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오염수는 과학인데, 국정은 관상?

이호 2023. 7. 2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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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왕이 될 상인가?” 2013년 9월 2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관상’ 언론 시사회에서 출연 배우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 ‘관상’에서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이 관상가한테 한 말이다. 사람의 얼굴을 통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관상. 영화는 천재 관상가가 수양대군의 얼굴이 역모를 꾀할 관상이라고 여겨 이를 막고자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타고난 운세 때문인지는 모르나, 실제로도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르게 된다. 2013년 개봉된 이 영화는 900만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우리가 심심풀이로 ‘오늘의 운세’를 보는 까닭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일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특히 관상(觀相)은 얼굴 생김새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파악함으로써 그 사람의 미래상까지 짐작한다. 역사적으로도 관상이 활용된 사례는 많다. 영화처럼 과거시험에 관상가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근래 들어서는 대기업 입사 면접시험장에 관상 전문가를 배석시킨다는 얘기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관상이 일정한 체계를 통해 풀이하기 때문에 관상학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관상은 학문이 아니다. 사람의 외향에 의해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식의 주장은 그저 통설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 모양새로 그 사람이 겪게 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은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물론 관상이 그동안 살았던 삶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는 있다. 실제로 그 사람의 의식과 환경이 얼굴에 나타날 개연성은 충분하다.
 

▲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특히 정치권에서 크다. 이를 뒷받침하는 공공연한 사실이 있다. 곳곳에 유명 정치인의 뒤를 봐주는 역술인 혹은 점쟁이가 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그래서 유명 정치인치고 그런 역술인을 곁에 두는 경우가 많다는 말까지 들린다.

정치인들은 늘 자신의 정치적 미래가 불안한 법이다. 특정 사건에 연류되어 순식간에 정치생명이 끊어질 수도 있고, 선거에서 낙선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자신의 미래를 짚어볼 수 있는 운세 등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정치인들은 이른바 “용하다”는 역술인이나 점쟁이를 찾아 조언을 구하곤 한다. 유명 정치인들 중에는 용한 역술인 한 명 정도는 알고 지낸다는 말까지 들린다. 유명 역술인 입장에서는 그 정치인이 주요 고객인 셈이다.

운세에 집착하고 또한 이를 믿으려는 심리 기제가 발동하는 것은 다분히 자신이 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성격이 어떠한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한다. 자신의 성격을 알아보는 성격유형검사(MBTI)가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심리학에는 바넘효과가 있다. 사전에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에게 보편적인 성격 특성을 말하면서 그것이 당신의 성격이라고 하면, 그 말에 동의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때때로 외향적이지만, 가끔은 내향적이다’와 같은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운세를 보는 것도 다를 것 같지만, 보편적인 부분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관상이나 운세를 보는 것에서 나아가 풍수지리 분야까지 이르게 되면 복잡해진다. 우리는 예로부터 조상을 ‘명당’에 모시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다. 집터 역시 명당에 자리 잡으면 대대로 영화를 누린다고 했다. 모두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이다. 대기업 총수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부모 묫자리가 대부분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고 알려진 것도 풍수지리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특히 풍수지리상 명당에 부모 묫자리를 써서 대통령이 됐다거나, 부모 묫자리가 그에 미치지 못해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통설도 있다.

물론 좋은 집터나 묫자리를 찾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풍수지리나 관상이 어떤 사람의 지위나, 정부의 국정운영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을 선택하는 권한은 국민에게 있지, 풍수지리나 역술인이 보는 관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운영도 마찬가지다. 정책을 결정할 때는 현실 진단과 발전 가능성 그리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개인이 그저 머무르는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호상 문제가 없는지, 대통령 동선은 어떠한지 등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풍수지리에 따른 명당자리 찾아 관저를 정한다면, 이는 정상이 아니다.
 

▲ 정부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과학적으로 안전한데, 괜한 괴담을 만들어 국민만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해 과학적 검증을 통해 안정성을 확인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염수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것을 두고는 근거 없이 불안감만 부추기는 것이라면서 광우병 괴담, 사드 괴담처럼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로 국민에게 먹거리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나아가 사회불안을 조장함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안전한데, 괜한 괴담을 만들어 국민만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불안해 할 것 없다면서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방사능 오염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면서도, 국정 운영에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관상이나 역술, 풍수지리가 언급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2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의 논평과 관련한 기사를 링크하면서 “풍수학 최고 권위자에게 무속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는 말이 정말 대한민국 집권여당에서 공식 논평으로 나온 것이 맞느냐?”고 지적하고 나섰다. 강 수석대변인은 지난해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서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 겸임교수에 대해 ‘풍수지리학계 최고의 권위자’라면서 이를 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억지 무속 프레임’이라고 반박하는 논평을 냈었다.

백재권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의 관상을 풀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역술인 천공이 다녀갔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백 교수였다는 것이다. 하여간 대통령 관저를 결정하는데 풍수학자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실제로 대통령 관저 이전에 풍수학자가 개입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21세기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그것도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정부에서 이런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는 일본 방사능 오염수에 대해서는 과학을 내세우면서, 만약 대통령 관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풍수지리설을 고려했다면, 이는 과학과 관상을 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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