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살 나무가 땅을 기어간다…인간이 숨 막아도, 뻗어간다
의령 느티나무 (1) 사람으로 치면 턱밑까지 묻혀 100년을 살았다
* 의령 느티나무 (2) 저수지에 100년 묻힌 5t 나무에서 불상 1천개 나왔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느티나무는 여름이 되면 봄부터 모았던 에너지로 또 한 번 햇가지(여름 순)를 힘차게 밀어낸다. 포물선을 그리며 동서남북으로 고루 뻗은 햇가지가 출렁출렁. 양옆으로 연한 빛깔의 햇잎이 돋아, 덥수룩한 머리(수관)가 유난히 밝다.
봄에 한 번만 새 가지를 내는 ‘보통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건 당연한 일. 건강 체질이라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 장수한다. 그래서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느티나무 고목은 우리나라 곳곳에 참 흔했다. 마을 어귀엔 어김없이 정자나무로 느티나무가 있었다. 빽빽한 잎으로 넉넉한 그늘을 만든 덕에 누구나 모였고, 이야기가 피어났다. 그땐 매미 소리도 참 우렁찼다.
■ 마치 하늘인 듯, 땅에 맞닿아 뻗어가다
“여기 원래 60여 가구 마을이 있었는데, 일본강점기인 1910년대 쌀을 늘린다고 둑이 만들어지면서 물에 잠겼다고 해요. 남쪽으로 함안 대산(면), 북쪽으로 의령 신반(리), 동쪽으로 창녕 남지(읍)로 드나드는 길목이라고 삼걸(삼거리)마을, 세 산에 둘러싸였다고 삼산마을이라고 했어요. 이 둑 안쪽을 웃삼걸마을, 이 바깥쪽을 아래삼걸마을이라고 불렀지요.
두 마을의 경계에 당산나무 네 그루가 있었어요. 마을만 희생된 게 아니라 수백 살 된 나무 두 그루도 베어지고 둑이 만들어지면서 둥치는 물에 잠겼어요. 원래 열 사람이 손을 뻗어야 겨우 닿는 굵기라서 ‘천년나무’라고 불렀죠. 제가 어릴 때도 이 밑동을 둥그나무(동구나무)라고 불렀어요. 밑동이 얼마나 넓었는지, 저수지 위로 밑동이 드러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위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낚시했지요.”
2023년 7월13일 오전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저수지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난 동곡 법사(64·전 김해화엄불교회관 태림원 원장)가 돌이켰다.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삼걸마을(삼산마을)은 현재 두곡천 아래 두곡리에 편입돼 이름도 희미해진 상태다. 동곡 법사는 한산당 화엄 스님(1925~2001)을 은사로 모셨다.
남은 두 그루 중 더 큰 한 그루를 살펴봤다. 곧게 자란 뒤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 여느 느티나무와는 달랐다. 땅과 맞닿은 부분에서 1.5~2m 굵기의 가지 6개가 뻗어 있었다. 둑 축조 때 남아 있는 느티나무 줄기도 2층 높이 정도의 흙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턱밑까지 파묻혀 100년가량 살았다는 얘기다.
현장을 찾은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는 △잎의 크기가 작고 △나무껍질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고 △말라 죽은 가지가 많으며 △여름 순이 생기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생육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런 점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두 나무의 보호수 지정을 군청에 건의하려 한다.
박 활동가는 “과거 이 네 그루가 ‘웃상그리마을’ 들머리에 숲을 이뤄 입구(동구나무)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무는 잔뿌리를 지표면 30㎝ 이내에 뻗어 호흡한다. 흙을 높게 덮는 복토는 나무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일이다. 정이품송(충북 보은), 용문사 은행나무(경기 양평) 등이 대표적인 복토 피해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도 이날 이 억센 두 고목나무의 촘촘한 수관(나무의 잎과 가지)은 비탈을 따라 20m 이상 늘어져 아래는 어두컴컴했다. 옛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 다 키가 약 18m였다. 땅속에 묻힌 가슴높이 둘레는 8.5~9m 정도로, 수령은 300~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 “논 줄었지만 둑은 되레 높아졌다는 게 참…”
“전부 일급 논이었는데….”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던 동곡 법사가 잡초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빈집이 절반가량, 잡초가 무성한 묵힌 논도 수두룩했다.
이제 부산 등 도시에서 귀촌한 가구를 합쳐도 마을엔 10여 가구만이 있을 뿐이다. 동곡 법사가 2016년 이 마을로 귀향했을 때 8명이던 90살 이상 어르신도 이제 그의 부친 이종윤(100) 옹을 비롯해 2명뿐이다. 올 사람이 없어 마을 경로당이 문을 걸어 잠근 지도 벌써 3년. 이종윤 옹을 찾아 ‘천년나무’에 관해 물었다. 귀가 어두운 이 옹은 “무슨 나무? (…) 세월이 지겹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을도 농업도 쇠락해가지만 2011~2012년 한국농어촌공사는 안전 우려 때문에 두곡저수지의 둑을 1.5m가량 높였다. 동곡 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논은 줄었지만 둑은 되레 높아졌다는 게 참….”
의령(경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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