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부실 공사, 겉만 중시하고 속은 도외시한 탓이다[동아시론/조원철]
30년 지나면 재건축… 유지 관리도 중시해야
개발 심의 강화하고 관리자 책임 높여야 한다
최근 빗물 때문에 세상이 난리다. 많아서도 문제고 너무 적어서도 문제다. 물은 아래로 고향을 찾아서, 때로는 비켜 가는 지혜를 가져 옆으로도 흘러간다. 넘치고, 무너지고, 잠기고…. 이런 사고는 물을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 때문이다.
널찍하고 큰, 아름답게 보이는 정원을 갖춘 아파트 단지가 왜 물에 잠기고 집 안으로, 도로로, 주차장으로 물이 들어올까. 원인은 물의 흐름을 모르고 무시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단지를 찾아보았다. 훤히 눈에 보인다. 물이 모여 흐르는 곳에 물받이(유입구 또는 배출구)를 설치하고 배수관로로 물을 유도해야 함에도 정작 물이 모이는 쪽에는 물받이가 띄엄띄엄 설치돼 있다. 반대편 물이 적게 모이는 곳은 촘촘하다. 도로 경사나 정원의 경사를 보면 당장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획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시설 주인의 요구에 원칙 없이 너무 충실하다 보니 생긴 일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물받이의 위치와 규격, 그리고 땅속에 숨겨진 배수관로의 규격과 경사가 엉망이다. 그러니 물은 넘치고 정원과 걷는 길, 땅속의 주차장에는 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차장 천장과 바깥의 정원 밑에는 콘크리트 벽이 굳게 가로막고 있다. 땅속으로도 물이 흐를 수 없게 막았다. 땅속에는 주차장과 커뮤니티 센터, 매점도 있다. 침수 원인을 “저지대라서”라고 한다. 거짓이다. 설령 저지대라고 하더라도 효율적인 배수망은 얼마든지 시설할 수 있다. 그저 겉보기를 중시하고, 돈을 적게 들이는 잘못된 경제성이 문제다. 이것이 이름이 잘 알려진 회사들이 짓고 있는 유명 단지의 실상이다. 흙은 실어다 버리고 자꾸만 낮게 시설한다. 이익을 더 많이 내기 위해서다. 거기다가 최근에 잘 알려진 대로 건물의 뼈대마저도 부실하게 계획하고 설계하고 시공하여 무너지는 사태에 이른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우리는 아파트를 30년 정도 사용하면 갈아엎어 치우는 나라다. 남들은 100년 이상도 주택으로 문제없이 사용한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모든 시설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화된다. 여기에 나쁜 조건들이 더해지면 더 노후화된다. 그래서 유지 관리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매우 부족한 상태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뭘 먹고, 뭘 바르고, 뭘 입고 열심히 다 하면서도 정작 삶의 기본 중의 하나인 주택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다. 그저 이름값으로 가격만 올라서 돈만 챙기면 되는 우리 사회가 한탄스럽다. 왜 30년짜리 수명의 아파트만 짓는가. 정부의 정책에 많은 문제가 있다. 유학 시절에 본 104년 된 4층 높이의 목조건물은 지금도 멀쩡하다. 지금은 150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유지 관리 덕분이다. 때려 부수고 새것만 찾는 사회는 전통을 세울 수 없다.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뒤도 든든하게 다지며 가꾸어야 한다.
도시공간의 개발을 계획, 심의하고 건축물을 심의하는 무슨 무슨 위원회에 물 흐름을 이해하는 진정한 3차원 공간개념을 가진 전문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그런 전문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결에는 합리성보다는 다수의 의견 모음이 결정적이다. 그저 평면적으로 평수만 따지는 전문가(?) 그룹만으로는 안 된다. 재구성이 꼭 필요한 위원회다.
물이 가는 길을 잘못 관리하면 산사태도 난다. 이것이 경북 예천군의 산사태 참사다. 하천의 물길을 막은 교량도(공사용 임시 시설이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곁에 있는 제방을 무너뜨린다. 이것이 청주시 궁평제2지하차도 참사의 원인이다. 아파트 단지도 그러하고, 하천 관리도 그러하고, 도시 배수 구역의 침수도 그러하다. 도시 침수의 시작은 표면수의 배수관로 시스템으로의 유입 불량에서 시작된다. 모든 재난관리에서 ‘인재(人災)’, 더 정확히는 ‘관재(官災)’가 너무 흔하다. 관리상의 문제인 것이다. 기술적 기준 적용을 모르면 전문가들에게 충분히 묻고, 세심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재난이 생기면 책임을 지는 관리자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재난에 있어 관리상의 문제, 특히 의사결정권자들의 직책에 대한 책임의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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