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선팅의 사회학
미국에서 렌터카를 운전할 때 한국과 극명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선팅이다. 선팅이란 차량에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량의 유리에 염색을 하듯이 수지류 같은 필름을 붙이는 일이다. 사실 'sunting'은 틀린 표현이고 'window tinting'이란 표현이 올바른 표기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보호 좌회전도 많고, 신호등 없이 사거리에서 먼저 정지선에 도착한 사람이 먼저 가게 되는 이른바 'stop' 사인에 의한 교차로 운영방식도 우리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운전자 간에 서로 소통하고 확인하면서 운전행위를 하게 되어 차량 유리창에 포함된 선팅은 빈도도 적고 농도도 훨씬 약한 편이다.
선팅에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여름에는 햇빛을 차단하여 에어컨을 덜 사용하게 하며, 겨울에는 보온효과가 있다. 에너지 이슈 이외에 한국에서 선팅의 효과는 프라이버시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부정적 효과도 존재한다. 우선 선팅을 너무 진하게 하면 운전자의 시계에 영향을 주어 안전에 지장을 준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선팅된 차량의 가시광선 투과율이 40% 이하일 경우 정상 범주인 70%일 때보다 인식력의 저하, 조작 및 반응시간이 약 2배 늘어난다고 한다. 때로는 GPS와 RF 타입의 전파 수신 장애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통행위 중에 선팅으로 방해받는 것은 선팅된 후방의 차가 선팅 차량 전방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전방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운전자에게 매우 불리한 운전환경이 된다.
우리 사회는 서양에 비해 학연, 혈연, 지연으로 인한 연대가 더 강한 편이다. 각자 지역과 집안의 일원으로서 타인에게 신중하고, 예의 바르고, 최선을 다해 자기개발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이러한 집안과 지역이 있기에 우리는 추석과 설 때 무려 평시의 두세 배가 걸리는 이동 시간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평시의 생활전선으로 돌아와 마주하는 현실은 각박하다. 마치 선팅을 한 공간 속에서 살게 되는 것 같다. 아파트의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이런 현상의 한 단면이다.
한편으로는 전통적 연고주의, 다른 한편으로는 선팅사회에서 살아가는 양면성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7월 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경제성장 이끄는 법무행정과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 강연하면서 인구 감소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이민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이민정책 역시 짙은 선팅 아래에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조깅하다 마주쳐도 씩 웃는다. 우리는 아니다. 괜히 웃었다가는 '내가 웃음거리이니?' 하는 반응을 살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선팅도 좀 없애보면 어떨까.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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