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신이 인간을 만들었나, 인간이 신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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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신의 역사> 는 창세기 첫 번째 구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를 비튼 문구로 시작한다. 신의>
책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신의 '족보'를 파고든다.
그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신을 다시금 '창조'하려면 신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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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암스트롱 지음 / 배국원·유지황 옮김
교양인 / 724쪽│3만6000원
종교분야 세계적 학자의 역작
유대·기독·이슬람교 중심으로
신의 탄생부터 분화 과정 분석
종교의 순기능 인정하면서도
극단적인 종파의 영향력 경계
“태초에 인간은 만물의 제일원인이자 하늘과 땅의 통치자인 신을 창조했다.”
<신의 역사>는 창세기 첫 번째 구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를 비튼 문구로 시작한다. 천지창조를 믿는 신앙인에 대한 발칙한 도전이자 인간이 시대마다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왔다는 대담한 선언이다.
책은 서로 연결된 세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신의 탄생 배경부터 오늘에 이른 과정을 추적한다. 1993년 출간될 당시 38개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저자 카렌 암스트롱을 세계적 종교학자 반열에 올려놨다. 국내에는 1999년 처음 소개됐는데, 이번에 기존 번역본의 오역을 손보고 누락된 내용을 추가해 전면개역판으로 돌아왔다.
암스트롱은 오늘날 종교가 극단적 근본주의 행태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이렇다. 유대교는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내쫓았고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에 테러를 자행했다. 미국 기독교는 낙태 금지 운동 등으로 ‘뉴라이트’와 결합해 정치세력화했다.
이런 모습조차 신의 뜻일까. 책은 그 내막을 알기 위해 신의 ‘족보’를 파고든다. 먼저 불가해한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천신(天神)이 만들어졌다. 신은 더 매력적인 존재로 대체됐다. 농작물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지모신(地母神), 자연 만물에 내적 동일시를 부여한 다신(多神) 숭배 등이 그랬다.
이어 ‘야훼’라는 유일신을 공통 뿌리로 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차례로 등장했다. 기원전 6세기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은 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공통의 언어’로서 유일신 유대교를 만들었다.
얼마 뒤 예수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기독교가 등장했다. 처음엔 유대교의 이단 분파로 경멸받았지만 제국으로 성장하던 로마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며 세를 불렸다. 신비주의 종교의 번잡함과 비타협적인 금욕주의를 멀리하는 ‘도시풍의 세련된 종교’란 인식이 매력을 끌었다.
가장 늦게 출발한 이슬람교는 영적 열등감에서 비롯됐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최고신 ‘알라’가 유대인 및 기독교인이 섬기는 신과 동일하다고 믿었지만 다른 종교와 달리 예언자와 경전을 보내주지 않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610년 신의 말씀이 뒤늦게 아랍어로 전해지며 ‘쿠란’이 완성됐다.
암스트롱은 세 종교의 근원인 야훼가 잔인하고 편파적인 신앙을 정당화한 점을 문제 삼는다. 성경에 묘사된 야훼는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자기 아이를 인신 공양하게 하고, 모세와 이스라엘인을 해방한다는 명목으로 이집트인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린다. 이런 사상은 각 종교에 ‘신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선택 신학’으로 이어졌다.
배타적인 신앙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특히 번성했다. 멸망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궁지에 몰린 자아를 떠받치기 위한 수단으로 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암스트롱은 “전염병과 전쟁, 기후 위기 등 윗세대가 종말이라고 불렀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믿음이 오늘날 근본주의 형태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고 경고한다.
신에 대한 도발이 가득한 책이지만 암스트롱이 종교 자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람들을 한데 묶고 인간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종교의 가치를 믿는다. 과학 기술 발전으로 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가운데 그 자리를 극단적인 종파가 잠식하는 상황을 경계할 뿐이다. 그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신을 다시금 ‘창조’하려면 신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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