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참전용사들 "끔찍한 추위·장마로 고통…민주 통일 바라"
손녀가 읽은 편지 "한국에선 목숨 싸게 느껴지지만 봄에는 꽃 피고 좋아"
형 전사 소식에 지도서 한국 찾아본 동생…"이 작은 나라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휴전 직후 마주친 중공군…모두 흠칫했으나 곧 악수했다"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전쟁터로 향한 20세 전후 젊은 영국 군인들은 금속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추위와 장마에 시달리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경험을 했다.
27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호스가즈 퍼레이드에서 영국 재향군인회 주최로 개최된 한국전 정전 70주년 기념행사에선 참전용사들과 후손들이 직접 전쟁을 증언했다.
앨런 가이 전 육군의무부대 병장은 19세이던 1952년 입대해 기초 훈련을 받고 버뮤다 근무를 신청했다가 한국행 명령을 받고 배에 올랐다.
가이 전 병장은 "학교에서 지리를 배웠지만 한국을 들어보진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싱가포르, 홍콩을 거치면서 한국도 날씨가 비슷할 것이란 기대를 품었지만, 막상 도착하자 끔찍하게 추웠다.
가이 전 병장은 "겨울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금속에 손을 대면 달라붙었다"며 "여름에 긴 장마도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역시 19세에 한국으로 향한 마이크 모그리지 전 일병도 힘들었던 점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던 추위와 장마, 모기를 들었다.
그는 "참호에 허리까지 물이 찼고, 경계 근무 중 움직일 수 없을 때 모기가 얼굴에 붙으면 쫓아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모그리지 전 일병은 "후크 고지 전투에서 대규모 폭격 후에 중공군 시체가 사방에 있었고, 한 데 쌓아두니 높이가 2m가 넘었다"며 "전쟁의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휴전 후 아침엔 중공군과 서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극적인 시기였다"며 "내 희망은 한국이 민주적으로 통일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패릿 전 준장도 "휴전 협정 체결 소식을 듣고선 1년간 쥐처럼 살던 곳에서 내려왔다가 중공군을 마주쳤다"며 "순간 양쪽 모두 얼어붙었으나 곧 악수했다"고 말했다.
로버트 길 중위의 손녀는 임진강 전투에 참전했던 할아버지가 당시 여자친구였던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대독했다.
길 중위는 편지에서 "운이 좋았다. 중공군이 폭격하기 4시간 전에 위치를 옮겼다"며 "지난 작전에서 동료 6명을 잃었다. 좋은 동료를 잃는 일은 끔찍하고 한국에서 몇 달을 지내고 나니 목숨이 싸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봄은 꽃이 피고 좋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패트릭 앤지어 소령은 손자가 읽은 편지에서 전쟁에 관한 회의감을 토로했다.
그는 부인에게 "정치인들이 엉망으로 만드는 동안 우리는 언덕에서 인생을 허비하며 앉아있다"라거나 "우리가 지키려고 온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51년 4월 21일자 편지에선 "이해할 수 없다"며 "적진으로 대대적 순찰을 나갔지만, 중공군 한 명을 죽이고 한 명을 잡아 왔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했고 그날 밤 임진강 전투가 시작됐다. 앤지어 소령은 23일 새벽 전사했다.
슈롭셔 경보병 1대대 톰 데이비 일병의 동생은 12살 때 9살 많은 형의 전사 소식을 들었던 일을 꺼냈다.
그는 "6월 3일 형이 다쳤다는 전보를 받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지구본을 봤는데 한국은 너무 작았다. 형이 그 작은 나라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왜, 무엇을 위해 갔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형이 낫고 있다는 전보를 받았지만 12일에 온 소식에는 이미 2일에 전사했다고 돼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글로스터 연대 제1대대 소속 데이비드 가디너의 조카 린 램버트씨는 임진강 전투 후 전쟁포로가 됐던 삼촌의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램버트씨는 "삼촌과 가장 친한 친구 로이 밀스는 병역 의무를 위해 입대했고 1951년 4월 사흘여 치열한 전투 끝에 포로로 잡혀서 2년 반 동안 수용소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공군들은 전쟁 포로들을 움직일 수 없는 작은 대나무 케이지에 가두고 음식도 주지 않았으며, 담배로 지지거나 소변을 누는 행위를 했다"며 "상시 구타하고 매일 공산주의 세뇌 교육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열악한 환경 탓에 첫 해 겨울엔 매일 시체 스무구 이상이 실려 나가는 걸 셌다고 한다"며 "이 이야기는 우리뿐 아니라 모두의 역사이기 때문에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한국 전쟁에 8만1천84명을 파병했고, 이 가운데 1천106명이 전사했다. 이날 행사에는 약 150명이 참석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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