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명·청 사이에서 당한 치욕 잊지 말아야 할 이유
소현세자 (1612~1645)
1637년 4월 19일 병자호란이 끝난 후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인조의 장자 소현세자는 청나라 관헌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간청한다.
"이 사람들은 나이가 젊고 임금과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해 이런 망발을 한 것입니다. 끝까지 간절하게 타일러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로 함께 끌려간 신하 윤집과 오달제를 끝까지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윤집과 오달제는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들은 "살아도 죽는 것만 못하다"며 기개를 꺾지 않았고 세자의 애타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처형된다.
우리 역사에는 중국 대륙과 관련된 치욕스러운 순간이 무척 많다. '심양장계(審陽狀啓)'는 치욕을 기록한 대표적인 책 중 하나다.
'심양장계'는 소현세자를 수행해 청나라에 간 태자시강원 소속 신하들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다. 세자가 볼모로 가서 돌아올 때까지 8년 동안의 보고서다. 보고서에는 왕세자의 일상에서부터 약소국으로서 겪은 가슴 아픈 사건, 당시 외교 현실, 명·청 교체기 중국의 상황이 낱낱이 담겨 있다.
책에는 소현세자의 궁핍했던 생활도 읽힌다. 1642년 올린 장계를 보면 "관소에 모아두었던 얼마 안 되는 재물이 바닥나서 앞으로 쓸 것을 전혀 대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람들의 양식도 넉넉하지 못하니 돈 백냥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있다.
소현세자의 고민은 또 있었다. 당시 청나라에는 수만 명의 조선인 포로가 있었는데 이들을 노예처럼 거래하는 시장까지 있었다. 소현세자는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앞장섰다.
또 이 책은 조선 외교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당시 청은 요동 일대를 장악한 다음 명나라 본토를 공격하고 있었다. 청은 소현세자에게 압력을 넣어 군대와 병선, 군수물자를 보낼 것을 요구했다. 조선의 입장은 난감했다. 명·청 양쪽 눈치를 다 봐야 하는 상황에서 명을 공격하는 군대를 보내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병자호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조선은 마지못해 군대를 파견하기는 했지만 소극적으로 전투에 임했고, 오히려 청 군대의 동향을 명에 알려주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현세자는 목숨을 건 외교를 해야 했다. 소현세자는 때로는 회유와 간청으로, 때로는 뚝심과 의지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 과정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다.
소현세자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조선은 반청친명 정책을 부르짖는 서인이 집권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 청나라에서 산 세자를 의심하고 비난했다. 결국 세자는 고국으로 돌아온 직후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독살이라는 설이 있다.
적당히 숨기고 싶겠지만 우리 역사는 대륙으로부터 받은 치욕으로 점철돼 있다. 그 치욕의 시대는 끝난 걸까? 과연 그럴까?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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