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터질 것 같은 고통 있지만 태극마크 달고 질주 울컥”
람보르기니 레이스 첫 출전 한국팀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는 유럽·북미·아시아 3개 대륙에서 개최되는 원메이크 레이스다. 원메이크 레이스란, 동일 차종으로 진행되는 레이스로 차량 성능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여타 레이스와 달리 철저히 드라이버의 기량에 의해 성적이 좌우되는 게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레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원메이크 레이스로 꼽힌다. 레이스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를 이용하는데, 이 차는 5.2리터 V10 자연 흡기 엔진을 장착해 최대출력 620마력을 뿜어내며 뛰어난 공기역학과 함께 최고의 다운포스를 만들어 낸다.
내달 18~19일 강원도 인제서 4라운드
이번 인제스피디움 레이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아시아 시리즈에 한국이 포함된 데다 처음으로 한국 팀이 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레이스에 한국인 드라이버가 이벤트성으로 출전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 지역 전 라운드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0분간의 레이스 동안 드라이버 두 명이 번갈아 차를 모는 것이 대회 규정. 한국 팀은 권형진(48)·이창우(45) 선수로 구성됐다. 이창우 선수는 슈퍼레이스 GT클래스에 출전 중인 국내 프로 드라이버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람보르기니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및 행사에서 치프 인스트럭터(기술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대한통운 슈퍼레이스 M 레이스 디렉터인 권형진 선수 역시 CJ 슈퍼레이스 M 클래스 등 다수의 레이스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한국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람보르기니 서울이 레이스 카를 구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출전을 결심했죠. 오래 전부터 원메이크 레이스에 출전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바로 람보르기니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권형진 형에게 파트너를 제안했죠.”(이창우. 이하 이)
레이스에 참가할 차를 람보르기니 서울에서 구매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지역을 돌며 전 라운드를 치르는 데 필요한 제반 경비(약 5억~6억원)는 선수들이 감당해야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내하면서 두 사람이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는 이유는 해외 경기, 그중에서도 꿈이었던 원메이크 레이스에 참가해 국내 모터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보자는 바람 때문이다. 최근 들어 ‘모터테인먼트(모터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만큼 모터스포츠 매니아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모터스포츠는 비인기종목이다.
“F1이다, 카레라다, 보고 듣는 것은 많아도 해외 레이스에 참가한 선수는 아직 열손가락 안에 들 만큼 적어요. 그래서 국제기준으로 보면 한국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등급이에요. 아는 만큼 달라진다고,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자 생각했어요.”(권형진, 이하 권)
‘트랙서 손목까지’ 모토, 로저 드뷔와 협업
현재 두 선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40대의 나이로 견뎌야 하는 ‘체력’과 ‘컨디션’이다. “후지 스피드웨이의 경우, 서킷 길이가 4.547㎞인데 한 바퀴 도는 데 약 1분 41~42초 정도 걸리죠. 50분간 둘이서 번갈아 가며 이 속도를 꾸준히 유지해야 해요. 남들 보기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신체 강도는 100m 전력 질주를 50분간 계속 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이) “그나마 직선으로 달릴 때는 숨 쉴 시간이라도 있지만, 15~18개의 회전구간을 돌 때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서 엄청난 힘이 들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과 목의 긴장감을 견뎌야 해요.”(권)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전부인 실내는 섭씨 70도까지 달궈지는데, 그 안에서 두꺼운 방염 소재의 유니폼을 입고 2㎏ 무게의 헬멧까지 써야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모터스포츠에는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의 뇌구조를 알고 싶다’고.(웃음) 모터스포츠를 즐긴다고 하면 다들 속도의 즐거움을 최고로 여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느 정도 속도를 즐기고 나면 시속 300㎞나 400㎞나 똑같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빠른 차를 타면 탈수록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바로 드라이버의 기술이죠. 그걸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이 좋은 거죠.”(권) “드라이버에게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차죠. 일단 눈으로 봤을 때 너무 아름답고, 핸들링 느낌 자체도 좋아요. 페달 느낌도 좋고. 자연 흡기 엔진에서 울리는 굉음도 드라이버들에겐 엄청난 매력이죠. 그걸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쾌감이죠.”(이) “트랙에서 여러 대의 경주차가 엄청난 굉음을 울리면서 나란히 달리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요.”(권) “연애 시절 아내에게 레이스를 구경시켰다가 헤어질 뻔 했어요.(웃음) 너무 시끄럽고 재미없다고. 그랬던 아내도 이젠 달라졌어요.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팀이 생기면 정말 재밌어지거든요.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도 모터스포츠의 이런 재미를 알리기 위해서죠. 일단 경기장에 한 번 와 보면 마성의 매력에 끌리게 돼 있거든요.”(이)
생각해 보면 시계와 자동차는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 케이스가 있고, 자동차에는 엔진이, 시계에는 무브먼트가 있다. 흔히 슈퍼카와 명품 시계를 남자들의 로망으로 꼽는다. 람보르기니와 로저 드뷔의 협업은 트랙에서 손목까지, 그 로망을 잇고 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