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피서(避暑) 독서

2023. 7. 2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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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놀이에 몸을 던지는 남매
‘읽을만한 이야기’로 독자 사로잡아

스티븐 킹 ‘사다리의 마지막 단’(‘스티븐 킹 단편집-옥수수 밭의 아이들 외’에 수록, 김현우 옮김, 황금가지)

휴가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국내선에 칠백 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들고 탑승했다. 그 섬에 오고 갈 때 개인 스크린이 있는 기종에 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 최신 영화들 목록부터 부지런히 살펴보았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나 무거운 책을 들고 타진 않았을 텐데, 라고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책은 안 읽고 신중하게 선택한 신작을 보다가 문득 대각선 복도 쪽에 앉은 한 탑승객을 지켜보게 되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내가 내려놓은 책보다 더 두꺼워 보였다.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이 그러하듯, 그 승객도 이미 다른 세상으로 홀연히 빠져든 듯 보였다. 무슨 이야기일까? 누구의 책을 저렇게나 깊이 빠져들어 읽고 있는 걸까?
조경란 소설가
모니터를 끄고 이제 나는 책 읽는 사람을 보기 드문 풍경처럼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도 책 읽는 시간만큼 때로 위로가 될 때가 있어서. 이 습하고 무더운 여름에 독자를 꼼짝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을 만한 작가. 어쩌면 저 사람은 지금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내 멋대로 즐겁게 짐작했다. 스티븐 킹이라면 그럴 만하고 게다가 지금은 여름의 절정이 아닌가. 공포나 스릴러처럼 으스스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기꺼이 빠져들고 싶은. 스티븐 킹은 작가라면 독자의 눈과 귀를 잡아둘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자질도 남다를 뿐 아니라 “읽을 만한 이야기”를 써낸다. 이성적인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있을 수 있는 이야기”에 훨씬 더 익숙한 나라는 편협한 독자에게도 말이다. 특히 그의 단편소설들이.

‘사다리의 마지막 단’은 공포소설도 호러소설도 아니다. 내가 키티라는 여동생의 편지를 받으면서 전개된다. 나는 성공한 변호사이지만 그러느라 그동안 키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시간을 내주지도 답장을 하지도 못했다. 이 평범한 이야기를 스티븐 킹은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들려줄까? 그가 이 단편집 서문에 쓴 글을 보면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두려움이나 공포가 삶을 크게 지배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의 감정이. 그는 이야기에 필요한, 독자에게 의미가 있을 만한 감정의 가장 아픈 압점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금지된 놀이를 할 때도 있다. 키티가 8살, 오빠인 내가 10살 때 둘은 3층이나 되는 헛간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건초가 쌓인 바닥으로 떨어지는 놀이를 한다. 사다리의 맨 윗단에서 바닥까지는 21미터나 되지만 아이들은 높은 데서 떨어질 때의 아찔한 감각, “다시 태어나는 느낌”에 사로잡혀 번갈아 가며 사다리를 오르고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그러다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 썩었다는 걸, 뭔가 잘못됐다는 걸 오빠는 느낀다. 사다리가 더는 안전하지 않고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걸. 키티를 말렸어야 했다.

그러나 일은 언제나 벌어지고 만다. 오빠가 언제나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키티에게. 이 남매가 헛간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건초더미로 뛰어내리는 위험한 놀이를 하는 장면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고 등이 서늘해진다. 책을 덮을 수도 다른 더 재미있는 뭔가를 볼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이 순간이 훗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키티가 얼마나 오래 사다리의 마지막 단을 붙잡고 매달려 있을 수 있을까? 이들은 어떤 어른이 되고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모든 것이 한꺼번에 너무나 궁금해진다.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단순한 이야기로도 독자를 한순간에 흥미진진하고 오싹하게 만들어놓고. 나를 믿었던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마지막에 독자가 들여다보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 스티븐 킹에게 ‘전미 도서상’을 수여하면서 위원회는 “그의 작품에는 심오한 도덕적 진실이 들어 있다”고 평했다. 오랜만에 이 단편을 다시 읽다가 여전히 처음 읽을 때처럼 빠져들고 말았다. 장마 후의 불볕더위 속에서.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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