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가린 후진 정치···한국의 미래 이탈리아[책과 삶]
이탈리아로 가는 길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328쪽 | 1만8000원
전쟁으로 폐허가 됐지만 세계에서 가장 빨리 산업화를 이룬 나라.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 그리고 1980년대에도 이 나라의 경제 고성장은 ‘기적’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등으로 깊은 정체의 수렁에 빠졌고, 정치는 권력 다툼에만 몰두할 뿐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남성 중심 가부장 문화는 뿌리가 깊다. 젊은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으려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이 나라는 한국이 아니다. 이탈리아다. 그러나 놀랍게 한국과 닮았다. 작가 조귀동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서 한국 사회가 롤 모델로 삼았던 미국, 영국, 일본 같은 나라보다 이탈리아를 닮아간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전작 <전라디언의 굴레> <세습 중산층 사회> 등에서 꾸준히 한국 사회의 구조와 변화를 분석해왔다.
조귀동은 첫머리에서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고 단언한다. 경제 지표는 선진국 수준이 됐지만 정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정치인이나 분파에 강한 일체감을 갖고 다른 이들과 공존을 거부하는 ‘정치적 부족주의’를 한국 민주주의를 망치는 주범으로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극단적 권리당원, 국민의힘의 극우 기독교 세력을 예로 든다.
조귀동은 한국 정치의 위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부터 시작됐다며 ‘노무현 질서’라는 이름을 붙인다. 노 전 대통령 이후 정치인이 당에 기대지 않고 직접 ‘시민’을 동원하는 대중정치를 통해 당내 권력을 잡는 규칙이 확립됐다고 본다. 한국에서 정치적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수사기관에 가져가는 모습은 여야가 똑같다.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면 상대편과 타협하지 않아야 하기에 서로 ‘왜구’ ‘종북’이라고 공격한다. 조귀동은 검사가 고속 승진해 검찰총장이 되고, 정권에 수사의 칼날을 돌리고, 반대편 정치인으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된 현상이 ‘우리 편’ 정치의 상징적인 결과라고 설명한다.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지면서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일찍부터 무능을 드러냈다고 비판한다.
조귀동은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더는 믿는 이들이 없는 기존 사회계약을 어떻게든 다시 써야만 할 것”이라며 “겉보기에 그럴 듯한 민주주의에 머물러 있을 뿐, 사람들의 정치적 욕구를 반영하는 조직이 제대로 구성·운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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