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이주민이자 그들의 후손이다”

김용출 2023. 7. 2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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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 직면한 이민문제 근본적 고찰
네안데르탈인 이동부터 오바마 사례까지
인류의 이동·이주, 이민의 세계사 조명
이민자 대한 태도 상황따라 변화 꼬집어
경제 성장기땐 ‘환영’ 침체기 오면 ‘혐오’
이주는 인류역사의 중심… 과소평가 안돼

이주하는 인류/샘 밀러/최정숙 옮김/미래의창/1만9000원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2011년 5월, 아일랜드 오팔리주 머니갤이라는 작은 마을에 VIP를 실은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곧이어 수많은 자동차들이 몰려들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부부가 외가 조상의 옛집을 방문한 것이다. 자신이 아일랜드에서 이주해온 후손임을 확인한 오바마 부부는, 이어서 근처 펍에서 기네스 맥주를 마셨다. 오바마가 재선을 겨냥해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의 지지를 강화하기 위한 캠페인이었다. 오바마는 흑인이고 이주민 출신이라는 자신의 유산에 대해서 종합적이고 설득력 있는 견해를 가진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자신을 흑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혼혈 유산 역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견해는 첫 번째 대선 유세 중 했던 다음의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케냐에서 온 흑인 남성, 그리고 캔자스에서 온 백인 여성의 아들입니다. 나는 노예, 또 노예 소유자의 피를 이은 미국 흑인과 결혼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소중한 두 딸에게 물려줄 유산입니다. 내게는 세 대륙에 걸쳐 흩어져 있는 온갖 피부색을 가진 온갖 인종의 형제, 자매, 조카, 삼촌, 사촌들이 있습니다.”
언론인 샘 밀러는 “인류사에서 이주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현대의 인류가 직면한 이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하기 위해선 근원적인 인류의 이동과 이주, 이민의 세계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하와이 한국인 이민자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미 자신들의 터전에 잘 정착해 있는 사람들은 이주민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걱정한다. 이주민 문제는 때론 사람들을 분열시키기도 한다. 일부 정당은 정치노선에 따라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일부 정치가는 자신의 득실에 따라서 이민을 반대하거나 찬성하면서 혐오나 국민감정에 불을 붙이기도 한다.
이민과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는 경제 주기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성장기에는 더 많은 노동력이 경쟁력이니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이민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하지만 경제 침체가 되면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이민자들이 다시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거나 혐오한다.
샘 밀러/최정숙 옮김/미래의창/1만9000원
“우리가 바란 것은 일손이었는데, 대신에 인간들이 왔다.” 스위스 극작가 막스 프리쉬는 이민 및 이민자 정책에 대해 이같이 독설을 퍼부었다. 이주민들은 혐오와 독설에 짓눌려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한국 사회 역시. 영국에서 나서 인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생활해온 언론인 샘 밀러의 신간 ‘이주하는 인류’는 현대의 인류가 직면한 이민 문제를 고민하면서 좀더 근원적인 인류의 이동과 이주, 이민의 세계사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인류사에서 이주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었으며, 간과되거나 오해를 받아왔다”며 역사 가운데 정지 상태, 정착 사회, 고정된 민족이나 국가 대신 이주, 민족 이동, 유동적 사회의 프리즘을 통해서 이동과 이주, 이주민의 세계사를 다룬다.

“나의 목표는 이주를 인류 역사의 중심으로 복귀시키고 이주민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를 재설정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독일의 지하 광산에서 일하던 한국인 광부 모습.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선사시대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그리스와 로마의 정착지 건설, 알렉산더 대왕, 북유럽의 바이킹,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 아프리카 노예무역, 푸 만추와 황인종의 위협, 유대인의 이주, 이주 노동자, 버락 오바마까지 인류의 이동과 이주, 이민의 역사를 들려줌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이주와 이민의 문제를 어떻게 근원적으로 풀 것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저자는 책에서 이주민을 받아서 나라가 부강해진 경우도 많았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에 터를 잡은 무슬림 계열 우마미야 왕조는 고트족과의 통혼, 기독교인, 유대인, 바이킹까지 여러 인종을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고, 열린 문화를 지향한 몽골은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대제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현재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그렇다고 이주가 모두 유익하거나 삶을 풍요롭게만 해준 것 역시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온 초기 유럽인 이주민들은 그곳에 질병과 죽음을 가져왔고, 일본과 미국,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다른 곳에서 온 이주민에 의해서 소수자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중요한 사실은 현대 사회에서 이동과 이주는 불가피하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앞으로 반세기 동안 이주는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한 나라들은 인구 노화로 노동력 부족을 메꾸기 위해 더 많은 이민자를 필요로 하게 되며, 기후 변화로 이민과 이주 욕구는 더욱 극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민자 구금 시설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주는 오늘날 아주 중요한 주제로 우리는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국경, 여권, 이민 쿼터, 장벽, 비자 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좀 더 깊고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주 혹은 이민이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파고드는 모든 문제들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류는 고대부터 실용적이든 실용적이 아니든 다양한 이유로 이동과 이주를 계속해 왔지만, 정주주의 세계에 살고 있어서 자주 그것을 잊는다고 지적했다. 인류는 수천, 수만 년 동안 지구의 거의 모든 곳으로 이주했고, 그것을 막으려는 온갖 시도에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류에게 이동과 이주는 운명이라고. 우린 모두 이주하는 인류라고.

“이주의 역사야말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유인원과 인류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 중 하나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주민과 이주민 후손으로서 우리의 역사가 모두의 공통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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