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혐오? 표현의 자유?... 쿠란 소각 시위로 깊어지는 '스웨덴의 딜레마'
국민 53% “쿠란 소각 반대”
최근 스웨덴에서 잇따랐던 '쿠란(이슬람 경전) 소각' 시위로 표현의 자유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서방의 이슬람 혐오"라며 이에 항의하는 무슬림의 맞불 시위도 날로 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위 자체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돼야 한다는 스웨덴 정부가 궁지에 몰리는 모양새다.
이슬람권 반발, 연일 확산
2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전날 "(이슬람권 반발이 거세지면서)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위험이 분명히 있다"며 "쿠란 소각 시위가 다시 벌어지면 그 결과가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스웨덴 극우단체·정당의 쿠란 소각 시위에 대한 무슬림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최근 상황은 심상치 않다. 앞서 경찰이 두 차례 불허한 쿠란 소각 시위를 지난주 법원이 허용하자, 이슬람권 각국에선 성난 시위대가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20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스웨덴 대사관이 불탄 게 대표적이다. 예멘 튀르키예 알제리 이란 레바논 파키스탄 등에서도 항의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쿠란 소각은 유감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현행법상 시위 자체를 사전에 막을 순 없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테르손 총리는 국영 TT통신에 "시위 허가 요청이 경찰에 추가 접수됐다"며 "허가 여부는 경찰 판단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 못 놓는 스웨덴
표현의 자유 중시는 스웨덴의 전통이다. 1970년대엔 신성모독법도 폐기했다. 헌법은 '종교적 메시지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신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의견 표현'까지 포함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다. 시위는 공공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때만 금지된다. 마튼 슐츠 스톡홀름대학 법학부 교수는 "스웨덴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보호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라며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법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근본 가치"라고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이슬람 국가들 생각은 다르다. 표현의 자유는 허울뿐인 명분이라고 본다. 쿠란 소각은 이들로선 최고의 모욕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무슬림 수십억 명을 불쾌하게 하는 증오범죄에 국제사회가 공동 대응해야 한다"며 "오만한 서양인들에게 무슬림을 모욕하는 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반스웨덴·안보 위협 커지는데… '딜레마'
가디언은 "스웨덴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동시에, 이슬람권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짚었다. 표현의 자유 보장에 따르는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과 관련한 키를 쥐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란 소각 시위를 이유로 어깃장을 놓고 있다. 스웨덴에 덧씌워진 반(反)이슬람 이미지도 부담이다. 스웨덴 정보기관 사포(SAPO)의 샤를로트 폰 에센 국장은 "스웨덴 이미지가 관용적 국가에서 이슬람에 적대적인 국가로 바뀌었다"고 우려했다.
안보 위협도 커졌다. 앞서 경찰의 시위 불허도 스웨덴을 '우선적 공격 목표'로 삼을 위험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실제로 스웨덴의 시각예술가 라르스 빌크스는 2007년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얼굴과 개의 몸을 갖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가 수차례 테러의 표적이 됐다.
스웨덴의 중도좌파 야당은 정부가 대응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고 BBC는 전했다. 스웨덴 이슬람연맹을 이끄는 마흐무드 칼피는 "우리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겠다는 신호를 전 세계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공영 SVT방송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이상(53%)은 쿠란 소각 시위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정부는 '국가가 아닌 개인 차원'의 시위로 선을 긋고 있으나, 이 정도로 이슬람권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토비아스 빌스트룀 스웨덴 외무장관은 이란 이라크 알제리 레바논의 외무장관들에게 직접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스웨덴 법률을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는 장기적인 문제이며, 빠른 해결책은 없다"고 고심을 드러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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