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불 지핀 전기차 가격경쟁
전기차 시장의 가격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는 중국에서 생산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량을 한국 시장에 선보였다. 테슬라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의 상륙이다. 판매가는 5699만원으로 책정했다. 5700만원에서 1만원 빠진 ‘독특한’ 금액이다. 이유가 있다. 환경부가 2023년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기준으로 밝힌 ‘5700만원 미만’에 아슬아슬하게 포함되기 때문이다. 별도의 예외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면 해당 모델Y는 테슬라에서 제공하는 포로모션 등을 포함해 4000만원 후반 혹은 5000만원 초반이면 구매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상륙 시점에 맞춰 테슬라도 모델Y 지원에 나섰다. 같은 모델Y지만 차량 등급(트림)이 다른 듀얼모터 상시 사륜구동(AWD) ‘롱레인지’, ‘퍼포먼스’ 모델의 판매를 2024년까지 중단했다. 지난 7월 27일 기준, 한국에서 모델Y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선택지는 이른바 ‘5699 모델Y’뿐이다. 테슬라 차량의 효용성을 인정하는 소비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낮아진 가격은 그럴듯한 구매기회로 다가간다. 그동안 차량 가격이 시가(市價)처럼 종잡을 수 없이 치솟던 상황도 긍정적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출시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욱 저렴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낳고 있어서다.
실제로 ‘5699 모델Y’의 공식 예약 대수를 알 수는 없지만 인기를 짐작해볼 만한 근거는 있다. 테슬라 홈페이지에서 해당 모델의 판매를 개시한 지 일주일 만에 출고 대기 기간이 1~2개월에서 최장 6개월로 늘어났다. 자동차 업계에서 나오는 예약 대수가 일주일 만에 2만2000대를 넘어섰다는 추측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구매자들은 이르면 8월부터 순차적으로 해당 차량을 인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테슬라의 가격 공세는 단순히 전기차 업체가 새로운 차량의 판매를 시작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테슬라는 2021년 설 당일, 모델3 롱레인지 차량 가격을 5999만원으로 ‘깜짝’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환경부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기준인 6000만원에서 1만원 빠진 금액이었다. “설날 세배하다 주문 넣었다”는 후기들이 올라올 정도로 이른바 ‘대란’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가격할인은 테슬라 차량의 한국 내 보급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동시에 내연기관 차량 구매 일색이던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지에 전기차를 추가하게 했다. 테슬라가 가격정책으로 자동차 시장의 판을 뒤집어본 역사가 있는 만큼 ‘5699 모델Y’도 해당 정책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근본적 차이가 있다. 2021년에는 차량 가격의 깜짝 ‘할인’이었다면 2023년은 원래 ‘저가’인 차량을 양산해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델Y RWD는 어떤 변화를 만들까
지난 7월 19일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2분기 실적 발표를 진행하며 “거시경제 상황이 안정되지 않으면 (차량 판매) 가격을 더 낮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가 출혈경쟁을 시작하리란 전망이 나오며 당일 테슬라 주가가 폭락했다. 그러나 지난 7월 25일 테슬라가 인도에서 3000만원 정도의 ‘저가 전기차’ 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주가는 다시 3% 이상 급등했다. 할인 경쟁에 따른 영업이익률 악화 우려보다 새로운 저가형 전기차 시장 개척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투자자들이 받아들인 결과다. 이는 자율주행 등을 포함한 차량 소프트웨어로 시장을 주도해온 테슬라가 ‘가격’을 경쟁 항목에 넣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 제원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가격 경쟁력만 앞세운 건 아니다. 당장 한국에서 판매되는 모델Y RWD는 기존 모델과 배터리가 다르다. 그동안 한국에 들어온 테슬라 차량은 미국에서 생산됐는데,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했다. 이번의 중국산 모델Y RWD에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했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가 달라지면, 주행거리 측면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난다. 테슬라 측이 밝힌 차량 제원을 보면, 모델Y 롱레인지는 511㎞, 퍼포먼스는 448㎞를 달릴 수 있다. 반면 모델Y RWD는 350㎞를 달릴 수 있다. 테슬라 전용 충전소인 ‘수퍼차저’를 이용한 차량 충전의 경우에도 롱레인지, 퍼포먼스가 최대 250㎾까지 지원하는 반면, RWD는 170㎾까지 지원한다. 충전속도에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RWD의 가격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가 취소하는 사례도 많다. A씨는 RWD 구매를 예약했다가 최종 취소했다. 그는 “주행가능거리가 적은 대신 테슬라의 최신 기술을 다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RWD 차량 사진을 보면 안개등도 없고, 주차나 운전 시 차량 주변 물체를 감지해 경고해주는 울트라 소닉 센서(USS)도 없다. 구매가 내년으로 밀리더라도 인도가 진행된 후 한국 사람들 반응을 보고 사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RWD 구매가 합리적 결정이라는 구매자도 많다. RWD 인도를 기다리고 있는 한상혁씨는 “가격 이점에도 불구하고 RWD 구매를 망설이는 것은 결국, 주행거리 때문인데 출퇴근 전용으로 이용하거나 시내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설사 장거리를 가더라도 테슬라의 경우 수퍼차저가 주요 길목마다 설치돼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한씨의 확신에는 이유가 있다. 이미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를 3년 운행하며 주행가능거리, 충전 인프라를 충분히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충전 속도가 느리다는 일각의 불만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하다. 한씨는 “내연기관 차량을 운행할 때 주유를 매번 ‘가득’하지 않는데 왜 전기차 충전은 꼭 0%에서 100%까지 충전하는 속도를 기준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필요한 만큼만 충전하고 가면 된다. 배터리 예열을 한 상태에서 수퍼차저를 이용하면 10분 정도만 충전해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생산했다고 욕을 먹는데, 오히려 미국 생산 차량보다 차량의 마감상태 측면에선 개선됐다는 평가가 많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해당 논쟁이 보여주는 지점은 단순히 RWD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초기 구매가격이 높은 전기차 시장의 진입장벽을 조금만 낮추면 선진시장인 한국에도 수요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산 테슬라의 상륙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추가 가격 인하 여지도 있어 더 매력적이다. 생산지라는 입지 차이가 있지만, 중국에서는 동일 모델을 26만3900위안에 판매하고 있다. 7월 27일 기준, 한화로는 약 4706만원이다. RWD가 연착륙하면 롱레인지, 퍼포먼스 등 전 등급으로 판매 범위가 넓어질 수도 있다. 테슬라가 중국산 차량을 이용해 가격 초토화 작전에 나서면 차량 가격 인하 없이 전기차 보조금 확대만 기다리는 기업들은 미래를 장담키 어렵다는 뜻이다.
전기차, 가격은 정말 고려 대상이 아닐까
테슬라 ‘5699 모델Y’의 가격은 전기차 구매 보조금 100%를 겨냥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환경부는 지난 7월 17일 설명자료를 통해 “모델Y가 보조금 지급 대상인지를 확인하는 ‘전기차 보급 대상 평가’를 진행 중”이라며 “보조금이 지급될지도 아직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테슬라는 친환경차 보급 목표가 부여된 기업이 아니고, 모델Y는 현행 규정상 혁신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가 규정한 전기차 국고 보조금 지급 기준은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등을 기준으로 한 성능보조금(중대형 최대 500만원), 자동차제작사 친환경차 보급 목표 달성 여부에 따른 보조금(최대 140만원), 제작사 충전시설 확충 실적에 따른 보조금(20만원), 혁신기술 적용 여부에 따른 보조금(20만원) 등이 있다. 여기서 혁신기술은 전기차에서 외부로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는 ‘비히클 투 로드’(V2L)다. 현대차만 선보이고 있는 기술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현재 환경공단에서 보조금 지급 여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고, 정확히 언제 해당 작업이 끝난다고는 답변할 수 없다”며 “다만 보조금이 100%가 아니라는 게 0%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7월 27일 기준, ‘5699 모델Y’ 보조금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았다. 8월 인도가 가능하다는 기대에 대해 해당 관계자는 “그것은 업체나 구매자들이 예측하는 것이고, 테슬라와 보조금 확정 후 출고 가능 시점에 대해 이야기한 건 전혀 없다”며 “보조금을 안 받고 출고한다면 모르겠으나 받으려면 평가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차를 구매할 때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은 세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고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5699 모델Y’가 차량 구매가격은 보조금 100% 지급 범위에 들어왔지만, 기타 평가를 통해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보조금 지급이 시장의 ‘가격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경우다. 실제로 지난해 5500만원이었던 전기차 보조금 100% 지급 기준이 올해는 5700만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라 배터리 가격이 인상됐고, 그에 따른 차량 가격 인상 압력이 높아진 상황을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자 전기차 관련 업체들이 일제히 차량 가격을 5700만원선에 맞췄다. 전기차 대부분이 비슷한 주행거리, 편의사항 등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시작했어야 할 가격경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한 번 올라간 차량 가격이 내리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는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시장의 가격경쟁을 어떻게 보는지 현대차에 물었다. 관계자는 “아직은 전기차 시장이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가격적인 부분이 강하게 작동하는 시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고객들을 보면, 아직 전기차 시장은 항속거리나 충전 인프라 등이 더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대 전기차의 가격은 배터리 원자재 가격 변동분까지 반영해 책정된 것이다. 테슬라의 ‘5699 모델Y’ 출시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테슬라와 현대차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쉽게 말해, “전기차 가격이 지금처럼 높을 필요는 없다”는 테슬라와 “아직 전기차는 가격보다 주행가능거리, 충전 인프라가 구매를 결정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차이다. 한국전기차협회 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테슬라가 반값 전기차 화두를 던지는 바람에 전기차 시장은 가격경쟁 국면에 들어왔다고 봐야 한다”며 “문제는 경쟁 업체들이 테슬라가 가격을 낮추는 여러 기법을 그대로 따라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값 전기차는 사실상 테슬라가 갖춘 경쟁력 중 최종 단계에 해당하는데 벌써 해당 부분까지 넘어왔다는 건 경쟁사들이 상당히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전기차 관련 전문가는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만약 현대차도 반값 전기차를 내놓는 게 가능하다면, 왜 가격경쟁을 하지 않겠느냐”며 “이는 저가형 수요층을 겨냥한 시장 공략에 테슬라보다 한발 늦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각종 논란 속에 출시하는 ‘5699 모델Y’는 향후 국내 전기차 시장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주행가능거리와 가격 중 어느 쪽에 더 주안점을 둘지, 가격할인 대신 어느 정도까지 주행가능거리 감소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동남아시아 등의 신흥시장 공략용으로 생각하는 업체들의 결정이 타당한 것인지 등도 가늠해볼 수 있을 전망이다. 테슬라가 2년 만에 다시, 국내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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