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를 둘러싼 빛과 그림자…넷플릭스 ‘셀러브리티’와 ENA ‘행복배틀’[이진송의 아니 근데]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의 인플루언서를 소재로 한 드라마 두 편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다. <셀러브리티>(넷플릭스)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 서아리(박규영)가 하루아침에 인스타그램의 ‘셀러브리티’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 <행복배틀>(ENA)은 국내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엄마들이 SNS상에서 행복을 전시하는 것으로 ‘배틀’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인플루언서란 새 시대의 직업으로, 말 그대로 ‘온라인에서 유명한 것이 직업’이다. 그리고 이 이름값을 바탕으로 각종 홍보, 판매, 공동구매(소위 ‘공구’)를 진행하며 수익을 올린다. 연예인이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코미디면 코미디, 주 종목이 있는 예능인이었다면 인플루언서는 광범위한 ‘디지털 노동’을 수행한다. 인플루언서들이 먹고, 입고, 들고, 쓰는 모든 것들이 광고거나 홍보의 효과를 발휘한다. “주님께 이런 달란트”를 받은 극소수가 아니라도 유명해질 수 있고, 그 대상이 연예인과 달리 비교적 가까이 있으며, 신비주의가 기본이었던 과거와 달리 일상과 일거수일투족을 관람할 수 있다는 감각이란! 인플루언서가 주인공인 드라마 두 편을 보다 보면 ‘어, 어디서 본 얘기 같은데…?’ 기시감이 몰려온다.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SNS 이용 경험 및 인플루언서에 대한 기억 같은 사적 체험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다수 관심이 만드는 인플루언서
대중은 ‘좋아요’로 그들을 쫓지만
추락도 원하는 섬뜩한 이중성 가져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ics)’라는 개념이 있다. ‘관심 경제’ 또는 ‘주목 경제’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인간의 주의력을 희소한 상품이자 자원으로 보고, 다양한 정보 관리 문제와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주의력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특정 행동, 특히 이익과 직결되는 구매 행위 등과 직결되는 주의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관심의 경제학>(이동현 역, 21세기 북스, 2006)을 쓴 토머스 데이븐포토는 이제 모든 성공은 얼마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잘 끌어오고, 배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이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전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비즈니스 영역에서 관심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관심 경제라는 용어를 모르더라도 관심이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현대인은 없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SNS 플랫폼과 같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포털 사이트이다. 이들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고, 과거의 웹 검색 기록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짠다. 이렇게 모인 주의력 ‘유발’ 정보들은 최대한 사용자를 플랫폼에 오래 머물게 붙잡아두고, 기업에 판매되어 광고로 이어진다. 인플루언서는 이러한 관심 경제의 산물이자, 생산자이다. 인플루언서에게는 쏟아지는 관심이 곧 자원이다.
관객 욕망에 깃들어가는 연기자
반응으로 통제하려는 관객
관심 경제가 낳은 비극적 장면들
<셀러브리티>는 수익과 권력 다툼이 치열한 2030 여성 인플루언서의 생태계에 집중한다. 드라마 초반부터 ‘이미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플루언서 서아리가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면서 소동이 일어난다. “나를 죽인 것은 나의 팔로어”라는 홍보 문구에서 드러나듯, <셀러브리티>에서는 양날의 칼이자 독이 든 성배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관심’이 중요한 동기이다. 등장인물이 이미 죽은 시점에서 과거의 이야기가 역재생되고 중간중간 현재와 교차하는 방식은 넷플릭스 시리즈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이다. 주인공 서아리는 우연한 계기에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오민혜(전효성)와 재회하고, SNS에 발을 들이게 된다. 오민혜는 인스타그램의 유명인으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명성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브랜드를 출시하고, ‘가빈회’라고 불리는 인스타그램 ‘셀럽’들의 모임 회원이다. 오민혜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서아리의 팔로어 수는 급증한다. 관심이 관심을 낳는 것이다. 인플루언서의 폐해를 둘러싸고 말이 많지만, 그래도 인플루언서의 디지털 노동에는 본연의 자원이 필요하다. 외모와 같은 신체 자본일 수도 있고, 평범한 일상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하는 서사력일 수도 있고, 물건을 보는 안목이나 사진을 찍는 센스일 수도 있다. 다만 서아리가 말하듯 어떤 재능이 특정한 ‘수준’을 넘어서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다양한 요소가 개입한다. 팔로어가 어느 정도 붙자, 인플루언서를 이용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회사로부터 협업 제안이 온다. 오늘날의 인플루언서는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만들어진다’. 회사가 선망할 만한 경험과 물건을 제공하면, 인플루언서는 디지털 노동을 통해 이를 매력적으로 연출하고 전시한다. 그것은 화려한 사진이 가득한 인스타 ‘피드’와 실시간으로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라이브 방송(‘라방’)을 통해 SNS 사용자의 일상에 침투한다. 관심 경제의 세계에서는 ‘좋아요’와 댓글, 실시간 접속자 수가 모두 영향력이자 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좋아요만으로는 부족하다. 서아리에게는 일명 ‘까판’도 있다. 까판이란 서아리를 공격하는 계정과, 그 계정을 팔로하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모인 디지털 ‘장’이다. 그러나 이는 서아리의 인지도에 기름을 부을 뿐이다. 불세출의 스타 나훈아 선생님께서 일찌감치 말씀하셨다. “까(안티)가 없고 빠(팬)만 있는 스타는 진짜 스타가 아니다. 까가 있어야 빠가 미친다. 진정한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둘 다 미치게 만든다.” 그 관심을 통제하고자 인플루언서들의 물밑 싸움과 정치질은 치열하고, 기업의 계산과 지원이 오간다.
<행복배틀>은 이미 상류층 여성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기에, 돈보다 얻기 어려운 ‘행복’을 전시하여 우월감을 얻으려는 욕망이 중심이다. SNS상의 삶과 영어 유치원·아파트 커뮤니티 같은 오프라인 배경이 밀접하다. 전시의 대상 역시 사치품보다 자녀의 성취나 남편의 사랑 같은 화목함의 상징이다. 관심이 금전적 이익으로 치환되지 않지만, 현대인이 ‘돈을 주고서라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심리적 자원이자 시장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제적 현상이다. 이들은 경쟁자의 SNS를 엿보며 어떻게든 흠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최대한’ 행복하고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애쓴다. 부러워하는 댓글이나 ‘좋아요’ 수가 그들에게 위안을 준다. 인플루언서는 어느 정도 리얼리티 TV쇼의 출연자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 일상생활이 무대장치가 된다는 점과 배우의 배역과 달리 ‘그 자신’으로 존재하면서도 관객이 선호할 만한 모습을 연기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연기자는 관객의 욕망을 정확히 간파하고 그것을 맞춘 자신이 관심의 권력을 획득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시에 연기자는 관객의 욕망에 ‘길든다’. 관객은 반응을 통해 원하는 대로 연기자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 오유진(박효주)은 타인의 부러움을 받기 위해 딸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짓말하는가 하면, 미술 치료의 이론을 적용하여 딸의 그림을 ‘보시기 좋게’ 조작한다. 권력으로서의 관심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피평가자의 위치에 서야 하는 역설. <셀러브리티>와 <행복 배틀>에서 인기를 누린 이들은 사실 감추고 있는 치부가 드러나며 파국을 맞는다. 여기에는 인플루언서를 선망하면서도 그들이 추락하기를 바라는 대중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빛으로만 가득 찬 삶,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다는 진실이 부디 공평하기를, 그들이 화려한 만큼 추악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관심 경제의 악질적인 사례 중 하나는 바로 사이버 렉카 계정이다. 사이버 렉카는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건이 생길 때, 해당 사건을 다루는 행위 또는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아이돌을 대상으로 억측이나 악의적인 짜깁기를 유포하던 사이버 렉카 계정이 사라졌다. 조회 수와 돈이 될 만하다고 여겨 계정을 운영한 것에 대한 사과문도 올렸다. 유튜브는 고소가 어렵다는 통념을 깨고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법원을 거쳐 사이버 렉카 계정을 추적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아이돌 팬들이 환호했다. 동시에, ‘돈 냄새’를 맡은 사이버 렉카 계정이 꽤 오랫동안 높은 조회 수를 올리며 악명을 떨쳤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남긴다. <셀러브리티>나 <행복 배틀>에 나오는 과시적인 인플루언서들, 사이버 렉카 같은 ‘관종’들만 욕할 것이 아니다. 결국 관심 경제의 톱니바퀴는 끊임없이 ‘땔감’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유명한 계정 하나가 폭파된다고 한들 아류는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악의가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일지라도, 나의 ‘관심’은 자원이 된다. 클릭 한 번과 좋아요 한 번, 공유 한 번에 돈과 권력과 폭력으로 둔갑할 수 있다. 무심하게 내리던 릴스를 잠깐 멈추고, 내 관심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이진송 계간 ‘홀로’ 편집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