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전철 밟는 韓 만성 정치위기 파헤친다
한국과 비슷… 고질적 위기 봉착
대중정치 의미하는 ‘노무현 질서’
‘팬덤·포퓰리즘 정치’로 가치 변질
‘상위 중산층’이 지지 핵심 기반
양당 고소득자 중심 정책에만 몰두
불평등 속 ‘정치 복원’ 갈길 멀어
이탈리아로 가는 길/조귀동 지음/생각의힘/1만8000원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양쪽에서 강한 이중 구조가 형성돼 있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부장제가 끈끈히 남아 있으며, 좌우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어느 나라의 얘기일까. 이 문장의 주어는 한국, 이탈리아 모두 될 수 있다.
그는 한국 정치가 만성적 위기에 빠진 것은 2002년 대선을 전후해 자리 잡은 ‘노무현 질서’가 더는 작동하지 않아서라고 지적한다. 노무현 질서는 노 전 대통령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 정당에 의존하지 않고 대규모로 유권자를 동원해 당내 권력을 잡았던 대중 정치를 의미한다.
이를 뒷받침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근무하며 대도시에 거주하는 화이트칼라 집단의 ‘중산층 행동주의’였다. 저자가 전작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상위 중산층’이라고 호명한 이들은 1987년 6월 혁명과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이끌며 사회 이슈 전반에 목소리를 냈다.
보수정당은 5년 만에 정권 탈환에 성공했지만, 스스로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진 덕분이었다. 박정희, 반공·반북, 영남으로 요약되는 전통적 보수가 퇴조한 가운데 보수정당은 새로운 이데올로기, 정책, 인물, 조직이 없었다. 청산된 보수권력과 살아 있는 진보 권력 모두와 맞싸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보수 진영의 러브콜을 받은 건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중정치를 기점으로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을 팬덤과 포퓰리즘 정치의 길을 걷게 된 과정과, 각 당의 주도 세력과 지지 세력 간 괴리를 통해 한국 정치의 위기와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결국 답도, 희망도 ‘정치의 복원’이라는데 과연 한국 정치가 응답할 준비가 돼 있을까.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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