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한여름의 시린 풍경
아예 윗옷을 벗어버린 여인은 머리에 빗까지 꽂고 앞사람의 등을 밀어주며 멱감기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한편 그녀에게 등을 맡긴 여인은 그 시절 시골 아주머니들에게선 보기 힘든 브래지어까지 착용한 모양새와 언제든 옷을 내릴 요량으로 훌렁 벗지 않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보아 더위에 쫓겨 냇물에 뛰어들긴 했지만, 시골 아주머니의 수더분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가는 한 사람, 해어진 러닝셔츠를 벗지도 그렇다고 걷어 올리지도 않은 채 고개를 수그린 마른 체형의 여인은 당차 보이는 두 여인과 대조를 이룬다.
여인의 떨어진 러닝셔츠가 아프게 눈에 파고들었다. 낡을 대로 낡아서 눈만 흘겨도 구멍이 나게 생긴 저 속옷은 그 시절 시골 어머니들의 가난과 헌신을 상징한다. 항상 남편과 자녀가 먼저인 어머니가 자기의 입성까지 챙길 여유가 있었을 리 만무했다. 그때는 대개 어머니의 마지막 하루 일과가 식구들의 옷과 양말 등을 깁는 바느질이었는데 막상 자신의 러닝셔츠는 기울 수도 없는 구제불능이다. 그렇다면 물속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 속곳이라고 더 나을까. 새것처럼 보이는 번듯한 두 여인의 속곳과 비교되어 더 깊은 물 속에 몸을 담근 것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집안에서 반짇고리가 사라졌다. 요즘엔 바늘귀를 꿰어본 적도 바느질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당연하다. 옷이 닳아 떨어질 때까지 입지 않으니 바느질을 할 일도 없다. 이 사진을 보노라면 철없이 냇가에서 멱 감으며 놀던 어린 시절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남루함에 뒤늦게 가슴이 시리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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