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터질 것 같은 고통 있지만 태극마크 달고 질주 울컥”

서정민 2023. 7. 29. 00: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레이스 첫 출전 한국팀
‘2023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레이스’에 출전한 한국 팀 이창우(왼쪽), 권형진 선수. 최기웅 기자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줄 아름다운 스포츠카들의 질주가 시작된다. 8월 18~19일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에서 열리는 ‘2023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레이스’가 그 무대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는 유럽·북미·아시아 3개 대륙에서 개최되는 원메이크 레이스다. 원메이크 레이스란, 동일 차종으로 진행되는 레이스로 차량 성능에 따라 성적이 좌우되는 여타 레이스와 달리 철저히 드라이버의 기량에 의해 성적이 좌우되는 게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레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원메이크 레이스로 꼽힌다. 레이스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를 이용하는데, 이 차는 5.2리터 V10 자연 흡기 엔진을 장착해 최대출력 620마력을 뿜어내며 뛰어난 공기역학과 함께 최고의 다운포스를 만들어 낸다.

내달 18~19일 강원도 인제서 4라운드

일본에서 열린 3라운드 경기. 이번 레이스는 동일한 차종을 이용하는 ‘원메이크 레이스’로 모든 선수가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를 탄다. [사진 람보르기니 서울]
레이스는 3개 대륙에서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여러 나라의 도시를 돌며 5개 라운드를 치르고 각 대륙의 챔피언이 확정되면 오는 11월 18~19일 이탈리아 벨라룽가 서킷에서 그랜드 파이널을 벌인다. 아시아 시리즈는 지난 5월 초 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1라운드를 개최하며 화려한 막을 올렸다. 호주 애들레이드의 벤드 모터스포츠 파크에서 2라운드를, 일본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3라운드를 끝냈다. 한국의 인제스피디움은 4라운드가 펼쳐질 무대다. 아시아 지역 마지막 라운드는 9월 8~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다.

이번 인제스피디움 레이스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2019년 이후 3년 만에 아시아 시리즈에 한국이 포함된 데다 처음으로 한국 팀이 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 슈퍼 트로페오 레이스에 한국인 드라이버가 이벤트성으로 출전한 적은 있지만, 정식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아 지역 전 라운드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0분간의 레이스 동안 드라이버 두 명이 번갈아 차를 모는 것이 대회 규정. 한국 팀은 권형진(48)·이창우(45) 선수로 구성됐다. 이창우 선수는 슈퍼레이스 GT클래스에 출전 중인 국내 프로 드라이버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람보르기니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및 행사에서 치프 인스트럭터(기술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대한통운 슈퍼레이스 M 레이스 디렉터인 권형진 선수 역시 CJ 슈퍼레이스 M 클래스 등 다수의 레이스를 경험한 베테랑이다.

“한국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과 함께 람보르기니 서울이 레이스 카를 구매한다는 얘기를 듣고 출전을 결심했죠. 오래 전부터 원메이크 레이스에 출전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바로 람보르기니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권형진 형에게 파트너를 제안했죠.”(이창우. 이하 이)

레이스에 참가할 차를 람보르기니 서울에서 구매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지역을 돌며 전 라운드를 치르는 데 필요한 제반 경비(약 5억~6억원)는 선수들이 감당해야 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내하면서 두 사람이 이번 레이스에 참가하는 이유는 해외 경기, 그중에서도 꿈이었던 원메이크 레이스에 참가해 국내 모터스포츠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보자는 바람 때문이다. 최근 들어 ‘모터테인먼트(모터스포츠+엔터테인먼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만큼 모터스포츠 매니아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모터스포츠는 비인기종목이다.

“F1이다, 카레라다, 보고 듣는 것은 많아도 해외 레이스에 참가한 선수는 아직 열손가락 안에 들 만큼 적어요. 그래서 국제기준으로 보면 한국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등급이에요. 아는 만큼 달라진다고,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자 생각했어요.”(권형진, 이하 권)

‘트랙서 손목까지’ 모토, 로저 드뷔와 협업

일본에서 열린 3라운드 경기. 이번 레이스는 동일한 차종을 이용하는 ‘원메이크 레이스’로 모든 선수가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를 탄다. [사진 람보르기니 서울]
두 선수 모두 처음 참가하는 해외 레이스인 데도 현재 성적은 매우 고무적이다. 1라운드 종합 2위, AM(아마추어 클래스) 1위. 2라운드 종합 2위, AM 클래스 1위. 3라운드 종합 5위, AM 클래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두 선수 모두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 하지만 이는 결코 운만으로 얻을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국제기준의 차량도, 서킷도 이들에게는 모두 처음이다. 대회 규정상 미리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도 각 서킷 당 딱 두 번 뿐. 직업으로 매일 레이스에만 집중하는 외국 선수들과는 처지도 다르다. 심지어 이번 아시아 레이스에 참가하는 36명의 선수 중 14명이 국제기준의 프로 드라이버인 ‘실버’ 등급 선수들이다. 이창우· 권형진 선수는 아마추어 등급인 ‘브론즈’. 그럼에도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두 선수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40대의 나이로 견뎌야 하는 ‘체력’과 ‘컨디션’이다. “후지 스피드웨이의 경우, 서킷 길이가 4.547㎞인데 한 바퀴 도는 데 약 1분 41~42초 정도 걸리죠. 50분간 둘이서 번갈아 가며 이 속도를 꾸준히 유지해야 해요. 남들 보기엔 차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신체 강도는 100m 전력 질주를 50분간 계속 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이) “그나마 직선으로 달릴 때는 숨 쉴 시간이라도 있지만, 15~18개의 회전구간을 돌 때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서 엄청난 힘이 들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과 목의 긴장감을 견뎌야 해요.”(권)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전부인 실내는 섭씨 70도까지 달궈지는데, 그 안에서 두꺼운 방염 소재의 유니폼을 입고 2㎏ 무게의 헬멧까지 써야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모터스포츠에는 계속 달리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내가 그러더군요. ‘당신의 뇌구조를 알고 싶다’고.(웃음) 모터스포츠를 즐긴다고 하면 다들 속도의 즐거움을 최고로 여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어느 정도 속도를 즐기고 나면 시속 300㎞나 400㎞나 똑같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빠른 차를 타면 탈수록 전문성과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바로 드라이버의 기술이죠. 그걸 알아가고 배워가는 과정이 좋은 거죠.”(권) “드라이버에게 ‘람보르기니 우라칸 슈퍼 트로페오 에보 2’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차죠. 일단 눈으로 봤을 때 너무 아름답고, 핸들링 느낌 자체도 좋아요. 페달 느낌도 좋고. 자연 흡기 엔진에서 울리는 굉음도 드라이버들에겐 엄청난 매력이죠. 그걸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쾌감이죠.”(이) “트랙에서 여러 대의 경주차가 엄청난 굉음을 울리면서 나란히 달리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요.”(권) “연애 시절 아내에게 레이스를 구경시켰다가 헤어질 뻔 했어요.(웃음) 너무 시끄럽고 재미없다고. 그랬던 아내도 이젠 달라졌어요. 관심을 갖고 응원하는 팀이 생기면 정말 재밌어지거든요.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도 모터스포츠의 이런 재미를 알리기 위해서죠. 일단 경기장에 한 번 와 보면 마성의 매력에 끌리게 돼 있거든요.”(이)

람보르기니와 명품 시계 브랜드 로저 드뷔의 협업 제품. 슈퍼카 우라칸 EVO 2를 손목에 옮긴 듯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사진 로저 드뷔]
한편, 이번 대회는 한국타이어와 스위스 명품 시계 로저 드뷔가 후원사로 참가했다. 2017년부터 람보르기니와 로저 드뷔는 ‘트랙에서 손목까지’라는 모토로 협업해 왔다. 모터스포츠 레이싱의 흥분을 트랙에서 손목으로 잇는다는 의미다. ‘엑스칼리버 스파이더 모노밸런시어 우라칸 ST EVO2’ 시계 이름 역시 동명의 자동차 이름에서 따온 건데, 모양도 비슷하다. 람보르기니의 유명한 벌집 모양과 육각 대시보드를 시계 디자인에 반영하는 한편, 케이스 역시 우라칸 차체 패널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SMC 카본으로 제작했다. 람보르기니와 로저 드뷔의 협업은 장르도, 사이즈도, 구조도, 용도도 전혀 다른 브랜드끼리의 가장 성공적인 협업으로 꼽힌다.

생각해 보면 시계와 자동차는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각각 케이스가 있고, 자동차에는 엔진이, 시계에는 무브먼트가 있다. 흔히 슈퍼카와 명품 시계를 남자들의 로망으로 꼽는다. 람보르기니와 로저 드뷔의 협업은 트랙에서 손목까지, 그 로망을 잇고 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