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더 데이스'·'체르노빌', 재난 속 인간의 양면성 [TEN초점]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
1986년 원전사고 '체르노빌'
[텐아시아=이하늘 기자]과학 기술이 발전했다지만, 자연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땅을 뒤흔드는 지진이나 집채만 한 파도가 몰려오는 쓰나미를 온전히 막을 방공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災難)이라는 이름은 무력감과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자연 현상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가 재난이라면, 사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은 인재라고 명명 짓는다. 하지만 명확하게 구분 짓기 어려우며 경우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더 데이스'(2023)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지난 7월 20일 넷플릭스 통해 국내에 공개된 8부작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2023)는 후쿠시마 현(福島県)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된 사고를 다룬다. 사고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구 지방을 관통한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발생한 것. 아직도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풍경으로 남아있다. 해외에서는 6월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지만, 영상물등급위원에 새로운 영상물 등급 심의를 신청하지 않아 뒤늦게 공개됐다.
'더 데이스'는 1화의 첫 장면부터 어떠한 전조 증상도 없이 들이닥친 대지진을 묘사하는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발생한 지진은 마치 당시의 혼란함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태도로 보인다. 그 당시에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처럼 드라마를 보며 방심하던 관객도 이내 혼돈 속에 뒤섞이고 만다.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총 6기의 원자로 가운데 1·2·3호기는 가동 중이었고 4·5·6호는 점검 중이었다. 대지진의 후속 피해로 쓰나미가 들이닥쳤고, 전원이 중단되면서 원자로를 식혀 주는 긴급 노심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다. 이에 따라 3월 12일 1호기 수소 폭발을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2, 3, 4호기가 폭발 및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외부로 대량 누출됐다. 원전 사고를 봉합하기 위해 단편적인 해결책으로 고장 난 냉각장치를 대신해 뿌렸던 바닷물로 인해 오염수가 누출되며 요오드, 세슘, 텔루늄, 루테늄 등의 방사성물질이 대량 검출됐다.
사실 도쿄전력이 해당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하던 당시에 쓰나미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부터 위험성을 공지했으나 어떤 조처를 하지 않았고, 정부 역시 대처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경고를 무시하고 세워진 원자력 발전소라는 의미다. 그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시야가 차단된 암흑 속에서 어떠한 판단도 쉽게 내릴 수 없는 주저함과 사전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인재로 분류된다.
'더 데이스'는 사고의 경위를 낱낱이 해부하듯이 느리지만 침착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원자력에 대해 무지한 총리와 경제학을 전공한 담당자, 현장에 있지만 교신이 어려운 제1 원전 요시다 마사오 소장까지. 어둠 속에서 손을 짚어가며 더듬더듬 내부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더 데이스'도 그날의 기억을 차분하게 재연한다. 한편으로는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반복되는 판단과 결정의 지연, 신속하지 않게 대처했던 당시 상황을 비슷하게 연출하려 했다는 고민이 엿보이기도 한다.
요시다 마사오 소장을 연기한 배우 야쿠쇼 코지는 피폭 위험이 있는 원자로가 있는 공간에 팀원을 가라고 지시해야 하거나 정부의 지시로 책임자로서 보고해야 함에도 "저도 아직 잘 모릅니다"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무력감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아나토미 오브 어 폴'(감독 쥐스틴 트리에)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실력파 배우인 야쿠쇼 코지는 실존 인물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더 데이스'는 2013년 숨진 요시다 마사오 소장이 정리한 '요시다 조서'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보고서', 저널리스트 카도타 류조의 저서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원전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는 입장에, 지난 27일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는 반대 입장을 전하며 대치 중인 상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해양 생태계의 죽음과 주민들의 거주지, 방류 등의 문제로 인해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재난 3부작 '너의 이름은.','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
일본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더 데이스'가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를 다룬다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영화 '너의 이름은.'(2017), '날씨의 아이'(2019), '스즈메의 문단속'(2023) 일명 재난 3부작을 통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묘사한다. 2011년 3월 11일은 일본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날이자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켰기에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대지진을 변주한 형태의 재난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너의 이름은.'에서 천년 만에 다가오던 혜성이 떨어지면서 마을을 앗아가거나, '날씨의 아이'에서는 그치지 않는 폭우로,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고 그 재난이 비집고 나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23년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용기를 내서 동일본 대지진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첫 번째 시도다. 그전까지는 2011년을 연상시키는 비슷한 형태의 재난이었다면,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지진이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더욱이 고베, 아카시 해협 대교, 히지리바시 다리, 도쿄 오토기노쿠니 놀이공원, 도호쿠 지역을 배경지로 삼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공간에 자리 잡은 잊지 못할 기억을 애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고베의 1995년 고베 대지진, 도쿄의 1923년 관동 대지진, 도호쿠 지역의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상실로 짓이겨진 공간을 재조명하며, 그 땅 위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영화 제작이 조심스러웠다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문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 '도깨비'의 문을 차용했다고 언급하며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문은 일상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재해는 그 일상을 갑작스럽게 반복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자연스러운 일상의 영위를 중단시킨 '그날'의 아픔은 '더 데이스'라는 표현이 되기도 '문단속'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재조립되기도 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의 공통점은 'reply'다. 반복되는 재난 앞에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그것을 막고 싶은 염원이 담겨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당시로 되돌아갈 수 없더라도 영화를 통해서라도 가로막고 싶은 재난의 굴레는 슬프다. 인간의 힘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재난은 몇 번의 시도를 해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미국 HBO '체르노빌'(2019) / 구소련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등급인 7단계를 받았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같은 등급을 받았던 우크라이나 키이우 북쪽,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한 사고가 있었다. 1986년 4월 26일의 그날을 다룬 미국 HBO 드라마 ‘체르노빌’(2019)은 당시의 처참했던 광경을 그대로 재연한다. '더 데이스'가 아무런 전조 증상도 없이 들이닥치는 것으로 연출됐다면, '체르노빌'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이들이 하나둘씩 이상 신호를 느끼는 상황에 더 초점을 맞췄다. 전자가 정부의 대응에 집중했다면, 후자는 체르노빌에서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집중한 것이다.
당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경위는 이렇다. 총 4기의 원전을 가동하던 중 4호기에 사고가 발생했다. 1983년 완공됐던 RBMK형 원자로인 4호기는 제어가 어렵고 낮은 출력에서 불안정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사고는 전력 공급 상실 시, 비상 전원 공급 전까지 터빈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4월 25일, 시험 준비 중 운전 미숙으로 인해 열출력이 떨어졌고 이것을 올리기 위해 노심에는 기준치 이하의 제어봉만 남았다.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26일 새벽, 자동정지 기능을 차단한 채로 실험하다 온도가 상승, 수증기가 대량 발생하며 첫 폭발 이후 화학반응으로 두 번째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명백한 인재인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은 약 10일간 아이오딘(I-131), 세슘(Cs-137) 등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방출되면서, 주변 국가도 손상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작은 입자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고, 지역은 순식간에 오염됐다. 당시 피해 규모를 살펴보면, 피폭 증세를 보인 직원이 237명이고 28명은 3개월 안에 사망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방사능에 노출됐던 사람들은 질병을 앓고 사망하기도 했다. 사망자 수에 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사고로 인해 급증한 갑상선암과 암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
드라마 '체르노빌'은 사건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장면에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우선, 원자력이 폭발하면서 방출된 미세한 입자들을 보고 위험을 모르고 신기해하는 주민들의 모습, 실험이 실패했다는 사실과 함께 급박한 속도로 폭발하는 과정까지. 앞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는 모두 일상의 공간을 폐허로 만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가 인간의 삶에 침투하면서 모든 것을 망가뜨린 사고다.
인재라는 표현이 알려주듯, 이것은 사람에 의해 발생한 사고다.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미리 차단하고 예방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다. 따라서 우리는 '그날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안전에 만반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씻을 수 없는 상처의 기억이 우리를 다시 괴롭힐지 모른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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