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립스 곡선의 함정
미국 기준금리 상단이 2001년 이후 최고치인 5.5%가 됐다. 유럽 기준금리는 4.25%다. 작년 봄만 해도 양쪽 모두 제로금리였다.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면 엄청난 속도로 치솟아 정점에 도달한 셈이다. 오죽 급하게 올렸으면 0.25%포인트 인상은 '걸음마(베이비스텝)' 취급을 받았을까.
저금리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만들고, 고금리는 경기 하강과 실업의 고통을 불러온다는 게 경제학 상식이었다.
인플레이션율과 실업률은 역관계라는 '필립스 곡선'이 이론적 근거다. 런던정경대 교수였던 윌리엄 필립스가 1958년 발표했다. 영국을 넘어 미국에서도 통화정책 결정자들에게 금과옥조가 됐다.
예외적인 상황이 있는데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 때가 그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재림이었다.
2020년 5월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실업률은 14.7%까지 치솟았다가 백신이 나오자 2021년 초 6%가 됐다. 당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우리는 평평한 필립스 곡선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실업률이 낮아져도 물가 걱정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파월의 예상과 달리 필립스 곡선은 약간의 시차를 두고 작동했다. 실업률은 4% 아래로 더 떨어져 완전고용 상태가 됐고 물가는 급등했다. 연준은 그때서야 부랴부랴 현기증 나는 긴축 레이스에 들어갔다. 뱁새들은 황새를 쫓아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 됐다.
미국은 가장 먼저 '골딜록스(물가 걱정 없는 성장)'에 다가가는 중이지만 연준은 상당 기간 고금리를 유지하며 상태를 관망하는 '안전빵'을 택할 것이다.
기술 진보, 일자리 형태 변화, 자본 이동 확대, 질병·전쟁 같은 요인까지 개입하며 고용과 물가는 복잡한 함수가 됐다. 필립스 곡선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이 된다. 정책적 상상력으로 미시적 정책을 발굴해 각각의 영역에 탄력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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