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피서(避暑) 독서
‘읽을만한 이야기’로 독자 사로잡아
스티븐 킹 ‘사다리의 마지막 단’(‘스티븐 킹 단편집-옥수수 밭의 아이들 외’에 수록, 김현우 옮김, 황금가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은 공포소설도 호러소설도 아니다. 내가 키티라는 여동생의 편지를 받으면서 전개된다. 나는 성공한 변호사이지만 그러느라 그동안 키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시간을 내주지도 답장을 하지도 못했다. 이 평범한 이야기를 스티븐 킹은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들려줄까? 그가 이 단편집 서문에 쓴 글을 보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두려움이나 공포가 삶을 크게 지배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의 감정이. 그는 이야기에 필요한, 독자에게 의미가 있을 만한 감정의 가장 아픈 압점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금지된 놀이를 할 때도 있다. 키티가 8살, 오빠인 내가 10살 때 둘은 3층이나 되는 헛간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건초가 쌓인 바닥으로 떨어지는 놀이를 한다. 사다리의 맨 윗단에서 바닥까지는 21미터나 되지만 아이들은 높은 데서 떨어질 때의 아찔한 감각, “다시 태어나는 느낌”에 사로잡혀 번갈아 가며 사다리를 오르고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다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 썩었다는 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오빠는 느낀다. 사다리가 더는 안전하지 않고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걸. 키티를 말렸어야 했다.
그러나 일은 언제나 벌어지고 만다. 오빠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키티에게. 이 남매가 헛간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건초더미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를 하는 장면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등이 서늘해진다. 책을 덮을 수도 다른 더 재미있는 뭔가를 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이 순간이 훗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키티가 얼마나 오래 사다리의 마지막 단을 붙잡고 매달려 있을 수 있을까? 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너무나 궁금해진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단순한 이야기로도 독자를 한순간에 흥미진진하고 오싹하게 만들어놓고. 나를 믿었던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마지막에 독자가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스티븐 킹에게 ‘전미 도서상’을 수여하면서 위원회는 “그의 작품에는 심오한 도덕적 진실이 들어 있다”고 평했다. 오랜만에 이 단편을 다시 읽다가 여전히 처음 읽을 때처럼 빠져들고 말았다. 장마 후의 불볕더위 속에서.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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