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이란 억압에 맞서…소수자들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책과 삶]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앨리슨 케이퍼 지음·이명훈 옮김
오월의봄 | 568쪽 | 2만9000원
페미니스트, 퀴어, 장애 운동은 적이 너무 많다. 각 진영은 더 강력한 주장을 위해 내부 구성원에게 하나의 입장을 갖기를 강요하기도 한다.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는 구호를 내세울 때도 있다. 미 텍사스대 부교수인 저자 앨리슨 케이퍼는 개별적인 삶의 존재를 드러내며 각 진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정상성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다양한 억압이 서로 얽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하고, 각 운동의 확장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한다.
책의 제목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나열됐지만, 논의의 중심은 ‘불구’(crip)다. 저자는 장애 정체성 및 장애 경험을 중심으로 기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돌아본다. 현재 장애학과 장애운동이 가진 문제도 다룬다. 책은 몇 가지 논쟁적인 사례들을 다루며 인식의 틀을 흔든다. 1997년 태어난 애슐리 X는 ‘정적 뇌병증’을 진단받았다. 부모는 애슐리의 고통을 완화하고 애슐리를 더 수월하게 돌보기 위해 그의 성장을 억제시키고 유방과 자궁을 절제했다. 그들은 ‘성인의 몸’이 ‘인지적 발달이 더딘’ 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2011년,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농인 레즈비언 커플은 농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았다. 농인 아이를 원했기 때문이다. 몇몇 비평가는 이 커플이 “동성애 가정에서 자란 결과로 얻은 단점뿐 아니라 장애의 부담까지 부과한다”고 질책했다.
저자는 애슐리 사건이 논의된 과정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농인 레즈비언 커플 사례를 언급하면서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미래 속에 흔히 장애인이 없음을 지적한다. 그는 여러 사례를 소개하며 페미니스트, 퀴어, 장애인을 호명한다. 각 정치공동체 사이 ‘지속적인 논의와 갈등’을 통한 ‘연합’을 꿈꾼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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