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 검사 윤석열 스스로 부정”···검사 때 단죄한 사건 속 인물 ‘등장’
수사 기록 곳곳 ‘이동관’ 이름 등장
“진보 성향 일간지 견제안 마련 지시”
국정원 관계자의 진술 확보 했지만
당시 윤석열 중앙지검장, 기소 안 해
언론노조 등 7개 단체 입장문 “모순의 코미디 벌어지고 있어”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에 ‘언론 장악’ 비판을 받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명한 것은 ‘검사 윤석열’에 대한 자기부정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사로서 국가정보원의 불법사찰과 국정농단 등을 단죄했던 윤 대통령이 갖가지 사안에 깊숙이 개입했거나 관련이 있는 전직 청와대 홍보수석을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 분야 국정과제를 추진할 적임자”라며 방통위 수장으로 지명한 것은 이율배반 아니냐는 비판이다.
윤 대통령이 검사일 때 휘하 수사팀은 ‘언론 장악이 위법하다’며 수많은 인물을 기소하면서 이 내정자가 언론 장악에 관여한 정황을 다수 파악했다. 이는 사건 기록 곳곳에 등장한 ‘이동관’이란 이름으로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이 2017~2019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수사한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향신문이 확보한 사건 기록을 보면 이 특보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2009~2010년 홍보수석실은 국정원으로부터 방송 장악, 여론 조작, 불법 사찰 관련 내용이 담긴 문서를 여러 건 보고 받았다.
그중에는 KBS 내 ‘좌편향’ 인사를 파악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종교계 인사를 퇴출시키는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로부터 ‘좌파 언론인’과 ‘진보 성향 일간지’에 대한 견제 방안 마련을 지시받았다는 국정원 관계자의 진술도 확보했다. 검찰은 이 내정자가 지시했을 가능성도 검토했지만 그를 기소하지는 않았다.
전직 청 홍보수석, 방통위장 지명 이율 배반 비판도 나와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정현 전 의원은 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소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판결 확정은 검찰총장일 때 이뤄졌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뉴스 편집에서 빼달라”고 한 것 등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하는 방송법을 어긴 것이라며 기소했고, 법원은 1000만원의 벌금형을 확정했다.
윤 대통령이 2017년 수사팀장으로 활동한 국정농단 특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기소했던 이유도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에서였다. 당시 특검은 “정부·청와대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을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지원 배제한 것은 헌법가치에 위배되는 중대범죄”라고 했다. 특검의 수사대상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행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수사팀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장 특수활동비 불법 사용 시발점에 이 내정자가 있었던 정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부터 ‘이 내정자 요청을 받은 뒤 국정원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국정원에서 받은 돈은 이 내정자에게 줬다’, ‘국정원 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이 내정자를 기소하지는 않았다.
전국언론노조·한국기자협회 등 7개 언론단체는 이날 이 내정자 지명에 대한 입장을 내고 “대통령 윤석열이 검사 윤석열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의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며 “방송을 장악하고 언론을 유린해서라도 정치적 승리만 거두면 그만이라는 뒤틀린 욕망이 빚은 헌정파괴 인사참극”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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