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ONE] 중공군도, 남북한도 50년대 빌보드도 사랑한 노래 아리랑

김우성 2023. 7. 28.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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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음 프로젝트 이거야!원(ONE)]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09:20, 23:20)

■ 방송일 :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 진행 : 김우성 앵커

■ 대담 :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

[이거야!ONE] 중공군도, 남북한도 50년대 빌보드도 사랑한 노래 아리랑

- 한국전쟁 때 전 세계로 퍼져나가 미국, 호주 거쳐서 유럽까지

- 일제시대 일본에게 일으킨 한류 이후로 한국전쟁 때 가장 큰 한류

- 아리랑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는 희노애락 담긴 탓

- 남북의 아리랑도 서로 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부분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김우성 앵커(이하 김우성)> 아리랑을 듣거나 부르면 눈물이 납니다. 기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슬퍼서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남과 북, 해외동포와 외국인, 남녀노소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그 힘이 뭘까요? 왜 남과 북이 손을 잡고 단일팀을 만들어 한반도기를 걸면 아리랑이 저절로 따라올까요? 우린 모두 아리랑 안에 있기 때문이겠죠. 이 아리랑의 비밀을 밝혀주실 분, 오늘 저희가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리랑 전문가이시죠.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소장님, 어서 오십시오.

◆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이하 진용선)> 네, 안녕하세요.

◇ 김우성> 소장님, 본격적으로 아리랑 얘기를 하겠습니다. 남과 북이 함께 사랑한, 사랑하고 있는, 앞으로도 사랑할 음악 아리랑 얘기인데. 너무 원초적인 질문이고 좀 큰 질문이긴 합니다만, 이런 질문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선생님, 아리랑이 도대체 뭐예요?

◆ 진용선> 아리랑에 대해서는 1920년대부터 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학설을 제시를 했죠. '아리랑이 뭐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사실은 아리랑이 우리말의 세 글자인데, 여기에 대해서 구구한 학설이 지금까지 나온 게 마흔 가지가 넘어요. 아리랑 어원 백설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뚜렷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라고 하는 뜻이죠.

◇ 김우성> 뜻은 모르지만 남북한 해외동포 모두가 지금 아리랑을 서로 사랑하고 부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 진용선> 자기네들이 담고 싶은 가사, 이야기를 거기에다 계속 시대별로 담았던 거죠. 그러니까 아리랑 가사는 구한말의 인력거 얘기도 나오지만 최근에는 코로나 얘기까지도 나오고요.

◇ 김우성> 맞습니다. 그렇게 만들 수 있죠.

◆ 진용선> 그러다 보니까 아리랑 가사가 쌓이는 거고 또 그 당시에 조선시대 구한말 당시에도 벌써 아리랑 가사가 782절이 된다라고 하는 것은 그때까지 적층이 그만큼 됐다는 거죠. 지금은 더 된 거죠.

◇ 김우성> 맞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남과 북 사이의 아리랑을 저희가 많이 봐야 되는데요. 절 중에 저는 이게 참 와닿습니다. 사발 그릇은 깨지면 둘이 되는데 38선은 깨지면 하나가 된다. 굉장히 이 아리랑을 만들어 부르는 사람들의 시적 감각이 너무 뛰어난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 진용선>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로 뭉친다라고 하는 역설적으로 통합의 개념으로 보잖아요. 그 가사가 사람들한테 많은 울림을 줄 수가 있는 거죠.

◇ 김우성> 이렇게 다양한데요. 아리랑을 두고 사실은 우리는 어느 지역, 세계 어디를 가든 한민족. 꼭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아리랑으로 우리의 정서가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아까 깨어지면 하나가 된다라는 말, 되게 분산돼 있고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남북도 갈라져 있는데. 아리랑에서는 한 덩어리가 된단 말이죠. 이게 신기한데, 토크가 많으니까 좀 지겨우실 수도 있는데요. 이 노래, 제가 뒷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이거 밀양 아리랑 아니야?' 할 텐데, 광복군 아리랑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아까 말씀하셨지만 아리랑이 지역마다도 다르지만 은근, 끈기, 싸움 결국은 좀 이겨내겠다. 이런 정신도 좀 녹아 있는 면이 있다라고 봐야 되겠죠?

◆ 진용선>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광복군 아리랑 같은 경우도 밀양 아리랑 가사를 가지고 그 배경으로 한 거죠. 중국의 길림성이나 흑룡강성 쪽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좀 더 광복군 활동을 하는데 힘을 불어넣을 수 있는 노래로 택한 게 밀양 아리랑이죠. 왜 그러면 정선 아리랑이라는 가사를 택해서 하려니 처지고.

◇ 김우성> 차분해지고 구슬퍼지는 면이 있잖아요.

◆ 진용선> 그런데 밀양 아리랑 가사는 굉장히 경쾌하고 또 발랄하고 하다 보니까 광복군들이 기력을 회복하거나 힘을 펴는 데 좋은 내용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밀양 아리랑은 사실은 군가로 많이 쓰였죠.

◇ 김우성> 맞아요. 가장 가까이에는 2018년 2월 동계올림픽에서 남북이 함께 입장했습니다. 남북이 함께 입장하면 보통 국가가 나와야 되는데, 애국가 나오다가 북한 국가가 나오나? 혹은 북한 국가 나오다가 애국가 나오나? 이런 걱정을 하려던 찰나에 아리랑이 나와요. 사실 저희가 오프닝에서 살짝 들려드렸었거든요. 이 곡을 선생님도 들으셨나요?

◆ 진용선> 네, 들었습니다.

◇ 김우성>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 진용선>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또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고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다라고 남북이 모두 공감을 하고 있는 노래잖아요. 사실은 이걸 가지고 그래서 제2의 애국가다라고 얘기도 하는데, 그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에도 아리랑이라고 하는 게 주제가 평화와 사랑의 노래라는 개념이었었어요. 그래서 또 그때 분위기라고 하는 것이 평화와 사랑에 맞아 떨어져서, 그 당시에는 제가 박물관장을 하고 있었는데 저희도 동계올림픽 장소에 가서 '아리랑, 평화와 사랑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열은 적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때 분위기에서 남북이 만나서 평화와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념을 초월한다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때 이런 게 굉장히 잘 먹히지가 않았을까. 그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남북이 공히 희로애락이라고 하는 것을 그 가사에 담고 있었지, 그 노래만큼은 이데올로기가 접근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을 그때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 김우성> 지금 배경으로 저희가 살짝 그 공식 BCM을 들려드렸습니다. 이게 출시된 음반은 아닌데 굉장히 좀 요즘에 맞춰서 국악기도 포함돼 있지만 전자 음악도 들어가 있고 굉장히 흥겹게 만들어졌는데, 그거 말고요. 개막식 때 사람들이 '저게 무슨 아리랑이지?' 하는 게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뗏목을 타고 있는 장면이었는데요. 일단 잠깐 여러분 들려드릴게요. 아이들이 뗏목을 타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번개 소리에 놀라기도 합니다. 손을 꼭 잡은 아이들이 뗏목에 올라타 있고요. 뗏목을 이끄는 노구는 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연을 형상화한 경기장을 보는 장면. 평창올림픽 개막식 공연에서 선보인 아리랑인데요. 김남기 선생이 부른 정선 아라리였어요. 이제 사람들이 '이게 정선 아라리!' 이러실 것 같은데요. 선생님 이것도 보셨죠?

◆ 진용선> 그렇죠. 이게 벌써 5년이 됐네요. 5년이 됐고 이때 참 인상적이었죠. 혼자 아리랑을 부르고 하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우리가 슬프지만은 또 슬프지 않은 노래 같은 느낌이 들어요.

◇ 김우성> 슬픈데 "슬프다"라고 해주니까 '그럼 나 일어설 것 같아.' 이런 느낌이 들어요.

◆ 진용선> 그리고 또 이게 아리랑의 시련의 장을 표현을 했죠. 거기서 다섯 아이를 태운 뗏목이 그 비바람에 물결치는 격랑 속에서 헤쳐 나가고, 그것은 이제 우리 근현대사를 그대로 표현해 준 거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는 은하수가 하늘을 환하게 수놓은 가운데 거기에 희망의 반딧불이가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아리랑이 과거의 고난에서 또 새로운 희망의 모습을 보여줬죠. 이게 이제 아까 말씀드린 아리랑 고개를 상징하는 거죠. 우리가 역경을 이렇게 이겨내고 동계올림픽까지 개최하는 나라가 되었고 그 가운데 정선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이 그러한 역사를 구절, 구절을 담아서 보여주는 모습. 그것을 김남기 선생님이 그대로 불러서 많은 감동을 줬죠.

◇ 김우성> 이 과정에서 아리랑이 굉장히 중요한 상징처럼 시작됐다.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과 북이 만날 때 아리랑이 총매대처럼 항상 있는데. 저는 깜짝 놀란 게 저희가 방송은 7월 29일 토요일날 아침에 본방, 밤 11시에 재방이 나가고 있습니다만 저희가 녹음하고 있는 27일 목요일은 사실 정전협정일입니다. 정전협정장에서도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고요. 남과 북의 군악대가. 이러면 정말 남과 북 관계에서는 아리랑을 뗄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아요.

◆ 진용선> 그렇습니다. 정전협정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장소에서 서로 군악대가 아리랑을 연주를 했죠. 그런데 사실은 정전협정 이전에도 아리랑이 서로가 남북이 만났죠. 전쟁 중에서. 그것이 뭐냐면 6.25 전쟁 때의 심리전으로 우리 국군 쪽에서는 서부전선 고지에 올라서 아리랑을 노래로 부르고 악기로 연주해서 북한 인민군들한테 틀어줘서 그때 북한 인민군 많은 사람들이 귀순했다라고 하는 기록이 신문에도 나오고요.

◇ 김우성> 심리전 도구로 아리랑 쓰였다고요?

◆ 진용선> 그렇죠. 그리고 또 북쪽에서는 어떻게 하냐면 밀양 아리랑을 파르티잔 아리랑이라고 해서 조선지가라고 해서 중공군 군가집이죠. 그때 중공군이 항미원조라고 하는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할 때 그 밀양 아리랑이 파르티잔 아리랑이라고 해서 중공군 군가로 들어가 있었죠.

◇ 김우성> 흔히 우리가 한국식으로 표현하는 걸로 하면 빨치산 아리랑이 되는 거네요.

◆ 진용선> 그렇죠. 그러니까 남북이 서로 아리랑을 가지고 전쟁 중에 심리전의 도구로 써왔던 게 1953년까지고, 전쟁이 휴전에 들어서면서 7월달에 그 정전협정 조인 장소에서 또 남북 군악대가 서로 같이 했던 연주했던 게 또 아리랑이었던 거죠.

◇ 김우성> 사실은 지금 70년 만에 한국을 찾은 영국 참전군인 노래도 저희가 클로징 때 들려드릴 건데요. 그분도 한국말도 모르고 기억도 없는데 70년 전에 한국전쟁을 참전했던 영국 군인이고 최근에 이제 영국에서 굉장히 핫한 할아버지세요. 89세신데, 이분도 아리랑을 기억하고 부르시더라고요. 이 아리랑의 힘이 이 정도면 대단한 것 아닙니까? 전쟁 중에도 쓰이고요. 평화 중에도 쓰이고요. 일제에 맞설 때도 쓰이고요. 아리랑은 그냥 우리의 모든 것입니까? 어떻게 봐야 돼요?

◆ 진용선> 그렇죠. 요즘 우리가 한류를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이 한류의 측면에서 본다라고 하면 6.25 전쟁 때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이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아리랑을 알아갔던 1차 한류 이외에는 가장 큰 한류죠. 6.25 전쟁 때 많은 군인들이 참가해서 전장 곳곳에서 위문 공연이 이어졌었고 이 위문 공연의 마지막 장면은 꼭 아리랑으로 장식을 하다 보니까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고 하는 이러한 표현들, 이 어려운 한국 말들을 거의 다 알고 갔었던 거죠. 그리고 지금 이분들이 80세, 90세가 넘어가는 이 와중에도 한국말은 전혀 하지도 못해도 한국 또 한국전쟁을 얘기하면은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를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거죠. 마치 우리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토해내듯이 그렇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 한국 문화의 공간 확산을 가져오는데 굉장히 크게 기여했다라고 하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노래입니다.

◇ 김우성> 이 '아디동 블루스'라는 곡 한번 살짝 들려드리고 선생님 이 곡 설명 좀 해주시면 아마 지금 말씀하신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잠시 들어보시죠. 오늘 귀한 음원 대방출이네요. 시작할 때는 뭔가 동양적인 느낌, 중국인가. '밤바가 밤밤 빠밤' 이렇게 시작하지만 아리랑 선율은 다 알아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좀 경쾌한 재즈의 느낌인데요. 선생님 이 곡 좀 소개해 주시죠.

◆ 진용선> 이거는 오스카 페티포드라고 하는 분의 아디동 블루스라고 하는 거죠. 아디동은 사실 이분이 1950년대에 한국의 위문 공연을 왔는데 한국에서 자기가 와서 공연을 앞두고 있다가 아리랑을 듣게 된 거죠. 한국전쟁 당시에, 그래서 통역병한테 "저게 무슨 노래냐?"라고 얘기를 하니까 이 통역병이 아리랑이라고 얘기를 했는데 이분은 그걸 아디동으로 들은 거죠. 그리고 미국에 가서 너무 멜로디가 좋으니까 자기가 한국전쟁에 많은 유엔군들이 있고 미군들이 있다 보니까 자기가 이것을 미국에 가서 편곡을 해서 로얄 루스트라고 하는 그 유명한 레코드가 있습니다. 재즈 레코드 주로 하는 덴데 그 로얄 루스트 레코드에서 취입을 해서 이 음반이 나왔죠. 그러니까 우리 아리랑이 해외에서 우리가 우리 힘으로 '너 이거 내봐라. 돈 줄 테니 내봐라.'가 아니라 작가가 감동해서 이걸 재즈로 소위 만들어서 낸 첫 음반이 되는 거죠. 그리고 소위 말해 대박을 터뜨리는 음반이 되는 거죠.

◇ 김우성> 대박을 터트렸다. 사실은 지금 이 아디동 블루스, 오스카 페티포드 듣고 있는데 제가 밑에 살짝 깔아드리고 있는 게 맛보기로만 들어봐야 될 것 같은데요. 선생님 설명하신 얘기가 2016년도에도 반복됩니다. 이게 뭔가 하면 잠깐 들려드릴게요. 이게 흔히 우리가 아는 아리랑, 신아리랑 선율인데 노래 부르는 친구들이 BTS입니다. BTS 뿐만 아니라 슈퍼주니어까지 2016년도 파리 공연 엠 카운트 다운 실황을 저희가 잠깐 맛보기로만 들었는데 선생님 말씀하신 것처럼요. '아니야. 이 사람들아 1950년대에 이미 열광했어. 재즈하는 사람들이 우리 아리랑 연주하고 음반 냈는데 정말 말 그대로 대박 났어.'라고 했는데 2016년도에도 똑같이 확인돼요. 이 음악이 가진 잠재력이 어떻게 보면 1950년대 전쟁 당시나 지금 K-팝이 전 세계를 이제 사랑받고 있는 상황이나 다르지 않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 진용선> 그렇죠. 지금 BTS가 부른 아리랑은 사실은 아리랑 속에 네 가지 아리랑이 들어 있는 거죠. 아리랑 그 다음에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이렇게 들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막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몰려들었을 때 그분들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랫말 뜻은 몰라도 이 멜로디에 열광을 했듯이 오스카 페티포드가 아디동 블루스를 로얄 루스트 음반에서 냈을 때에 그 음반이 미국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졌거든요. 특히 오스카 페티포드는 일본 사람들이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고 또 쿠바에서도 유명한 사람이고 중남미에서도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까 이 아리랑이 그때 전 세계로 확산이 됐죠. 그러니까 오스카 페티포드가 부른 아리랑에 저 노래가 뭐냐 도대체. 그래서 그때의 그 블루스 곡을 가지고 많은 외국의 가수들이 나도 그 노래를 불러보겠다고 해서 엘리 윌리엄즈라든지 또 벨기에의 라 에스텔레라라든지 우리가 알지도 못하지만은 그런 사람들이 이러한 노래를 부르면서.

◇ 김우성> 그 영향이군요.

◆ 진용선> 그렇죠. 전 세계적으로 1950년대, 1954년대까지 호주 벨기에, 이탈리아. 심지어는 이탈리아에서는 1954년 9월달에 아리랑이 이달의 노래로 선정이 됐었어요.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겠지만요.

◇ 김우성> 우리는 몰랐는데 우리 노래가 저 나라에서 이달의 노래가 되네요. 그것도 노래의 나라 이탈리아지 않습니까? 가곡의 나라죠.

◆ 진용선> 깐소네가 유명한 나라에서 소위 말해서 이달의 노래로 1956년 9월달에 아리랑이 선정이 됐었죠. 그러니까 1954년부터 1957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어려웠으니까 그때 우리 밖의 상황을 몰랐던 거죠. 전 세계적으로 아리랑이 그때는 대단한 노래였다.

◇ 김우성> 사실 아주 예전 자료입니다. 1950년대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음질이 조금 안 좋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들려드리면서 얘기를 해볼게요. 이 노래는 어떤 노래인가요?

◆ 진용선> 아리랑이 콤베이메이(Kom Bij Mij)라고 해서, 벨기에가 네덜란드어도 쓰잖아요. 그러니까 콤베이메이라고 하는 네덜란드어로 아리랑을 편곡을 한 겁니다. 그런데 이 라 에스테렐라는 벨기에의 국민 가수입니다. 벨기에에서 이분이 돌아가셨을 때의 국민장으로 치를 정도로 유명한 가수인데, 이 분이 이 노래를 부르게 된 계기는 사실은 아까 그 오스카 페티포드의 아디동 블루스가 전 세계로 유행하다 보니 이 노래를 듣고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엘리 윌리엄즈라고 하는 호주 출신의 미국 가수가 아디동이라고 하는 노래로 불렀어요.

◇ 김우성> 당시 핫한 가수들이 얘기한 거네요. 되게 핫한 노래가 하나 있는데 한번 들어봐봐. 이랬더니 어, 괜찮은데? 이렇게 된 거잖아요.

◆ 진용선> 그렇죠. 그래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이 가사가 너무 아름답게 했고 그 밑에다가 코리안 러브송이라고 해서 사랑 노래로 딱 규정을 해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게 그 당시에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고.

◇ 김우성> 빌보드 차트에 올랐습니까?

◆ 진용선> 네, 그리고 또 빌보드 책에도 보면 이 엘리 윌리엄즈의 아리랑이라고 하는 노래가 한국에 이천만 한국 사람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노래라고 나와 있었죠. 그래서 이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영어권에서 유명하다 보니까 라 에스테렐라가 나도 저 노래를 불러보겠다라고 해서 벨기에 국민 가수가 불렀었어요. 저는 이 노래를 사실은 예전에 제가 벨기에 입양아한테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네덜란드로 부르고 그 음반을 들었다라고 하는 기억이 있다고 하는 걸 저한테 얘기를 해줘서. 제가 아무 네덜란드에서 아리랑을 뒤지니 있나요? 그런데 이 아리랑이라고 하는 게 라 에스테렐라라 오기 전에 엘리 윌리엄즈에 거쳐서 아디동이 됐다가, 이리로 오면서 그 가사 속에 '이리 와라 사랑 노래니까. 나에게 오라'라고 하는 얘기를 콤베이메이, 컴 투 미라고 하는 영어를 네덜란드어로 바꿔버리죠. 그리고 불렀으니까 제가 못 찾았던 거죠.

◇ 김우성> 선생님 정말 마치 비밀의 단서를 찾아나가는 추리 소설 같아요. 한국전쟁이 팡 터졌습니다. 비극이고 그것 때문에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 여기서 터져나간 아리랑은 정말 이름도 바꿔가면서 여기저기 가서 사랑받고 빌보드 차트에 최초로 올라간 우리 노래는 아리랑입니다. 정말 이것도 대단한데요. 이만큼 사실은 어떻게 보면 비극이었는데 또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어떤 문화유산 음악이 됐는데요.

◆ 진용선> 2012년 12월에 우리 아리랑이 한국의 서정민요 아리랑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이제 유네스코 등재가 됐고, 북한은 2년 있다가 2014년 11월달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아리랑 미니라고 하는 이름으로 등재가 됐잖아요. 한편으로는 남한과 북한이 다 등재가 된 게 좋기는 한데 또 한편으로 보면 그럴 바에야 남북이 함께 모여서 같이 등재했으면 좋았겠는데, 물론 노력도 했죠. 노력도 했지만 그게 또 시기적으로.

◇ 김우성> 그런데 남과 북이 분단되면서 언어도 달라졌어요. 말도 저희가 앞에 겨레말 뉴스 들었지만 굉장히 서로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이제 사는 모습도 조금 달라지고 있습니다. 아리랑도 조금 달라질까 싶은데, 원래부터 우리는 이 노래 불렀어라고 북한 분들이 얘기하는 아리랑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들으면 좀 낯설거든요. 일단 한번 여러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차병걸 어르신의 영천아리랑, 영천이면 저는 경북에 있는 한 지명으로 알고 있거든요.

◆ 진용선> 맞습니다. 우리 아리랑이라고 하는 게 사실은 많이 좀 유랑을 했죠. 경상북도 영천군 그 당시에 영천군 사람들이 주로 이주를 한 데가 함경도를 거쳐서 저기 위에 흑룡강성으로 많이 갔죠. 거기에 살던 지금 이 차병걸 노인이라고 하는 분도 흑룡강성 로가기향 신승촌이라고 하는 마을인데 그 마을이 바로 경상북도 영천 사람들이 와서 살던 마을이고, 거기에서 많이 불렸던 아리랑이 영천 아리랑이고. 또 이 노래가 북한에서도 소위 말해서 사회주의적인 매너리즘을 구현하는데 좋은 가사와 또 좋은 전설이 있어요. 그러니까 인민이 지주를 타파한다라든지 이런 내용들이 있으니까 북한에서 더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던 거죠.

◇ 김우성> 그런 또 문화적인 후천적 변화가 있는 거군요. 북한에서 그러면 어떻게 부를까. 김종덕 북한 공훈 가수죠. 이분의 소리로 잠깐 맛보기로 들려드릴게요. 여기서부터는 노래를 몰라도 북한 노래, 이렇게 알 수 있게끔 변화가 됐어요. 이거 외에도 또 북한 아리랑에 대해서 뭔가 남북이 같은 아리랑의 뿌리가 있지만 달라진 부분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노래가 있을까요?

◆ 진용선> 북한은 모든 사실은 민요나 또 민요 계열의 노래를 주체 발성법으로 부르다 보니까 분단이 오래된 우리가 듣기에는 그 노래가 이질적으로 들린 거죠.

◇ 김우성> 해주 아리랑이 있는데요. 얼쑤 아리랑, 이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해주아리랑을 북한 피바다가극단에서 활동하는 장애란의 노래로 한번 잠깐 맛보기로 들려드릴게요. 제 주변에 만주나 황해도에서 오신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약간 기분 좋을 때 살짝 이런 황해도 쪽에 아리랑을 흥얼하는 게, 지금 이 노래를 아시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어요. 이게 노래가 좀 색다르죠. 완전 북한 지역의 아리랑으로 봐야 될까요?

◆ 진용선> 그렇죠. 해주 아리랑은 사실 중국에서도 많이 부르잖아요. 중국에서는 이렇게까지 명랑하고 또 활발하게 부르지는 않죠. 거기에서는 아리랑 얼쑤, 또는 해주 아리랑이라고 해서 아까 노래한 차병걸 노인도 부르고 하는데 이거랑 분위기는 좀 다르죠. 그러니까 북한만이 가진 창법이라고 하는 것이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게 이 아리랑. 소위 말해서 해주 아리랑과 또 우리가 조금 전에 들었던 그런 북한 아리랑, 영천 아리랑 같은 데서도 느낄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이건 창법의 문제죠. 사실은. 북한의 아리랑도 보면 북한은 그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을 두 가지로 딱 구분을 하죠. 북한 문헌에도 보면 여러 지역과 지방에서 불려온 아리랑, 또 하나는 우리 시대에 맞게 새롭게 창작한 아리랑. 이건 제 표현이 아니라 북한의 음악학자가 표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들은 해주 아리랑이라든지 또 북한의 영천 아리랑 같은 경우는 우리 시대에 맞게 새롭게 편곡을 한 게 되는 거죠.

◇ 김우성>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전 국민이 불렀던 윤도현의 아리랑도 사실은 우리 시대에 맞게 바뀐 아리랑입니다. 남과 북이 같으면서도 비슷하면서도 굉장히 다르게 뻗어나가는 모습도 재미있고 또 그러면서 마음 한 켠이 언제 우리가 함께 아리랑을 불러야 되지 않을까. 사실 남과 북이 체육회담을 하면 단일팀은 다 결렬됩니다. 성사가 안 되는데 단일팀 등장할 때 노래는 이러면 둘 다 이구동성으로 아리랑 합시다. 이게 다 합의됐다고 해요. 이것도 참 재밌는데. 남과 북이 함께 사랑한 아리랑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좀 한국전쟁 분단부터 넘어서야 아리랑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런 진지한 음악을 듣고 좀 깜짝 놀랐거든요. 이분 이름을 피트 시거라고 읽어야 될까요? 이분의 이분은 아리란으로 끝났는데 일단 한번 여러분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 영어를 계속 듣고 계신데 이분이 이 노래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 부분이죠?

◆ 진용선> 그렇죠. 이분은 아리랑을 제대로 보신 분이죠. 왜 같은 민족이 얼굴도 똑같고 말도 똑같이 쓰는 사람들이 왜 이 아리랑은 같이 부르면서 분단이 되었느냐 하는 1950년대 초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 김우성> 1954년도에 나온 음반이거든요.

◆ 진용선> 그러니까 1950년대 초에 이분이 벌써, 그런데 이분이 이 노래 속에서 아리랑의 역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를 했는데 이 분이 얘기했던 아리랑의 역사가 바로 책 속에 나와 있는 김산의 아리랑 내용을 그대로 자기가 한국에 와보지는 않았지만 아리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분단을 극복하는 노래가 되겠다라고 얘기를 했던 것이죠.

◇ 김우성> 맞습니다. 영어 얘기는 저희가 지금 다 이렇게 들려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얘기가 있고요. 비공식적인 국가 같은 느낌도 있었다. 그러니까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도 있다라고 하고, 지금 잠깐 이분의 목소리로 아리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시김새를 제대로 넣으시네요. 아리랑의 꺾는 느낌도 그대로고요. 가사에 보면 삼천리, 앞에는 '3000' 뒤에는 '리' 이렇게 붙이는 것도 특이하고요.

◆ 진용선> 미국의 최고의 포크싱어니까, 그래서 조안 바이즈하고 피트 시거 이런 분들은 아주 소위 말하면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던 분이다 보니까 공연도 많았고. 특히 이분이 이제 공연 말미에 이 노래를 연주를 많이 하고 자기가 직접 했죠.

◇ 김우성> 전 세계를 다 다니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아리랑이 힘이 세고 대단한데요. 선생님 통일 그리고 남과 북을 놓고서 아리랑으로 우리가 어떻게 만나야 할지 생각해야 할지 마무리 말씀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 진용선>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죠. 저도 아리랑 북한 아리랑을 지금 이렇게 얘기했지만 과문한 일이죠. 제가 북한을 몇 번 다녀오긴 했지만은 분단이 오래된 만큼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결이 되게 달라졌습니다. 하나의 어떤 합의점을 찾아가는 그런 노력들이 아리랑으로, 아리랑을 시발점으로 해서 일어나면 좋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늘 듭니다.

◇ 김우성> 38선이 깨지면 하나로 뭉친다는 아까 아리랑 가사 말씀해 주셨죠. 38선을 깰 수 있는 힘, 아리랑에 있다고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는 또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얘기 들어볼수록 저는 그렇게 더 확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선아리랑연구소 진용선 소장과 함께 했습니다.

YTN 김우성 (wskim@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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