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우편을 보냈나…전국 방방곡곡 배송된 정체불명 국제우편물 [사사건건]

조희연 2023. 7. 2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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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지: P.O.Box 100561-003777, Taipei Taiwan’

지난 20일부터 전국으로 배송을 요청한 적 없는 수상한 국제우편물이 배송되기 시작했다. 소포 안에는 이쑤시개와 립밤 등 작은 크기의 물품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울산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 관계자 3명이 우편을 개봉한 뒤 어지럼증과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지난 23일 강원 강릉시 교동 강릉우편집중국에서 경찰 및 육군, 소방 당국 관계자들이 의심 해외우편물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소방본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21일 유사한 유형의 국제우편물 반입을 일시 중단하고 이미 국내에 반입된 경우 안정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배달하겠다고 밝혔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외국에서 주문하지 않은 우편물을 받는 경우 개봉하지 말고즉시 112나 119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하자 “수상한 국제우편물이 배송됐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빗발쳤다.

우편물의 정체는 무엇이고, 누가, 왜, 우편을 보낸 것일까.

◆경찰 신고 3000건 이상…“위험물질 없어”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5시까지 6일간 전국에서 접수된 ‘수상한 국제우편물’ 관련 신고는 총 3021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1976건은 오인 신고로 확인됐고, 경찰은 나머지 1045건을 수거해 조사에 나섰다.

먼저 울산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최초 신고 접수된 사건과 관련, 소방·경찰 등 초동 출동 기관이 우편물을 수거해 1차 검사한 결과 화학·생물학·방사능 관련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해당 검사는 소방 특수화학구조대, 군 대화생방테러특임대, 보건소 등이 합동 조사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중앙우체국 건물이 테러 의심 우편물 접수로 한때 전면 통제됐다. 뉴스1
이후 국방과학연구소가 실시한 정밀 검사에서도 위험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어지러움 및 호흡 불편을 호소했던 복지 시설 직원 3명도 병원 입원 후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 지난 22일 퇴원했다.

경찰·소방은 수거된 다른 우편물(오인 신고 및 단순 상담 제외)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했지만 화생방 관련 위험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국무조정실은 “최근 해외배송 우편물 신고 사건 관련 관계기관 합동으로 테러 혐의점을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 테러와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국조실은 “테러협박 및 위해 첩보가 입수되지 않았고, 인명피해도 없어 테러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정보·수사당국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 해외 정보·수사기관과 함께 공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국방과학연구소는 울산 장애인 복지시설 관계자들이 팔저림 증상 등을 호소해 미지시료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다. 미시지료 분석은 성분이 불분명한 시료의 위험물질 포함 여부 등을 확인하는 방법인데, 해당 분석에서도 위험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우편물에 위험물질이 없는 것으로 거듭 확인됨에 따라 경찰도 테러 연관성 조사를 마치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초 신고자들이 화학·생물·방사능 검사 이후에도 이상 반응을 호소해 미지시료 검사까지 한 것”이라며 “검사 결과 위험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우편물의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 식당으로 온 말레이시아 발송 우편물. 대전경찰청 제공
◆무작위 발송해 상품평 조작하는 ‘브러싱 스캠’ 추정

경찰은 이번에 배송된 국제우편물이 ‘브러싱 스캠’(Brushing Scam)인 것으로 보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주문하지 않은 물건을 아무에게나 발송한 뒤 수신자로 가장해 상품 리뷰를 올리는 방식으로 온라인 쇼핑몰 판매 실적을 부풀리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이 리뷰나 구매량이 많은 제품을 선호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수법이다.

특히 우편물의 주소지가 2020년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정체불명의 씨앗이 배달돼 논란을 일으켰던 우편물 발송지 주소와 같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브러싱 스캠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당시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중국발 혹은 대만발로 정체불명의 씨앗이 배달되면서 미국에서는 중국발 ‘생화학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농무부는 “현재까지는 브러싱 스캠 외 다른 행위로 볼 증거가 없다”고 일단락지었다.

경찰은 이 우편물이 대부분 중국에서 발송돼 대만을 거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보고 중국 공안에 수사 협조를 요청한 상태다. 
지난 21일 전남 여수에서 정체불명의 국제우편물이 도착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당국이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전남소방본부 제공
대만 부총리 격인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은 지난 22일 우편물이 중국 선전에서 최초 발송돼 대만을 경유, 한국으로 보내졌다며 “끝까지 추적 조사를 진행해 어떠한 부분을 강화해야 하는 지 모든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만 우정당국인 중화우정은 지난 25일 화물 우편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중국 선전에서 보내진 환적용 국제 우편물 접수를 일시 중단하고, 화물 운송업체에 검증된 국제적 전자상거래 플랫폼·물류회사의 우편물만 접수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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