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한 '악귀'의 쫀쫀한 맛, 그걸 만회한 무서운 배우 김태리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한국의 귀신에 민속학적 관심이 많은 김은희 작가의 뚝심이 엿보이는 드라마다. <악귀>는 단순 히어로물이나 공포물과는 좀 거리가 있다. 그랬다면 좀 더 많은 시청자의 유입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극 초반 시청자들이 오해했던 것처럼 구산영(김태리)이 악귀와 연합해 진짜 악귀 같은 인간들을 처단하는 이야기였다면 <모범택시>의 오컬트판이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혹은 대놓고 악귀와 염해상(오정세) 교수의 대결로 풀어갔어도 쉬운 전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악귀>는 그런 방법으로 귀신 이야기를 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 문헌에 기록된 귀신에 대한 역사와 악귀를 만드는 방법 등을 무모하리만치 자세하게 설명한다. 악귀는 물론이거니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귀 등 다른 귀신에 대한 민속학적 정보까지 상세히 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악귀>는 한국의 토착귀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풍성한 텍스트일 것이다.
다만 이 드라마가 악귀에 대한 진심이 있다한들 이야기적으로 훌륭한 방식으로 풀지는 못했다. 만약 <악귀>를 악귀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풀고 싶었다면 좀 더 진지하고 지적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악귀>는 시청자들이 이탈할 것을 염려해서인지 종종 서문춘(김원해) 형사와 그 형사 일행을 통해 코믹한 장면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 코믹한 장면들이 진지한 장면들과 충돌하면서 <악귀>는 복잡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뭔가 길을 잃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한편 <악귀>는 구강모(진선규) 민속학 교수와 나병희(김해숙) 중현캐피털 회장으로 대표되는 두 집안이 얽힌 이야기이기도하다. 이 두 집안과 얽혀 있는 악귀의 설정은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허나 이 구조를 전체 회차에서 흥미진진하게 녹여냈는가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악귀>는 구산영이 악귀로 변할 때를 제외하면 긴장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악귀>의 대사들이 사건의 진행을 위해서나 민속학적 사실을 위한 설명에만 그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렇기에 인물들의 대사가 주는 쫀쫀한 맛, 혹은 인물들의 대사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한 호기심, 인물 사이의 알 듯 말 듯한 심리적 긴장감이 거의 없었다. 특히 이 점이 <악귀>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 아무리 <악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어도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사에서는 섬뜩함이나 스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악귀>는 이런 허점을 일단 올해 드라마에서 최고로 꼽을 만한 미장센으로 일정 부분 극복했다. <악귀>의 도시의 허름한 뒷골목부터 시골의 으슥한 마을, 한옥과 화려한 나병희의 집 등 대사나 이야기 진행에서 소화하지 못한 긴장감을 미장센으로 대신한다. 이 미장센 덕에 <악귀>는 지루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긴장감이 느껴지기는 했다.
또 <악귀>는 1인2역으로 구산영과 악귀를 연기한 김태리의 호연이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 드라마기도하다. 김태리는 시대물에서나 오컬트물에서나 캐릭터의 '진심'이 느껴지게 만들어주는 흔치 않은 배우다.
특히 김태리는 설명적인 대사나 긴장감 없는 전개에도 이 배우의 연기만으로 구산영과 악귀를 오가는 긴장감은 물론 드라마에 심오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tvN <미스터 선샤인>과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김태리는 특유의 강단 있는 씩씩함과 밝음으로 멋진 캐릭터들을 만들었다. 두 드라마는 캐릭터도 반짝 빛났다.
반면 <악귀>에서 김태리는 특별한 극적 긴장 없는 무거운 캐릭터를 짊어지고 연기했다. 그럼에도 김태리는 구산영으로 삶의 위기에 몰린 젊은 여성의 절절함을, 악귀로 변할 때는 섬뜩한 공포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른하고 시니컬한 악귀 특유의 분위기까지 살려냈다. <악귀>에 대한 평가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반면 김태리는 <악귀> 연기로 이쯤 되면 성실하고 귀여운 걸 넘어 무서운 배우의 자리에 오른 것 같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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