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시각] 학교라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

2023. 7. 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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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지켜주던 학교가
지켜줘야 하는 곳이 된 건
교사에 너무 큰 짐 맡겨서

누구도 서로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 시대, 학교는 사실상 우리 공동체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있다. 많은 맞벌이 부부는 가족도, 친척도, 이웃도 의지할 수 없는 시대에, 최후로 학교만을 믿은 채 일터로 나간다. 학교는 교육을 넘어 보육 공간이 되었고, 우리 사회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최후의 전선이 되었다.

아이들은 가정이나 성장 과정에서의 온갖 심리적 문제를 안고 학교에 모인다. 과거에 학교는 집단적으로 학생을 훈육하며 동일한 규율에 복종하게 하는 군대식 현장이었다면, 이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아이들의 심리적 상처와 진로 고민, 개인적 성장 등에 대해 일대일 종합 케어 서비스를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걸 감당하는 건 대개 '담임선생'이라는 존재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의 공백을 교사 한 명한테 다 해결하라고 던져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과거처럼 계속 지시를 만들어 공문을 내려보내는 상부의 역할에 머물러 있을 뿐, 새로운 시대에 교사들이 대하고 있는 현장을 확실하게 지원해주는 보급 부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사들에게 점점 더 많은 책임만 떠안기면서 수많은 행정 업무까지 처리하게 하고 있어 우리나라 교사들의 행정 업무 시간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아이들이 커나갈수록 학교의 목적은 더욱 복합적이 된다. 아이들의 입시와 진로 문제가 본격화하고 교사들은 입시학원의 강사 역할로도 내몰린다.

우리나라 교사는 일종의 팔방미인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교사는 훈육과 심리 케어에 있어서는 오은영 박사 수준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문제라도 일으키면 부모 대신 경찰서에 가야 하며, 그에 따라 각종 갈등과 충돌에 대한 법적 지식을 겸비해야 하고, 일타 강사와 같은 족집게 강의를 해야 하며, 저마다 학습 수준이 다른 아이들을 일일이 보살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일일이 챙기며 개개인의 진학과 미래를 책임져야 하며, 아이들의 교우 관계, 가정에서의 문제, 심지어 학부모들의 정신까지 케어하며 새벽까지 문자에 시달려야 한다.

학교에는 보통 학교마다 진로교사와 상담교사가 1명 정도씩 배치되는 게 거의 전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본다면 한 학급당 심리상담사가 1명씩 있어도 부족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이나 강력범죄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전담 직원이나 스쿨폴리스도 없다. 학교폭력위원회는 일반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추가적인 업무 중 하나로 담당한다. 교사가 피해를 당하더라도 스스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혼자 대응해야 한다. 사실상 공동체가 거의 붕괴된 사회에 마지막 남은 공동체로서의 최후 기지라고 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병력들로 취약한 상태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교사 명예퇴직은 16년 만에 7.5배로 늘었다. 교원의 87%는 지난 1년간 사직을 고민했다. 최근 5년 새 관련 문제로 정신과 치료 및 상담을 받은 교원 수는 약 30%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아이들이 가장 태어나지 않는 나라에서, 그나마 태어나는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무작정 밀어넣어지고, 교사들은 이 나라 최후의 아이들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병들어가고 죽어가고 있다.

학교는 이제 옛날과 같은 학교가 아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괴물이 된 게 아니라 교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이 요구되고 있는데, 이를 지원할 시스템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수많은 기능을 분산시킬 수 없다면, 최소한 학교에는 수많은 손길이 더욱 많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인력과 시스템과 도움이 정확하게 필요한 우리 사회 '최후의 벙커' 같은 곳이 되었다. 학교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에는 더 이상 무너질 곳도 없다. 여기가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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