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미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3년 7월 11일, 밀란 쿤데라가 세상을 떠났다. 우리에게 쿤데라는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다. 이 작품은 토마시와 테레사, 프란츠와 사비나의 인생과 사랑을 통해 '프라하의 봄' 이후 중부 유럽 사회의 황폐한 정신적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잘 알려진 이 작품을 통해 쿤데라는 메디치상 등을 수상하면서 단숨에 세계적 작가로 떠올랐다.
쿤데라는 고전적 작가다. 무거운 형이상학적 관념을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내는 데 누구보다 능숙하다. 농담, 사랑, 이별, 웃음과 망각, 무거움과 가벼움, 불멸, 느림, 정체성, 향수, 무의미의 축제 등 작품 제목 하나하나는 우리 한없이 가벼운 존재들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한 번쯤 새기고 지나야 할 묵직한 주제들이다. 평생에 걸쳐 쿤데라는 집단이 강요하는 가짜 의미에 맞서 싸웠다. 그가 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 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농담)는 사실이다. 우리 삶의 유일성,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개개인의 삶에 고귀한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 유럽 문명의 정수는 "개인의 독창적 사고와 침해할 수 없는 사생활에 대한 존중"(소설의 기술)이다. 현대사회는 우리 삶의 유일한 보석을 두 방향에서 훼손한다. 하나는 이데올로기다. 젊었을 때 그는 비밀경찰로 뒤덮여서 삶의 모든 순간이 감시되고 제재당하는 소비에트 사회에서 살았다. 개성을 말살하는 체제는 고통스러웠으나, 당국은 이를 '지상천국'으로 포장했다.
더러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가짜 기술을 그는 키치라고 불렀다. 진실에서 멀어지고 거짓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 기술자들과 그는 격렬하게 투쟁했다. 조국은 그를 탄압하고 추방했으며, 1976년 그는 프랑스 파리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쿤데라는 자본주의의 꽃이 활짝 핀 파리에서 다른 형태의 기만술과 만났다. 그는 이를 이마골로기(imagology)라고 불렀다. 미디어와 광고와 디자이너가 만들어 퍼뜨리는 가짜 이미지였다. 이런 이미지들은 인간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우리 시대는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느림)
이데올로기와 이마골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에선 어떤 개인도 존중받을 수 없다. 가짜 이미지의 무거움이 개인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쿤데라는 현대적 삶을 '무의미의 축제'라고 부른다. 허위의 삶을 무찌르려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디에서 배울까. 문학이다. 쿤데라에 따르면 좋은 작품은 늘 인생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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