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여름에 시장에 가는 이유[지극히 味적인 시장]
누구나 아는 사실, 여름은 덥다. 더운 것에 더해 둘러싼 공기마저 수분을 가득 품고 있어 무겁다. 에어컨의 제습 기능을 최대로 돌리는 듯한 홋카이도의 여름을 만끽하고 온 뒤라 한반도의 꿉꿉한 여름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사람은 살아가며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의 것을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사람이 모이고 물건과 돈이 오가는 시장에 가야 한다. 덥든 춥든 때가 되면 장이 서고 사람이 모인다. 먹고살기 위해서 말이다. 충북 음성장은 2와 7일이 든 날에 열린다. 7월22일 음성장으로, 나 또한 먹고살기 위해 더위 속 장터로 떠났다.
음성은 출장보다는 낚시하기 위해 자주 갔었다. 음성군에는 이름난 저수지가 많아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맹동지, 원남지, 초평지 등이 알려진 저수지다. 음성 읍내에 도착하니 예전에 여기서 밥 먹고 낚시하러 가던 생각이 났다. 또한, 고속도로가 지금 같지 않던 20년 전 음성을 거쳐 괴산의 업체를 찾아가던 기억 또한 났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차 안을 나서기 싫어 잠시 추억에 빠졌었다.
차 문을 여는 순간 지옥불임을 알기에 주저함이 문 열고 나가는 것을 막았다. 오전 9시임에도 차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주차장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훅하고 반겼다. 항상 메고 다니는 카메라에는 한여름의 무더운 공기 무게까지 얹혀 땅으로 카메라를 잡아당긴다.
장터는 더위를 친구 삼아 장을 펼치기 위한 상인들의 바지런한 움직임이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하고 있었다. 장이 서고 있는 사이를 지나다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뭐지?” 갸우뚱 몇 번 고민하다 그제야 시장이 없음을 알았다. 오일장은 있어도 상설시장이 없었다. 보통은 천장을 설치한 아케이드형 상설시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오일장이 들어선다.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형태였다. 음성장은 상설시장이 없었다. 오일장이 들어서는 거리의 끝과 끝 사이에 여기가 시장임을 알려주는 세움 간판이 서 있을 뿐이었다. 세움 간판으로 구분한 400m 남짓한 거리에 오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여름 시장은 재미가 없다. 농산물도 단맛은 적고 물기가 많다. 맛도 없고 씹는 맛도 적어 맛이 싱겁다. 게다가 나오는 농산물의 품목도 적고 산지도 제한적이다. 양파나 감자를 제외하고는 시장에 있는 농산물 대부분이 강원도산이다. 다만 복숭아나 수박은 음성이 유명한지라 제법 있었다. ‘햇사레’라 쓰여 있는 복숭아 포장지를 많이 봤을 것이다. 햇사레는 이웃한 두 시군(이천시, 음성군)의 통합 복숭아 브랜드다. 아마도 국내에 소개된 농산물 브랜드 중에서 이보다 더 유명한 브랜드는 없을 듯싶다. 20년 역사를 넘는 전통은 포항초 다음이 아닐까 싶다. 복숭아는 품종이 수천 가지가 넘는다. 매주 나오는 복숭아가 다르다. 이번주에 먹은 복숭아와 같은 것을 먹는 건 1년 뒤에 가능하다. 저장성이 떨어지는 복숭아의 특징이다. 이런 수확과 저장 특성을 마케팅에 잘 이용한 것이 신비 복숭아다. 딱 6월 말 한때 먹을 수 있어서 신비함을 강조했지만 복숭아가 원래 그렇다. 포장박스는 같아도 담기는 복숭아의 품종은 매주 달라진다. 햇사레에서 소개하는 복숭아만 하더라도 서른 가지가 넘는다. 저장성이 떨어지는 복숭아는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까? 정답은 ‘보관하지 않는다’다. 복숭아는 냉장 보관하면 맛이 떨어진다. 농촌진흥청 이야기로는 보관 중에 당 민감성이 떨어져 포도당이 늘고 민감성이 높은 자당(설탕)과 과당이 준다고 한다. 게다가 온대 과일인 복숭아는 열대 과일인 바나나처럼 냉장 보관 중에 속이 물러지는 냉해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상온에 보관하다가 먹기 전 한두 시간 전에 냉장고에 넣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신문지나 키친타올에 싸서 냉장하는 것을 복숭아 보관 비법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2주까지 보관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그럴듯하나 맛의 관점에서는 빵점인 방법이다. 복숭아는 저장이 안 되는 작물이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먹는 게 가장 좋다. 2주 보관한 복숭아는 맛없다.
여름 농산물, 단맛 적고 물기 많아
품목 적고 산지도 제한적이지만
매주 새 품종 출시되는 복숭아는
음성이 자랑하는 ‘전국구’ 과일
시장 걷다보니 눈에 띈 공심채
마늘·달걀과 볶으니 훌륭한 만찬
로컬푸드 매장에서 발견한 찐빵
진득거림 없는 팥소가 고소해
시장을 걷다 보니 눈에 띄는 작물들이 있었다. 공심채와 줄콩이 그 주인공이다. 영어 이름이 모닝글로리인 공심채. 옛날 사람인지라 처음 메뉴에서 모닝글로리를 봤을 때 ‘문구?’ 이런 느낌이었다. 맛을 봤을 때는 아침에 햇빛을 받는 듯한 영광스러운 맛이었다. 줄콩은 생소한 식재료였다. 모닝글로리 한 단을 사면서 줄콩 먹는 방법을 여쭈니 “그거, 거 응 마늘종 하듯이 먹으면 댜~”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네처럼 마늘종 먹듯이 먹어도 되지만, 원래 동네인 동남아에서는 주로 샐러드용이었다. 잘 씻어 그린빈스처럼 껍질째 먹으면 된다.
시장에서 산 공심채는 집에서 볶음으로 변신. 씻은 공심채를 먹기 좋게 자르고는 양념장을 만들었다. 된장, 참기름, 멸치액젓, 설탕 조금으로 만들면 끝.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이나 칼로 으깬 통마늘로 향을 내고는 공심채 넣고 볶다가 양념장 넣고 마무리하면 된다. 매운맛을 좋아하면 고추를 넣으면 더 좋다. 공심채만 넣기에 심심할 듯싶어 달걀까지 넣고 볶으니 한 끼 메뉴로 딱 맞았다. 냉장고에 있는 밥새우를 넣어도 맛있을 듯싶다. 공심채 한 단 3000원으로 즐기는 시장의 만찬이다.
툭툭 튀어나오는 예상 밖 상품의 유혹에 빠지는 곳이 오일장이 아닐까 싶다. 시장 구경을 얼추 끝내고 1km 남짓 떨어진 로컬푸드 매장으로 갔다. 가기 전 시장에 있는 빵집에 들러 찐빵 하나를 샀다. 예약이 밀려 있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한 개는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맛만 보기로 했다. 폭신하기만 한 일반 찐빵과 달리 쫀득함이 더 있었다. 팥도 공장 팥을 쓰지 않고 매일 만들어서 쓴다고 한다. 팥소가 진득거림이 없고, 고소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팥은 타피오카 전분 때문에 팥소를 맛보면 진득거린다. 동네마다 있는 로컬매장. 다양한 작물이 생산되는 지역 매장은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있다. 음성 로컬푸드 매장은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크진 않아도 제법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내 눈에 띈, 오랜만에 만나는 청참외! 사과참외로 알려진 토종 참외다. 단맛이 노란 참외에 비해 다소 떨어지나 아삭한 맛이 괜찮다. 이웃한 매대에 놓인 안 익은 아오리 사과보다 훨씬 맛나다. 아오리 사과의 제철은 8월이어야 함에도 안 익었을 때부터 판매대에 놓인다. 먹을 수 있어도 맛은 없는 풋사과가 요즈음의 아오리다. 무침할 생각으로 청참외를 샀다. 오이보다 단맛이 좋거니와 아삭함도 있어 무침 하면 맛있다.
우리말에 ‘고샅’이란 단어가 있다. 사전의 의미는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다. 여기에 엄마의 마음을 더해 만두를 빚는다. 여름에는 냉면을 메뉴에 올리긴 해도, 만두 전문점이다. 필자는 만두를 선택할 때 피를 가장 먼저 본다. 겉보기에 피가 반질반질하고 반투명하다면 전분이 많이 들어간 만두피다. 대부분 공장에서 만든 것을 사다 쓰는 곳이 그렇다. 전분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만두소에 많은 기름기를 버티기 위함이다. 만두에 있다고 하는 육즙(사실은 지방 녹은 액체)을 밀가루 반죽만으로 버티지 못하자 전분을 넣기 시작했다. 만두피가 육즙에 터지지 않으니 만두소에는 고기보다는 지방을 더 넣었다. 찐 냉동만두의 반투명한 만두피는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만두 겉모습을 보니 알고 있는 예전 만두 모습이다. 만두피에 전분이 많이 들어가면 공장형 팥소처럼 진득거린다. 씹히는 맛이 있어야 함에도 짓이기다가 못내 잘리는 식감이 별로다. 여기 만두는 그럴 염려가 없다. 만두의 피와 소가 따로 놀지 않는다. 씹는 맛이 좋다. 김치만두는 끝 맛이 매콤하다. 김치만두 속을 만들 때 고추지를 넣는다고 한다. 고추지는 삭힌 고추다. 매운맛이 제법 좋다. 고샅만두 (043)873-3351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8년차 식품 MD.
김진영 | 식품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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