장의 뒷받침이 없을 경우 일본은 2㎚ 파운드리를 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텐데, 소부장에서 강점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보고 시도하는 거다.”

Q : 좀 더 설명해 달라.
A : “반도체 칩은 성능이 계속 좋아져야 한다. 이는 들어가는 제품의 전력 소비 감소, 속도 향상, 비용 절감과 직결된다. 그러려면 ‘스케일링다운’(더 작게 만드는 것)을 지속해야 하고, 그래야 반도체 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데, 지금은 물리적 한계에 다다랐다. 특히 실리콘 기술을 활용한 스케일링이 난관에 봉착했다.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게 반도체 소재와 장비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일본으로부터 더 좋은 소재·장비를 수입해서 써야 한다.”

Q :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이 한국엔 얼마나 위협적일까.
A : “일본이 잘 될수록 한국이 어려워진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미국의 ‘칩4 동맹’ 구상과 소부장 등을 고려하면 일본과는 상호보완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한국 반도체 산업 상황 자체만 보자면,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라고 하는 이유는 스케일링다운이 어려워지다 보니 경쟁국 기업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어서다. 더구나 파운드리에선 대만 TSMC를 추격해야 하는 입장이라 기술 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타격이 클 수 있는 상황이다.”

Q : 기회라고 하는 이유는.
A : “어찌됐든 전 세계가 첨단 디지털 시대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데이터 사용량이 계속 늘면서 반도체 소비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30년 1조650억 달러(약 1360조원)로 2021년 대비 1.8배 증가할 전망이다. 자율주행차와 메타버스 등 신(新)산업 분야에서 반도체 수요 폭증도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일본·유럽·대만까지 반도체 투자에 사활을 건 이유다.”

Q :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A : “정책 방향을 잘 잡았다. 결국 미국과 일본처럼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기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게 윤 정부 정책의 방향이다. 그래야 반도체 수출이 경기에 따라 좌우되더라도 국가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다. 정부는 20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지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특화단지를 경기 용인·평택과 경북 구미에, 차세대 전력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소부장 특화단지를 부산에 조성한다고 했다. 이로써 203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생산 클러스터를 형성하게 됐다. 기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생산 거점과 어우러져 세계에서 반도체 팹(공장)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된다. 2030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30% 이상을 한국이 가져가게 된다.”

Q : 과거 정부 정책과 많이 다른가.
A : “이제 대만처럼 정부가 먼저 단지를 조성하고 인센티브를 줘서 기업들이 들어오게 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은 기업이 먼저 투자해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의존했다. 그러다보면 반도체 공장 하나 짓는 데만 7~8년이 걸렸다. 대만은 3년이면 된다. 대만 정부가 먼저 단지를 개발해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그 다음에 기업이 들어오는 식이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그런 정책을 펼치기로 한 거다. 반도체 업계와 학계 모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Q : 남은 과제는.
A : “여야를 떠나 다음 정부에서도, 그 다음 정부에서도 끊임없이 인프라 확대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첨단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국의 추격으로 언젠가는 (반도체 산업이) 침몰할 거다. 디스플레이 산업도 중국의 추격에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반도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국격을 형성한다는 점을 정치권에서 분명하게 인지하고 합심해야 한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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