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자금 유출·빚 폭탄 우려 커져 ‘9월 위기설’ 솔솔

배현정 2023. 7.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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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차 2%P 역대 최대
파월 연준 의장(左), 이창용 한은 총재(右)
한·미 금리차가 사상 첫 2%포인트로 확대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6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단행함에 따라 한·미 금리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포인트로 벌어졌다. 한·미 금리 역전이 바로 외환·금융 위기를 촉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선 ‘9월 위기설’이 재점화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기준금리를 기존 5.00~5.25%에서 5.25~5.50%로 조정했다. 이는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FOMC 직후 파월 의장은 “향후 금리 결정은 데이터에 따라 회의마다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월은 사실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 연준은 지난해 3월부터 10회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물가 상승에 대응해왔다.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듯했지만, 이날 다시 인상을 재개했다. 반면 한국은 올 들어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올해 1월 3.5%로 인상한 이후 7월까지 4차례, 6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했다. 미 금리의 추가 인상이 이어지면, 그동안 “한·미 간 금리차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겠다”던 한은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한·미 간) 금리 차가 커졌음에도 환율은 방향을 바꾸고 있다”며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태를 강조했다.

한은은 13일 금리를 동결하면서 미국과는 1.75%포인트까지 벌어졌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던 발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벌어진다면 외환시장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다음날인 14일 제주포럼 강연에서 “미국이 금리를 9월에도 올릴 수 있어, 우리가 금리를 내리면 사실상 격차가 훨씬 커져 외환 시장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행히 현재까지는 금리 역전이 심각한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5월 1340원대까지 떨어졌던 원화 가치는 현재 1270원~1280원대까지 상승했다. 자본 흐름도 안정적이다. 5월(114억3000만 달러)과 6월(29억2000만 달러) 모두 자금 유입이 더 많았다.

하지만 한·미 금리 격차 2%포인트는 과거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단계다. 특히 한은이 반년 가까이 기준금리를 3.50%로 묶어 둔 사이 대출 규모와 연체율이 빠르게 늘면서 빚 폭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부채 폭탄으로 인해 한은이 금리 인상을 쉽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만, 한편으론 금리가 묶여있는 사이에 부채가 더 늘어나 건전성이 악화되는 ‘금리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 ‘9월 위기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9월 위기설의 뇌관으로는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대출이 첫 손에 꼽힌다. 9월 영세상인 대상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가 종료되면 부실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이미 자영업자 대출잔액의 92%에 대해 2025년 9월까지 만기 연장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만기 유예 조치로, 연내 빚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장에선 숨겨진 빚에 대한 위기감이 상당하다. 한 30대 자영업자는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았고, 그로 인해 지금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사업자도 “사업장을 정리한지는 좀 됐는데 코로나19 때 대출 받은 게 있어 폐업 신고는 못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9월 역전세 대란도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 보증금이 6억2689만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때가 2021년 9월로, 2년 만기가 돌아와서다. 이에 정부는 27일부터 역전세 집주인을 위해 한시적 규제 완화를 단행키로 했다. 내년 7월까지 총부채원리금상한비율(DSR) 40% 대신 총부채상환비율(DTI) 60%를 적용한다. 전문가들은 경기 부진이 서민들의 삶을 더 짓누르지 않도록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5조9000억원 증가하면서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증가폭은 2021년 9월(6조4000억원) 이후 1년 9개월 만에 최대치다.

연체율 상승세도 심상찮다. 6월 말 새마을금고 평균 연체율은 6%대로, 이미 위기 수준의 경고음이 울린다. 저축은행의 연체율도 2021년 2.5% 수준에서 올해 1분기 5.1%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와 금융위기의 전조 현상으로 ‘연체율 증가’를 주목한다. 금융위기 직전 미국 상업은행의 연체율이 7%에 이를 정도로 치솟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새마을금고 등의 연체율 상승세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부실이 늘어나면 환율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성 교수는 “지금도 환율이 여전히 높은 상태여서 국민들의 실질적인 대외 구매력과 삶의 소득 수준 등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원화 가치는 1000~1100원 선이었다. 올 들어 원화 가치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200원 후반대에서 1300원 초반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은은 현재 ‘물가’보다 ‘경기’에 통화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 올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6%이지만, 수출(-1.8%)보다 수입(-4.2%) 감소 폭이 더 큰 ‘불황형 성장’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비와 투자가 모두 부진한 국면이어서 한은이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통화정책에 제약이 있다면 재정정책으로 경기 부진이 심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수출·내수 진작 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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