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송강미술관 '어느 시인의 꿈', 오래된 꿈을 엿보는 미술여행

김관수 기자 2023. 7. 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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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특별기념전 외에도 떡살, 하회탈, 안동문학 등 다채로운 볼거리

지난 6월 경북 안동에 새로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짧게는 20여년, 길게는 30여년에 걸친 한 부부의 꿈이 실현된 현장이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더 먼 곳에 있다. 누구나 쉽게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있는 공간을 또 다시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미래의 꿈이 공존하는 선비의 세상, 참 안동을 많이 닮은 그곳에 여름 미술여행을 다녀왔다.

옛 송강초등학교 터에 들어선 송강미술관

송강미술관


송강미술관이 위치한 서후면 이송천은 두 개의 천이 흐르고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오래된 마을로, 송강은 소나무 송(松)에 강 강(江)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품격 높은 한 폭의 그림 속에서 유려한 자태를 뽐내는 그 둘의 인연이 2023년의 송강미술관에서 다시 이어져 이송천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약 20년 전, 이송천에서는 텃새나 다름없는 백로 두 마리가 우연하게 정해룡 이사장과 김명자 관장 부부의 꿈을 이곳으로 이끌었다. 때문인지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는 백로의 마음이 송강미술관 속에 가득해보인다.


미술관과 더불어 떡살전시관, 하회탈전시관, 안동문학관에 그 마음들이 이제 막 둥지를 틀었다. 유구한 선비문화의 정신이 남아 있는 안동의 오래된 마음들이 찾아든 것 같다.

전시 중인 박상환作 '따사로운 날', 옛 송강초교와 주변 모습이다.

30년의 꿈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지금의 미술관이 20여 년 전 문을 닫은 폐교라는 사실이다. 여러 지역에서 폐교를 재활용한 사례들을 봤지만 폐교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곳은 송강미술관이 유일하다. 그만큼 깔끔하게 정돈됐고, 요즘의 문화적 감수성들이 편안하게 들어선 까닭이다.


소나무와 강의 궁합처럼 송강미술관은 정해룡 이사장과 김명자 관장의 찰떡같은 궁합으로 탄생했다.


마침 정해룡 이사장이 건설사 대표로 일해 왔고, 시인으로 활동하던 아내 김명자 관장이 오래 전부터 새로운 공간에 대한 열망을 이어오며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부지를 확보한 것이 20년 전이지만 외부의 도움 없이 오로지 부부의 힘만으로 모든 준비를 하다 보니 이제야 그 결실을 맺게 됐다.


손자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고 손자들에게 시를 읽어줄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을 꿈꾸며 시작한 것이 미술관 펜션, 작가들의 레지던스 등으로 조금씩 업그레이드되며 일이 커져갔다. 강단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아들의 손길도 닿았다.


그렇게 준비를 하면서 지금껏 발품 팔아 모아 둔 작품들을 꺼내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쌓아온 결과물들을 정리하다 보니 지금의 공간들이 모두 탄생했다.


30년 전 희미하게 꿈을 꾸고, 20년 전 첫 발을 내딛으면서 차근차근 축적해온 세월의 산물들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았다.

가장 아끼는 작품 '삼족오'가 있는 로비에서 정해룡 이사장과 김명자 관장

개관 특별 기념전 <어느 시인의 꿈>


송강미술관의 개관 특별 기념전의 타이틀은 <어느 시인의 꿈>이다.


약 30여 년 전부터 시인으로 활동해온 김명자 관장의 꿈. '그림이 있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있어 새들이 둥지 짓고 나비가 춤추는 아름다운 쉼터를 만들어서 평범한 이웃들이 찾아와 예술과 문학과 사랑을 이야기하며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고 시인이 될 수도 있다'는 꿈을 전하고 싶은 오래된 그녀의 소망이 <어느 시인의 꿈>으로 관객들 앞에 섰다. 30년 전부터 기약 없이 마음에 품어온 소망이 송강미술관의 첫 전시가 된 것이다.


미술관을 채운 작품들은 그동안 부부가 틈틈이 여행을 다니며 모아온 작품들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작품들이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김 관장은 미술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한다. "30-50대 엄마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 위주로 수집을 해왔고, 그 작품들을 선보이는 소장전이에요. 관람객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작품들을 수집하다 보니까 추상화처럼 어려운 작품은 없어요."라며 웃는다.

개관 특별 기념 전시 '어느 시인의 꿈'

떡살전시관과 하회탈전시관 & 안동문학관


오래 전 여행을 떠난 김 관장은 작은 골동품점에서 곰팡이가 펴서 문양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작은 떡살 2개를 샀다. 집으로 가져와 씻고 문지르고 닦고 기름칠까지 해서 선명한 국화 무늬 떡살을 살려냈다.


그렇게 떡살과의 사랑에 빠진 김 관장은 전국을 여행하며 떡살과 다식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 삶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아쉬움에 안동까지 가져온 것들이 이제는 하나의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그 떡살들 속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궁궐, 반가, 민가, 축하잔치, 제례의식 등 떡살들은 저마다 다른 문양과 무늬로 기쁘고 슬펐던 어느 시대 사람들의 얼굴을 담고 있다.

떡살전시관의 떡살과 다식판들은 김명자 관장이 지금껏 모아온 것들이다

미술관 한 쪽에는 하회탈 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안동의 보물 하회탈에 대한 안동 사람들의 애정과 자부심이 만든 공간이다. 안동시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원형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 실제 하회탈을 쓰고 공연하는 모습을 부조로 만들었다. 탈만 보다가 탈 주인공의 의상까지 함께 볼 수 있어 더욱 친근해진 하회탈.

각 탈의 의상까지 확인 가능한 하회탈전시관

안동문학관은 미술관 건물이 아닌 독립된 건물에 꾸며졌다. 30여년 시인으로 활동하며 안동의 문학을 공부하고 공경해온 김 관장은 안동의 문학을 소개하는 안동문학관이 아직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워 작지만 먼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안동문학관의 문을 열었다.


지금껏 모아 온 안동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 안동에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 등이 서가에 빼곡하다. 안동이 궁금하다면, 어떤 자료든 필요한 자료를 모두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다음을 기약하게 된다.

안동문학관의 문을 연 시인 김명자 관장

편안한 여행지


옛 학교 운동장을 산뜻하게 채운 초록 잔디, 주위를 감싸고 있는 언덕 위 소나무들, 짙은 스모크커피향이 매력적인 러셀 카페(RUSSEL Cafe).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편안한 작품들보다 누구나 송강미술관을 조금 더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이유들이다.


오래 전 해외 어느 작은 마을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미술관이 내 마음 속 최고의 여행지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미술관, 전시관, 문학관을 쭉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서 해야 할 일 한 가지가 있다면, 커피 한 잔을 들고 초록 잔디 위를 걷는 것.

커피향 짙은 휴식 공간 러셀(Russel) 카페

주변 여행정보

안동의 주요 명소인 제비원과는 차로 약 3분, 유네스코 세계유산 봉정사와는 차로 약 10여분 거리다. 제비원은 민간신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주, 즉 집을 창조한 신의 고향이자 민간신앙의 성지다. 전국 각지의 성주풀이 노래에서 '성주 본향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 일러라. 제비원에 쏠씨 받아...'라고 노래한다.

'제비원 미륵'으로도 불리는 이천동 마애여래입상과 역시 제비 연자를 사용하는 연미사가 함께 위치하고 있어 민간신앙과 불교가 함께 공존했었음을 알 수 있다.

솔씨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솔향기를 맡으며 가벼운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안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찰 봉정사는 신라 672년에 창건 됐다고 전한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봉정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봉정사 극락전이 있고, 한국의 10대 정원도 있다.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정원 영산암은 영화 <나랏말싸미>의 촬영지로 영화 속 장면처럼 기념사진을 남기는 인스타그램 명소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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