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읽으면 미소가”…800명 인생 그려보니 성공할수록 낙관적 [Books]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7. 2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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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 제임스 R 해거티 지음 / 정유선 옮김 / 인플루엔셜 펴냄
장례식 [사진 = 픽사베이]
제임스 R 해거티는 월스트리트저널 유일의 부고 전문기자다. 40년 넘게 기자, 편집자로 일하면서 아시안 월저널 편집국장까지 지내며 관리직에 올랐으나, 기자 생활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해 글 쓰는 자리로 돌아갔다. 풀타임 부고 기자로 매일 2~3시간씩 전 세계의 사망 기사를 찾아 읽는 것이 그의 주요 업무. 누군가의 인생을 한 편의 이야기로 탄생시키는 일을 하며 그는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부고는 저자에 따르면 ‘내 인생의 이야기’다. 이 글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거물 정치인, 기업 최고 경영자 등 1% 유명인의 경우다. 전문 기자들이 그 삶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 부고를 쓰게 된다. 자신의 삶을 육성으로 기자들과 나눈 적이 있다면 사실에 한결 가까운 글이 된다. 두 번째는 나머지 99%의 경우다.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없는 가족이나 친구의 손에 급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부고는 그의 삶을 온전히 알려주지 못한다.

부고 기자가 되서 배운 게 있다. 신문만 보고 세상을 읽는다면, 이 세상은 비관론자로만 가득해질 것이다. 불의의 사고와 나쁜 소식으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신문 1면의 끔찍한 사건을 읽은 뒤, 부고란을 펴보라고 권한다. 그 기사에는 가장 암울한 시기에도 인간의 본성과 능력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서 더욱 견고해진 낙관주의를 품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성공하는 법, 사랑에 빠지는 법,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법이 그 안에 있다. 저자는 “부고를 쓰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대체로 낙관적이라는 믿음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잘못된 부고가 남는 걸 막기 위해 이 책은 스스로 부고를 쓰는 법과 그 이야기로부터 배울 것을 알려준다. 저자는 부고를 쓰기 전 세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목표를 이루었는가? 이 질문은 임종을 앞두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종종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들”이라고 조언한다.

[사진 = 픽사베이]
저자가 쓴 800여명의 부고에는 흥미로운 삶을 살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많다. 의사 다비다 코디는 인류의 재앙을 마주하며 20년 넘게 아프리카 등에서 교육과 치료를 했다. 회고록을 남겼기에 그가 알코올중독이 있었고, 헨리 키신저는 진토닉을 만들어줬으며, 테레사 수녀는 그와 이야기하며 손을 잡아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윌리엄 S 앤더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 포로수용소에서 시금치처럼 생긴 채소는 물론, 면도 크림까지 먹으며 간신히 살아남았다. 일본과의 전쟁으로 죽을뻔 했음에도 그는 일본인과 함께 일하며 현금입출금기를 파는 내셔널캐시레지스터의 아시아 책임자 자리를 거쳐 회장 자리에 올랐다.

첫 장부터 저자는 “쓸 수 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쓰자. 보나마나 망칠 것이 뻔한 가족들에게 내 부고를 맡기지 말자”고 당장 노트를 펼칠 것을 권한다. 부고는 ‘거의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닌 글’이다. 인생은 늘 그렇듯이 한 가지 일이 또 다른 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저자가 쓴 가장 특별한 기사는 월저널 1면을 장식한 ‘우리 엄마가 바이럴을 탈 때’다. 2012년 85세에도 그랜드포크스 헤럴드 기자로 일하던 그의 모친은 소박한 식당 올리브가든에 관한 글을 썼다. ‘추운 날이라 따뜻한 치킨 알프레도(10.95달러)가 위로가 됐다’고 말이다.

평론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체인 레스토랑에 대해 진지하게 쓴 리뷰를 발견한 네티즌들이 기사에 조롱을 보내고 공유하며 큰 화제가 됐다. 기자들이 전화로 조롱에 관해 묻자 ‘그런 쓰레기’에 반응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한 노스다코다 할머니의 쿨한 반응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앤더슨 쿠퍼의 토크쇼 ‘투데이’, 파드마 락슈미의 ‘톱 셰프’ 등 전국 방송에서 인터뷰를 요청하고 전국 모든 신문이 그 기사를 썼다. 유명 인사가 된 모친 기사를 쓰라는 요구가 떨어진 건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레스토랑 리뷰는 부업일 뿐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에 대해 쓰는 일을 더 좋아한다”라고 쓴 이 기사의 마지막에서 그는 바빠서 전화조차 할 수 없어진 모친에게 요청한다. “어머니, 혹시 이 기사를 보면 연락하세요. 어머니 차례예요.”

권유에 그치지 않고 저자 또한 자신의 부고를 쓰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삶을 미사여구로 꾸미지 말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중요한 원칙. 어머니의 말씀이라도 사실 확인은 필수다. 부고를 쓰다 보니 타인의 첫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10대 시절 K마트에서 짧게 일하며 자전거 조립을 했다. 언론인으로는 불도저를 운전해봤고, 트라피스트 수도사들과 맥주를 마셨으며, 아이를 69명이나 키운 여성을 인터뷰했다. 몇 안 되는 성공의 경험만큼이나 교훈적인 이야기는 실패의 경험이다.

평범한 삶도 부고를 쓸 자격이 있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답한다. “문제는 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가 아니다.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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