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민주화 이후 지금 한국의 문제는
조귀동 지음
생각의힘
이 책이 언급하는 이탈리아는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한국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모델이되, 여러모로 비슷한 나라다. 예컨대 OECD 국가 중에 한국 다음으로 출생률이 낮다.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복지제도의 문제, 여전히 강한 가부장제와 남성의 낮은 가사 참여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것도 남의 얘기 같지 않다.
한데 개혁을 추진할 동력은 안 보인다. 책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 기존 정당 구도가 붕괴된 이후 좌우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이 득세해왔다. 저자는 “경제 구조의 변화가 정치 구조의 취약성을 키우고 이 정치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지적한다. 영국·독일·프랑스를 앞섰던 1인당 GDP나 제조업 생산성은 2000년대 초부터 추월당했다.
물론 한국이 이렇게 되리라는 논증이 핵심은 아니다. 저자는 『세습 중산층 사회』 『전라디언의 굴레』 등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적 비평서로 주목을 받아온 터. 이번 책은 첫머리부터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정치가 헛돌기 때문”이라고 문제의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이런 개혁 정체는 역설적이게도 민주화·산업화에 모두 성공한 결과다. 저자는 대기업의 질적 고도화 등으로 수혜를 누린 ‘상위 중산층’의 부상과 ‘뒤처진 사람들’의 불평등 같은 경제적 분석을 토대로 이른바 ‘정치 질서’의 변화를 짚는다. 2000년대 이후 정치 질서의 특징 중 하나로 꼽는 것은 노사모 이래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정치”의 본격화. 이는 일부 유권자·지지층이 과잉대표되는 문제와도 통한다.
이 책은 노인·지방·외국인, 공동구매 성격의 공공재 공급 방식의 변화 등까지 다루며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여러 유용한 시각과 틀을 제공한다. 저자의 주장은 결국 “정치의 복원”. 그 구체적 내용 중에 “중도적인 성향의 유권자가 존중받는 정치”가 있다. 어쩌면 이 책을 가장 반갑게 읽을 독자도 이들이 아닐까 싶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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