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외교무대에서 사라진 北

홍주형 2023. 7. 2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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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다녀왔다.

매년 여름 그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에서 열리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를 비롯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에는 아세안의 대화상대국인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의 외교장관이 모두 온다.

 과거 남북 외교장관이 조우하기도 했던 ARF는 한국 기자들에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지만 북한이 ARF에 참석했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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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다녀왔다. 매년 여름 그해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의장국에서 열리는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를 비롯한 아세안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에는 아세안의 대화상대국인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의 외교장관이 모두 온다. ARF엔 북한도 참여한다. ‘아세안의 관점’이라고 불리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하고 적을 만들지 않는 아세안의 외교적 특성이 반영된 무대라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간 전략경쟁으로 전 세계적 진영 갈등이 심화되고 서로 만나는 것이 어려운 시점에 ARF가 만남의 장으로서 가진 역할이 더욱 커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성격을 십분 활용하는 외교장관들이 있다. 회의장인 자카르타 샹그릴라 호텔 로비 1층에 포토존이 설치됐는데, 이 자리에서 각국 언론으로부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는 단연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구 외교무대에서 난처한 상황에 처한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아세안 무대에서 시종 여유로운 태도로 미소를 날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최근 다시 외교부장이 된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 정치국 위원(외사판공실 주임)은 친강(秦剛) 당시 외교부장 대신 참석했는데, 왕 위원도 라브로프 장관 못지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반면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올해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일찍부터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북한 외무상이 ARF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2019년 이래 벌써 다섯 번째다. 코로나19로 각국 외교장관이 화상 참석할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 의장국인 인도네시아도 북한을 참여시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노력했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한다. ‘급’이 중요한 외교 무대에서 장관급 회의에 외교장관이 참석하지 않으면 외교적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올해 최 외무상 대신 참석한 안광일 주인도네시아 북한 대사는 제한적으로만 움직였고, 남한을 비롯한 외국 언론을 극히 경계했다.

필자는 북한 외교장관급 인사가 오지 않기 시작한 2019년 처음 ARF 출장을 갔고 올해 두 번째로 다녀왔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 외무상은 8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ARF에 오지 않았다. 4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름 유화적임에도 북한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아예 문을 닫아 걸었다. 과거 남북 외교장관이 조우하기도 했던 ARF는 한국 기자들에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지만 북한이 ARF에 참석했던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북한은 점점 그나마 소통하던 나라들과도 소통하지 않는다. 같은 진영의 중국, 러시아와만 교류할 뿐이다.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스웨덴,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주북 대사들은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국에서 일한 지 오래됐다. 6자회담국들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협력대화(NEACD) 등 반관반민(트랙 1.5) 협의체에도 북한이 불참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미군 병사가 월북한 지 열흘이 다 됐지만 이렇다 할 소통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완충지대가 완전히 사라질까 우려된다. 내년 ARF는 북한과 전통적으로 가까운 라오스에서 열린다. 라오스에선 북한 외무상을 볼 수 있을까.

홍주형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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