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실무’ 핵심 부서들 죽이고…북 정보 분석 조직은 강화
남북회담본부·출입국사무소 등
‘발전기획단’ 기구 하나로 통폐합
긴장 국면 속 단절…경색 부채질
차관 주도 개편 ‘대통령실과 교감’
통일부가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형해화하는 ‘부처 폐지’ 수준의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북한을 적대적으로만 바라보는 윤석열 대통령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법에 규정된 통일부 본연의 역할에 역행할뿐더러 향후 대화 재개에 대비하는 조직적 역량도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 차관이 장관 교체기에 조직개편을 주도하면서 윤 대통령의 ‘차관 정치’가 현실화한 모습이다.
문승현 차관이 28일 발표한 통일부 조직개편 방향은 남북 대화·교류·협력 조직을 사실상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현재 별도 조직인 교류협력국,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 개성공단 업무를 다루는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을 하나의 전담기구로 통폐합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장급 조직(남북회담본부)과 3개 국장급 조직이 하나의 국장급 조직으로 축소되면 남북 대화·교류·협력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북한 인권과 북한 정보 분석 조직은 강화된다. 장관 직속으로 납북자와 국군포로, 북한 억류자 문제를 다루는 ‘납북자 대책반’이 만들어진다. 북한 정보의 경우 수용소 등 인권 분야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고 국내외 정보기관과 협력을 증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직개편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대화·교류·협력 기능을 약화해온 세 차례 조직개편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교류협력실을 교류협력국으로 급을 낮추고, 남북회담본부의 하위 부서들을 통합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주요 실·국을 사실상 폐지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일 “통일부는 북한지원부가 아니다”라며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개편은 예상돼왔다. 윤 대통령은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대결적 통일·대북정책을 강조해왔다. 북한과의 대화·교류를 추진한 전임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적의 선의에 의존한 가짜 평화”라고 비난하며 “힘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고 있다.
조직개편 방향은 통일부 본연의 역할에 역행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령인 ‘통일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는 통일부 직무를 ‘통일 및 남북 대화·교류·협력·인도 지원에 관한 정책의 수립, 북한 정세 분석, 통일교육·홍보,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로 규정한다. 대화·교류·협력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다.
통일부는 남북 대화·교류가 끊긴 상황을 감안하면 관련 조직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긴장 국면에서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려면 대화·교류·협력 기능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직을 줄여놓으면 향후 펼쳐질 수 있는 대화 국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맞닿는다. 한 전직 통일부 장관은 “통일부 조직은 달라지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린다고 대화·교류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통일부 내부 역량을 결집해 막힌 길을 뚫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직개편은 남북관계에 부정적 신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화·교류·협력 조직 축소는 남북관계를 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조직개편은 지난 3일 취임한 외교부 출신 문 차관이 주도했다. 권영세 전 장관에서 김영호 장관으로 교체가 추진되던 시기에 부처 위상을 뒤흔드는 조직개편 밑그림을 그려놓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차관을 대거 바꿔 집권 2년차 국정 장악력을 키우려는 ‘차관 정치’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번 조직개편은 대통령실과 교감 아래 이뤄졌다. 김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논란을 짊어지지 않도록 문 차관이 책임을 떠안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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